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북녘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가?
  • 李 竹 / 時事論評家

    “총 2,963명 투표, 찬성 2,958표 / 반대 2표 / 기권 3표”
    지난 3월 3일 제 13기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국가주석(主席) 임기 제한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안을 찬반투표에 부친 결과였다. 그리고 며칠 후...

    “2,970 대(對) 0[zero]”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 제5차 전체회의에서 국가주석·중앙군사위 주석 선출 표결 결과였단다. 이로써 ‘시[習] 따거’는 ‘인민의 영수(領袖),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국가의 조타수’가 된다. 그 명칭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마오를 일컫는 표현이었다고. 내외에서는 ‘시[習] 따거’가 실질적인 황제(皇帝)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런 나라다.

    황제에 오른 ‘시[習] 따거’는 “인류 발전에 공헌하려는 중국의 바램은 진짜다. 어떤 국가도 위협하지 않고 패권도 추구하지 않고 확장도 안 할 것”이라고 했단다. 그리고 “어떤 힘도 중국 인민이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단다. “한 입으로 두 말 한다”는 표현은 뛔국에서는 잘 쓰지 않나 보다. 일구이언(一口二言)은 나중에 또 등장할 테니 이쯤하고...

    ‘시[習] 따거’의 “패권 불(不) 추구” 발언이 있기 보름쯤 전(前) 이 나라 아무개 일간지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본문 인용은 너절할 것 같아 제목만 소개한다. “中군함, 서해 중간선 100번 이상 넘어왔다... 작년 80번, 올해 벌써 20번 월선... 2016년의 10배··· 軍부표도 설치... 中 ”핵추진 항모 건조 중“ 공개”

    이것이 이 나라의 이웃이다. 누천년(累千年)을 이어내려 오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그저 그렇게 넘어가자고 할 수도 있지만, 잊기엔 너무 이른 기억이 있다. 이 나라 저 참외밭에 그 무슨 ‘사드’라는 걸 갖다 놓으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그것 때문에 뛔국이 이 나라에 퍼부은 정치적 압박, 그리고 특히 경제 보복은 누구나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압박과 보복이 한창이던 지난해 4월의 일이다. “롯데그룹이 골프장 땅을 ‘사드’ 부지로 교환한 것에 대해 중국에서 큰 불만이 있었다. 중국 국민들은 이에 대한 불만으로 롯데슈퍼 구매를 않는 등 자발적 행동을 취하고 있다. 중국 정부 책임이 아니다... 한국 언론에서 중국에 ‘금한령’(禁韓令)이 있다고 보도하는데 제가 책임지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한 번도 금한령 같은 것을 발표한 적이 없다...” 언론에선 ‘단언’(斷言)이란 표현을 썼다. 뛔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란 작자가 이 나라를 방문하여 정치권을 휘젓고 다니면서 짖어댄 말이다.

  • 그리고 한 해가 지났다. “중국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우리 기업에 취했던 경제 보복 조치를 사실상 철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청와대가 30일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방한한 양제츠(杨洁篪)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언론에서는 그 작자가 “중국을 믿어 달라”고까지 했다고 썼다.

    불과 일년(一年) 전(前)의 거짓과 시치미 떼기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몰염치의 극치다. 허나 분명 배경과 이유가 있을 터이다.

    양키나라의 압박과 제재를 견디기 어려운 북녘의 세습독재정권이 역대급 ‘비핵화’(非核化) 사기극(詐欺劇)을 꾸렸다. ‘평화’라는 그럴듯한 또 하나의 주제(主題)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이제 간보기 서극(序劇)에 이어 본 무대(舞臺)가 열린다. 이에 앞서 ‘시[習] 따거’가 그 사기극의 설계자이자 주역임을 자처하는 북녘의 ‘으니’를 친히 불러들여 자신 편에 묶어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어서...

     

  • 그 다음 차례가 바로 이 나라 ‘촛불 정권’이었을 게다. 이 나라의 ‘아직은 동맹국’을 ‘언제 적 동맹국’으로 만들기 위해, 즉 ‘한미동맹’을 떼어놓을 목적으로 던지 미끼 중의 하나가 바로 “경제 보복 해제” 아니겠는가. 일년 전의 그 ‘단언’을 쪽팔림에 아랑곳 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뒤집으면서까지.
      
    물론 현재 진행형인 이 나라와 ‘아직은 동맹국’ 간의 무역 마찰 등을 잘 살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머지않아 본 무대가 펼쳐질 ‘비핵화와 평화’를 주제로 한 역대급 사기극에서 저들과 함께 연기(演技)를 할 수밖에 없다. 말이 ‘연기’지 이 나라의 존망이 걸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에 다름 아니다. 저들과 ‘[북녘의] 비핵화(非核化)’를 거래하고 ‘평화’를 협상해야 한다. ‘중재자’나 ‘중매쟁이’, 또는 ‘운전석’과 ‘조수석’과 ‘뒷좌석’ 등등을 호사가들이 떠들어대지만, 결국 최종의 당사자는 이 나라와 국민들이다. 그런데...

    뛔국은 공산당 일당독재(一黨獨裁)의 전체주의 나라다. 이에 비해 이 나라는 ‘아직은 자유민주주의’의 옷을 걸치고 있다. 그러니 ‘평화’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일 수밖에 없다. 한편은 ‘항복’과 ‘복종’이 전제된 평화를, 다른 한편은 ‘호혜’(互惠)의 평화를 원한다. 또한 저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북녘의] 비핵화’라는 것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한입으로 두 말’ 하는 속성은 힘이 있기도 하고, 특히 뛔국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자칫 저들과 ‘비핵화’와 ‘평화’를 논(論)하고 협상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건 북녘 세습독재자의 손아귀에 있는 핵무기를 방조·묵인하고 혼란 및 전쟁을 예비하는 함정에 빠지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나라에는 ‘아직은 동맹국’에게 얼굴을 붉히면서도, 마음으로는 ‘일구이언(一口二言)의 이웃’에 솔깃 하는 무리들이 그 사기극 무대 주변에 너무나 많은 듯하다.

    사대(事大)와 조공(朝貢), 남한산성과 환향녀(還鄕女) 등의 기억은 너무 역사적이고 고전적이라 치자. 그러면 1950년 10월의 압록강과 그 이듬해 1월 4일의 서울은 어떤가. 그걸 잊는 순간 그 날이 다시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나라 국민들은 항상 기억 속에 담아두고 수시로 점검해 봐야 한다. 황사(黃砂)가 섞인 미세먼지의 농도를 체크하듯이, 습관적으로... 


    <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