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싶다면 현명해야 한다
  • 거북이를 뒤쫓는 아킬레스

    불가승재기, 가승재적(不可勝在己, 可勝在敵)
    내가 이길 수 없음은 내가 부족해서이고, 내가 이긴 것은 상대가 모자라서이다.
    이기고 싶다면 현명해야 한다.

    이동욱 /객원논설위원

    정보화의 시대를 살기에 누구나 익히 들어보았을 ‘역설의 명제’ 하나를 건져 올려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논리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모순으로 간주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오히려 그 모순 속에 진리가 드러나는 명제를 우리는 ‘역설(paradox)’라고 한다. 

    기원전 450년 경 엘리아의 제논(Zenon ho Elea)은 몇 가지 논증하기 어려운 명제를 제시했다. 그 중 8개는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의 저작에도 인용됐다. 가장 유명한 제논의 역설 중 하나가 ‘느림보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지 못하는 발빠른 아킬레스’의 이야기다. 

    제논의 주장은 이렇다. 거북이가 1m를 가는 동안 아킬레스는 1000m를 간다. 거북이가 아킬레스보다 1000m 앞에서 출발한다고 하자. 아킬레스가 거북이의 위치에 왔을 때 거북이는 1m 더 나가 있다. 다시 아킬레스가 1m를 따라붙을 때 거북이는 1/1000m 더 나가 있다. 아킬레스가 1/1000m를 따라 잡으면 거북이는 1/1000000m 더 나가 있다. 이처럼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으려 하면 거북이는 항상 아킬레스보다 앞서 있게 되니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논리이다. 특정 상황에서는 제논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훗날 수학자들이 이 논리를 정리해 무한등비수열의 원리와 공식을 유도해 냈고, 제논의 역설은 시덥잖은 이야기가 아니라 무한 수렴의 진리가 담겨진 인류의 위대한 정신 유산으로 남았다.  

    시국이 중차대한 이 시점에서 웬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스크롤바를 길게 끌어내리거나 스마트폰 위의 엄지손가락을 드세게 밀어 올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급하게 답을 찾는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다면 우리는 벌써 개선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조금도 개선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우리는 반성해야만 한다. 

    1945년 8월15일을 기점으로 북쪽은 그보다 일주일 앞서 소련군이 들어왔고 남쪽은 그보다 한 달 늦게 미군이 들어왔다. 레닌시절부터 구축되고 단련된 소련군 정치공작부대 MGB가 북쪽을 조직화하는 동안 미국은 2차대전 중 창설한 정보국 OSS를 해체하고 방첩대 CIC로 기구를 축소한 채 한반도를 좌우합작으로 만들어 독립시켜주고 빨리 손을 떼려고 했었다. 이미 그 때부터 북쪽은 1000m를 앞서 출발한 거북이었고, 우리는 원조 물자로 배 채우며 성장해 간 아킬레스였다.  

    그로부터 70여년 뒤 우리는 세계사의 조류를 제대로 올라탄 자유민주 국가의 국민이 되었고, 저들은 역사속 박제가 된 전체주의의 추종자들이 되었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며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열었고, 저들은 3백만을 굶겨죽이고도 끝내 정권의 명맥만을 이어가는 동방의 거지 깡패 봉건왕조가 되었다. 

    4차 산업 시대를 향하는 21세기의 시대가 우리 편이었고, 목탄차를 굴리는 저들은 시대의 낙오자였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는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게 됐고, 저들은 종교를 아편으로 취급하는 바람에 저 지경이 됐다. 우리는 발이 빠른 아킬레스였고, 북한정권과 그들을 추종하는 주사파 패거리들은 발이 느린 거북이였다.  

    그런데 어째서 오늘날 아킬레스가 거북이에게 밟히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처참할 지경으로. 종래와 같은 분석과 대처방법은 종래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 그게 아니면 다 같이 풀 뜯어 먹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 

    역사는 결국 승자의 기록인데, 그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라 머리가 좋고 나쁨의 차이였다. 머리 좋은 쪽이 머리 나쁜 쪽을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 아킬레스는 거북이보다 머리가 나빴기 때문이지 힘이 약해서가 아니란 얘기다. 남과 북의 대결이나 우파와 주사파와의 대결도 마찬가지 아닐까. 

    청와대를 점령한 주사파 집권세력이 어떤 머리를 쓰는지 살펴봐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거의 사망 직전에 몰렸던 세력이 어떻게 해서, 어떤 머리를 써서 쿠데타도 아닌 탄핵을 통해 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머리 나쁜 아킬레스는 거북이의 거짓과 비열함을 논한다. 어리석은 아킬레스들은 무능하고 불쌍한 박근혜 대통령을 헌법재판소에 세워다 놓고 저들의 거짓과 비열함을 책 열 권 분량으로 나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정당함과 비열함의 게임이 아니다. 

