북한, 낡은 영변 핵시설 폐쇄하며 속이려 할 것…美정부 요구 CVID 핵폐기 절대 수용 못해
  • ▲ 2017년 11월 '뉴시스'와 인터뷰할 당시 태영호 前공사.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11월 '뉴시스'와 인터뷰할 당시 태영호 前공사.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이 ‘비핵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유례가 없이 강했기 때문이며, 북한은 실제로 비핵화를 실시하기 보다는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시간만 끌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활동이 뜸한 태영호 前영국 공사가 지난 13일 북한인권단체 ‘물망초’에서 김정은의 속셈에 대해 강연을 하면서 이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고 정보 소식통이 17일 전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이날 강연에서 “김정은 정권은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태영호 前공사는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대북정책의 성과는 김정은 입에서 ‘비핵화’라는 말이 나온 것”이라며 “최고인민회의 중앙보고대회에서 김정은의 업적으로 ‘핵보유국’을 만들었다는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태영호 前공사는 “김정은이 그토록 집착한 핵문제에서 한 발 물러나 ‘비핵화’라는 말을 꺼내고 중국에 급하게 달려간 이유는 역사상 처음 겪어보는 강력한 제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을 긴장하게 만든 것은 대북 군사조치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이 시행한 북한 석탄 및 광물수출 금지와 석유수입 제한, 해외파견 북한근로자 고용금지 조치 등이었다고 한다. 북한이 석탄을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한 사람이 북한 주민 5~10명을 먹여 살린다는 해외파견 근로자 또한 줄어들게 되자 김정은이 급해졌다는 설명이었다.

    김정은은 이런 이유로 중국에 쫓아가 시진핑 中국가주석 앞에 바짝 엎드렸다는 것이다.

    태영호 前공사는 “2006년 북한이 첫 핵실험을 했을 때 이런 제재를 가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 하기도 했다고 한다.
  • ▲ 2015년 10월 10일 북한군 열병식. 이런 열병식에 나오는 북한군 장비는 비교적 신형이거나 작동이 잘 되는 무기들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5년 10월 10일 북한군 열병식. 이런 열병식에 나오는 북한군 장비는 비교적 신형이거나 작동이 잘 되는 무기들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영호 前공사는 김정은이 방중한 이유에 대해 남북정상회담과 美北정상회담에서 ‘사기’를 칠려고 하는데 잘 안 먹힐 것으로 보이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한 것과 중국에게 매년 받던 무상 군사·경제원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2017년까지 계속 해주던 원조를 중국이 거부하자 김정은이 놀라서 방중했다는 것이다.

    태영호 前공사는 “북한에는 땅굴이 대단히 많은데 이곳을 운영하는 장비의 대부분이 중국제”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땅굴을 유지하는 장비 부속품도 무상으로 주고, 휘발유와 경유도 무상으로 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원조를 끊겠다고 하자 김정은이 놀랐다는 지적이었다.

    태영호 前공사는 김정은이 시진핑 中국가주석과 만나 논의한 것이 북한 핵무기의 단계적·동시적 폐기에 대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과 미국 사이에 북한 비핵화를 놓고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을 우려했다. 한국은 “2년 내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리비아도 그랬으니 1년 이내에 핵문제를 모두 끝내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태영호 前공사는 “북한은 ‘리비아는 핵물질을 생산하는 초기 단계였지만 우리는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이미 만들었으므로 똑같이 보는 것은 틀렸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영호 前공사는 앞으로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에서 하나씩 하나씩 협상 주제로 삼으며 대가를 요구하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협상카드로 ‘영변 핵시설’과 같은 곳을 내놓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설한 지 수십 년도 더 된 ‘영변 핵시설’은 버리고 어딘가에 숨겨놓은 비밀 핵시설에서 계속 핵무기를 만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한 김정은이 ‘한미군사훈련 중단’ 보다는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핵 폐기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일단 시작을 했으니까 제재를 풀어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한 핵폐기를 둘러싼 본격적인 협상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현황 파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핵무기 숫자와 생산시설 등을 밝히면 한국과 미국이 “이게 다냐”며 따지면서 논쟁이 시작되고, 비핵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북한은 이런 과정을 통해 앞으로 2~3년 동안 ‘비핵화’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트럼프 美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美대통령이 재선하지 못할 것이며, 다음 대통령은 그와 같이 강력하게 대북제재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태영호 前공사는 선거에 따라 정권이 바뀌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의 특징이 북한과 같은 세습독재정권과의 대결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정권이 바뀌면 담당자가 바뀌고 동시에 정책이 바뀌면서 똑 같은 일만 하거나 아니면 일관성을 잃어버린다는 지적이었다. 김정은은 과거 한국·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이런 점을 배웠고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북한이나 남한이나 쟁개비, 냄비 근성이 특징”이라며 “무슨 문제가 터지면 온 국민과 정부, 언론이 끓는데 이게 몇 년을 못 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식어간다”고 지적했다.

