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사태에 직접 나서 방점 "객관적 판정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출구전략? 임명강행?어느쪽 결론이든 입장 굳힌 것은 분명… 다만 야당 시절 들이댄 잣대보다 기준 크게 후퇴해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관한 논란이 가라앉기는 커녕 계속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방점을 찍었다.

    사퇴를 위한 출구 전략이라는 해석과 임명 강행을 위한 마지막 경고라는 분석이 양립하는 가운데, 이날 문 대통령이 내세운 기준 자체가 과거 야당시절 내세웠던 도덕적 잣대와 비교할 때 한참 후퇴한 것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오전 서면을 통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문제되고 있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추어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토록 하겠다"며 "그러나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판단에 따라야 하겠지만, 위법한지 당시 관행인지는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달 말 금융감독원장에 김기식 전 의원을 임명했지만, 이후 국회의원 시절 피감 기관의 돈으로 외유성 출장 했다는 보도가 뒤따르는 등 논란에 휩싸였다. 청와대는 이에 수차례 관련 논란에 브리핑으로 대응하며 진화에 힘썼다. 사전 인사검증을 해야하는 조국 민정 수석이 3일 간의 조사를 한 결과 적법한 행위였다고 감쌌고,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청와대의 기류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인사와 관련 직접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논란이 됐던 대법원장 임명에 관해 입장을 표명했던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을 한 배경에는 먼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을 명분삼아 김기식 원장을 사퇴시키려는 수순으로 가는 이른바 '출구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이 있다. 청와대가 그간 김기식 원장 임명을 강행하려 했던 입장을 접고 사임토록 하는 방향으로 선회키로 결정하면서 이로 인한 정치적 잡음을 정리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다는 설명이다.

    청와대는 지난 12일 임종석 비서실장 명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국회의원이 임기 말에 후원금으로 기부를 하거나 보좌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주는 게 적법한지 ▲보좌직원 또는 인턴과 함께 해외출장을 가는 것이 적법한지 ▲보좌직원 또는 인턴과 함께 해외출장을 가는 것이 적법한지 ▲해외출장 중 관광을 하는 경우가 적법한지에 관해 질의서를 보냈는데, 이중 피감기관 및 관련 단체 등의 출장비 지원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검찰이 압수수색에 돌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김종오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한국거래소 사무실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더미래연구소 등에 수사관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가 주장한 '적법한 공익 목적 출장'이라면 이뤄지기 힘든 조치다.

    이에 비춰볼 때 중앙선관위에서도 비슷한 해석을 내놓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김기식 원장이 19대 국회의원 임기 막판인 지난 2016년 민주당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에 5000만원을 기부한 것 역시 선관위는 "당시 선관위가 김 원장에 그런(불법이라는) 답변을 한 것은 맞다"고 재확인했다. 이제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 달라진 답변을 내놓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반면 문 대통령이 김기식 원장에 대한 임명을 강행하려는 의도로 이같은 입장을 냈다는 반론도 없지는 않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근본적으로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언급했다. 김기식 카드의 필요성을 직접 호소하는 '정면돌파'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볼 경우 문 대통령의 이날 입장은 인사권자의 결정에 재론의 여지가 없음을 강경하게 내세우면서 반대론자에 엄포를 놓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 청와대가 SNS에 업로드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 ⓒ청와대 페이스북 화면 캡처
    ▲ 청와대가 SNS에 업로드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 ⓒ청와대 페이스북 화면 캡처

    다만 현재의 여권이 과거 정부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댔던 사례와 비교해볼 때,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기준 자체가 한참 후퇴한 것이어서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과거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당시 김종훈 미래창조부 장관 지명자에 대해 '미국 이중국적자'라는 이유로 강도높게 비난했다. 당시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은 "미국 국적 경력을 가진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김 후보자가 장관 인선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국적 회복을 한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결국 국회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지난 2013년 3월 4일 김종훈 후보자는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정부조직개편안 논란과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중앙일보 전 주필이었던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역사인식을 잣대로 사퇴를 주장했다. 당시 여당인 박대출 대변인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만한 표현들이 일부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발췌된 내용 위주로만 보도되면서 전체적인 발언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대변인은 "일제 식민지 지배와 민족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앞서 제시한 기준인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나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관련, 당시 국회의원 관행에 비춘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 보다는 한참 후퇴한 내용이다.

    이에 따라 야권도 강하게 반발하면서 김기식 원장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자유한국당 정태옥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오늘 입장표명은 사실상 김기식을 사임토록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며 "늦었지만 국민의 뜻을 수용한 결과"라고 언급했다.

    정 대변인은 "김기식 원장의 처신이 명백하게 불법적이고 도덕수준이 평균 이하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너무 오래 끌었다"며 "이 사건의 본질은 김기식 원장의 잘못된 처신과 청와대의 검증 실패임에도 불구, 국회의원 전원을 사찰하고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