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낸 트루먼-레이건이 소련을 죽이고 한국을 살렸다

국가 지도자는 화를 내야 할 때는 화를 내야 한다

조갑제 칼럼 | 최종편집 2018.04.10 08:07:26


趙甲濟  / 조갑제닷컴 대표

국가 지도자는 화를 내야 할 때는 화를 내야 한다. 화를 내야 할 때 겁을 내면 나라가 불행해진다. 반대로 화를 제대로 내면 역사가 달라진다. 김일성의 南侵 보고를 받은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그 자식들을 막아야 한다"고 화를 내는 순간 한국인들은 구출되었다. KAL 007 격추사건 때의 레이건도 마찬가지였다. 동서 냉전에서 자유진영이 이기도록 만든 미국의 두 지도자는 適期에 화를 낸 사람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김일성에게 화를 낸 사람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에게서는 북한정권과 악당들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없다. 이게 불행의 씨앗이 될지 모른다.
 
1983년 9월1일 269명을 태운 KAL 007편 점보기(보잉747)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가 쏜 미사일을 맞고 추락, 全員 사망하였다. 그때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주의 산타 바바라에 있는 목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안보보좌관 빌 클라크가 워싱턴에서 전화를 걸어 이 참극을 보고하였다. 레이건은 '빌,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기도하세'라고 하였다. 탑승자중 61명은 미국인이었고 래리 맥도널드 하원의원도 희생자였다.
 
후속 보고를 받은 레이건은 '그들은 무고한 시민들이 아닌가. 망할 놈의 러시아인들! 그들은 민간 여객기라는 사실을 알고도 쏘았음이 분명해!'라고 말하였다. 당시 상황은 불투명하였다. 한때는 KAL기가 강제착륙당하였다는 誤報도 나왔다. 소련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을 때였다. 李明博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대로 했다면 레이건은 '소련이 발표할 때까지 기다려. 아무런 증거가 없잖아'라고 신중론을 펴면서 초기 대응의 타이밍을 놓쳤을 것이다.
 
레이건은 그러나 자신의 분노와 확신을 즉시 정책화하였다. 조지 슐츠 국무장관에게 강경 대응을 지시하였다. 사고 발생 20 시간도 안 되어서 슐츠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소련이 민간여객기를 알고도 격추시켰으며 이는 학살행위이고 아주 혐오스러운 짓이라고 쏘아붙였다. '스핑크스'라는 별명대로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로선 아주 이례적인 감정 표출이었다. 이런 자세가 더욱 설득력을 발휘하였다. 이는 레이건의 감정을 대리 표현한 것이기도 하였다. 레이건의 즉각적 반응과 슐츠의 감정이 실린 기자회견이 그 뒤 이 사건을 다루는 미국 정책의 基調를 형성하였다.
 
미국은 電光石火처럼 대응하였다. 일본 나카소네 총리의 협력을 얻어, 북해도의 일본 자위대 기지가 녹음한, KAL기 격추 소련 조종사와 지상 관제사의 대화를 공개, 소련이 민간여객기임을 알고도 쏘았다고 주장하였다. 레이건도 특별 방송연설을 통하여 對蘇 공격에 가세하였다. 그는 소련 조종사가 민간여객기임을 알았고 그래도 미사일을 발사하였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하였다. 미국의 선전戰이 세계 언론을 덮는 바람에 KAL기가 航路를 이탈, 소련 영공에 들어간 사실은 축소되고 소련이 민간여객기를 격추, 269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는 사실만 부각되었다.
 
소련은 미국의 선제공격에 변명으로 일관하였다. 소련 정부는, 침묵을 지키다가 9월6일에야 타스 통신을 통하여 소련 조종사의 실수로 여객기를 격추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소련이 말한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격추는 고의라고 반박하였다. 소련은 KAL기가 미국과 일본이 합작한 스파이 임무를 띠고 있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으나 먹혀 들지 않았다.
 
레이건은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 안보 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슐츠 국무장관에게 特命을 내렸다. 그로미코 소련 외무장관을 몰아세우라는 것이었다. 슐츠는 시키는대로 하였고, 화가 난 그로미코는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내동댕이 쳤다. 미국 보수진영의 기수이던 진 커크페트릭 駐유엔 대사도 對蘇공격에 앞장섰다.
 
이런 선전전에 당황한 것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 안드로포프였다. 그는 소련에서 휴가중이던 駐美 대사 도브리닌을 불러 '장군들이 바보짓을 하였다. 빨리 귀임하여 사태를 수습하라'고 지시하였다. 도브리닌은 상황 파악을 위하여 우스티노프 국방장관을 찾아갔다. 우스티노프는 사무실에서 호출되어온 극동지역 관할 장성들을 세워놓고 혼을 내고 있었다.
 
KAL 007 사건은 세계적으로 反蘇감정을 확산시켰고, 소련 權府의 내부 갈등을 증폭시켰다. 소련의 몰락은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도브리닌도 자신의 회고록 '비밀로(IN CONFIDENCE)'에서 '소련 정부가 미숙하게 대응함으로써 장기적 國益에 크나큰 타격을 주었고, 서방세계에서 잠재하고 있던 反蘇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썼다.
 
미국은 그해 9월8일 소련 國營 항공사 에어로플로트의 미국 내 사무실 폐쇄와 취항금지령도 내렸다. 미국 정부의 이런 성공적 선전戰은, 사건 보고에 접하였을 때 레이건이 터뜨린 분노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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