    북한 비핵화를 두고 1년이건 2년이건 시간을 질질 끌다보면 국민들도 “그러려니” 하면서 무덤덤해진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이런 요인들로 인해 결국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 한국군 F-35 스텔스 전투기 1호기의 비행 모습. 한국군은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할 때 북한군은 아직도 미그 19기를 날리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군 F-35 스텔스 전투기 1호기의 비행 모습. 한국군은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할 때 북한군은 아직도 미그 19기를 날리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영호 前공사는 “북한 체제가 계속되는 한 핵무기 폐기는 절대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사력 현대화를 하지 못한 북한이 한국에 맞서려면 현실적으로 핵무기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심지어는 주한미군이 없어도 한국에 이길 수 없는 것이 북한군의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북한군 전력이 약화된 가장 큰 원인은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난 뒤부터 무상군사원조를 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때문에 북한 전력 대부분이 1960년대 소련이 만든 것으로 매우 노후돼 있다고 주장했다.

    땅굴의 경우에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과거 김일성이 전국을 요새로 만들라고 하면서 땅굴을 엄청 많이 뚫고 이곳에 각종 무기를 집어넣었는데 땅굴 내부의 유지 보수에 엄청난 인력과 자금이 소요되는 것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땅굴에 무기를 넣는 기간이 단기간이면 몰라도 수십 년이 되다보니 무기부터 통신장비까지 모조리 녹이 슬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평소에 무기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까 명중률도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북한군이 쏜 방사포의 70%가 바다에 떨어진 것이 그 증거라고 지적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남북 군사력 균형을 맞추려면 한국군 전투기 1대 당 북한군 미그기 5~6대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합의가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 못하는 다른 이유는 체제안전이라고 한다. 김정은은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주장했는데, 이 경우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때까지 제재를 가하면서 체제를 보장한다는 말이 모순되기 때문에 논란이 일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 못하는 마지막 이유는 美정부가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CVID) 핵폐기’라고 한다. 태영호 前공사는 “현실 외교에서는 이를 두고 강제 사찰이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즉 美정부의 말대로 한다면, 미국이 보고 싶다는 곳은 모두 보여줘야 하는데 북한이 절대 받아들일 리 없다는 주장이었다. 1991년 12월 남북비핵화선언 때도 강제 사찰 문제를 거론했지만 결국 합의서에서는 빠졌다고 한다. 당시 북한은 “우리를 강제사찰 하겠다면 너네도 한국군과 미군 기지를 우리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는데 한국과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자 매우 당혹해 했다고 한다. 결국 북한은 “너희가 시설을 공개한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그걸 검증할 전문가가 없다”며 관련 사항을 합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 ▲ 2008년 6월 북한이 공개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장면. 북한은 이 조치로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됐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8년 6월 북한이 공개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장면. 북한은 이 조치로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됐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영호 前공사는 “북한이 강제사찰을 못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인권 문제”라고 주장했다. 북한 당국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감시한다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 정치범 수용소가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정치범 수용소가 공개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유 가운데는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물질을 채굴하고 생산하는데 정치범들이 강제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것도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정치범들을 “우라늄 광산에서 채굴작업을 하다 방사능에 오염돼 죽어도 되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태영호 前공사는 또한 김정은이 핵무기와 ICBM에 집착하는 이유에는 ‘신정일치 체제’와 같은 김씨 집안 우상화 문제도 걸려 있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달리 특정 개인을 ‘신’으로 숭배하는 북한 체제에서 김정은은 ‘핵보유국’을 선포하고 앞으로 50년 넘게 지배하려 했는데 비핵화를 하게 되면 이런 체제가 무너질까 우려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태영호 前공사의 주장에 따르면, “남북관계개선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낸다”는 현 정부의 대북전략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 된다.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운전대를 잡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장 또한 한국이 ‘오너 운전자’가 아니라 ‘대리기사’ 수준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별개로 최근 국내 언론에서 “정부가 태영호 前공사의 외부활동을 통제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국가정보원이 현 정부의 대북전략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태도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