    조작된 테블릿pc와 박근혜 대통령의 청렴함과 최순실 역할의 사소함을 재판관에게 읊조리는 동안 장외에는 전교조에 의해 추동된 학생집단과 민노총에 의해 동원된 노조원들과 언론노조에 의해 세뇌된 독자와 시청자들의 분노가 촛불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정말 이 게임에서 이기고 싶었다면 헌법 재판소 재판관들에게 ‘사문난적斯文亂賊’을 고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저들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갈수록 장외에서는 더 많은 촛불들이 모여들기 때문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 게임은 ‘사문난적’이란 낙인찍는 게임이 아니라 환장하고 달려드는 ‘지지자들 만들기’ 게임이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또 보자. 

    그 게임에서 이긴 쪽은 승부가 빤한 선거를 거쳐 권력을 장악하고 그들 바람대로 反 자본주의적 정책을 펴 나갔다. 원자력발전소를 중단시키며 실업률이 17년 내 최고치를 기록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랑곳 않고 국민의 세금으로 선심정책을 펑 펑 쏟아내고 있다. 

    여기서 머리 나쁜 아킬레스는 집권세력인 거북이의 경제정책이 잘못됐음을 따지고 비난한다. 분명, 저들의 경제정책은 사기에 가깝다. 아니 사기다. 베네수엘라나 브라질이나 남미 여러 나라에서 행한 실험들에 의하면 분명 사기이다. 

    하지만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며 따라갔다가는 거북이의 바로 뒤에서 멈추고 만다는 사실을 어리석은 아킬레스는 모르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증오하는 법만 배운 거북이는 옳은 경제정책을 펼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머리 나쁜 아킬레스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약삭빠른 거북이가 세금을 탕진하듯 투입하는 선심정책의 목적은 ‘경제발전’이 아니라 ‘여론조사 부동의 1위라는 지지층의 확보’다. 어리석은 아킬레스는 여기서도 자기에게 못마땅한 여론조사기관과 싸운다. 지난 3월5일 자유한국당은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잘못된 여론조사로 민심을 조작하고 있다”며 미국 갤럽 본사에 항의 공문을 전달하고, 불신 캠페인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필자는 그 회사에 6년간 전문위원으로 재직한 바 있지만, 한국갤럽 본사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다. 한국갤럽은 창시자 조지 갤럽이 자신의 상호를 독자적으로 써도 좋다는 인증서까지 보내 준, 미국 갤럽과 아무런 상관없는 한국의 독립 법인이다. 한국의 제1야당이 보낸 항의 공문을 받아 든 미국 갤럽의 직원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하다.(전 직장을 옹호하는 듯 오해받을 글이라 쓰기 뭣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머리 나쁜 아킬레스는 선거 때마다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불신하고 그 조사회사를 미워하고 비난하며 심지어 찾아가 싸우기도 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필자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공보특보로 일했다. 이명박 후보보다 열세인 조사결과를 놓고 회의 끝에 캠프는 가장 낮은 조사결과를 발표한 조사회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조사 방법론을 아는 자나 모르는 자나 구분이 없었다. 캠프 전체가 어리석음의 늪에 빠져드는 걸 홀로 막느라 기진맥진하던 가운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조사회사와 싸우는 통에 정작 경쟁후보에게 뒤떨어진 원인을 파악도 못했고 더구나 책임을 가릴 길도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참모 대다수는 후보를 앞세워 둔 채 조사회사와 싸우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그렇게 챙겨갔을 뿐이다. 

    그 후 여러 선거판에서 경험해 보니 머리 나쁜 아킬레스는 다수의 조사기관중에서 가장 낮은 조사결과를 낸 기관과 싸움을 벌인다. 머리 좋은 아킬레스는 자신에게 가장 불리한 조사 결과를 진짜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더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한다. 결과는 머리 좋은 쪽이 이긴다. 항상 그랬다.   

    약삭빠른 거북이가 노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집단이고 머릿수이다. 권력을 잡기 전부터도 그들은 머릿수 모으기 게임에 열중했었다. 2002년 미선·효순 양 사건, 2008년 광우병 사태, 2012년 댓글사태,  2016년 촛불혁명까지....어쩌면 해방 직후부터 그래 왔을 것이다. 다수의 지지세력만 만들어 내면 그걸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애서는 지금도 그 게임이 진행 중이다.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도 그 일환일 뿐이다. 

    자, 이제 저 약삭빠른 거북이를 따라잡고 뒤집어 버릴 방안을 생각해야 할 때다. 더 이상 어리석은 아킬레스가 되지 말고 머리 좋은 아킬레스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건국의 조상들, 우리 아이들, 후손들에게 면목이라도 세울 수 있지 않겠나. ●  

    이동욱 <전 조선일보 기자, 작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