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단 평양 공연, 연예인·언론 들뜬 분위기 속에 ‘김정은 찬양’ 분위기마저
  • ▲ 지난 1일 평양 공연 이후 김정은과 만난 한국 가수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 지난 1일 평양 공연 이후 김정은과 만난 한국 가수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지난 1일 북한 동평양 대극장에서 한국 예술단의 공연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정은 부부가 깜짝 참석하자 한국 예술계와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평양에 간 연예인과 일부 언론들의 보도 내용을 보면 독재자 김정은을 찬양하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북한 선전매체 보도, 이번에는 ‘사실’이었다

    北선전매체 ‘노동신문’은 지난 2일에야 김정은이 예술단 공연을 관람한 사실을 전했다. 신문은 김정은이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 공연 장면, 한국 예술단과 김정은이 찍은 기념사진 등 8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지면의 경우 1면에 한국 예술단과 김정은이 찍은 기념사진을 배치했다.

    北‘노동신문’은 김정은의 활동을 찬양하는 보도에서 “이날 ‘봄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무대에는 남측의 유명한 인기 배우들이 출연하여 자기들의 애창곡들을 열창하였다”면서 “출연자들은 관람객들과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안고 인사도 나누고 자기들의 평양 방문 소감도 이야기하면서 또 다시 북과 남이 하나되어 화합의 무대가 마련된 흥분과 격정을 누르지 못했다”고 묘사했다.

    北‘노동신문’은 또한 “민족의 화합을 염원하는 북과 남의 강렬한 열망과 마음들이 합쳐져 하나의 겨레임을 다시금 절감하게 한 공연은 관람객들의 절찬을 받았다”면서 “공연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막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 앞뒤로는 김정은이 한국 예술단의 손을 잡아주며 격려를 했고, 예술단 공연을 칭찬했다는 둥 김정은을 찬양하는 내용밖에 없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北선전매체의 이런 김정은 찬양을 보고 비웃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평양 공연에 간 한국 연예인 가운데 일부가 무척 기뻐하며 김정은을 우러러 보는 듯 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연합뉴스’는 평양 공연에 참가한 걸그룹 ‘레드벨벳’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인터뷰에서 멤버 ‘아이린’은 “북측의 많은 분들이 호응을 엄청 잘해 주셨고, 박수도 많이 쳐주시고, 끝날 때 다 같이 노래를 하고 퇴장한 뒤에도 계속 박수를 쳐주셔서 기뻤다”고 밝혔고, 멤버 ‘슬기’는 “마지막에 선배님들과 노래하는데 북측 분들도 같이 부르시더라”며 “같이 환호하면서 부르는 걸 보고 한민족인 것이 느껴져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멤버 ‘예리’의 소감은 지난 2일부터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첫 공연에만 참석할 것 같다며 악수해 주셨는데 너무 떨렸다, (김정은과) 악수조차 할 줄 몰랐다”면서 “그것도 그렇지만 북측 많은 분들을 만났다는 것을 더 큰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 인터뷰 내용이 “김정은과 악수를 해서 영광이었다”는 말로 잘못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레드벨벳’ 멤버 ‘예리’가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만나고 악수한 것이 영광”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라지만 표정이나 태도를 보면 평양에 가서 김정은을 만난 데 대해 매우 흥분했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언론들 또한 김정은이 ‘레드 벨벳’의 공연을 보러 온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그가 “내가 원래는 3일 공연에 오려고 했는데 일정을 조정해서 1일 왔다”고 말한 것을 두고 ‘레드 벨벳’의 열성 팬인 양 설명하기도 했다.

    평양에 간 한국 공연단들과 언론이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이번 北‘노동신문’의 찬양 기사는 확실히 ‘팩트’에 기초한 것이었다.
  • ▲ 지난 1일 평양공연 공동취재단이 찍어 송출한 평양 시민들의 사진. ⓒ뉴시스-공동취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일 평양공연 공동취재단이 찍어 송출한 평양 시민들의 사진. ⓒ뉴시스-공동취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 매체의 “평양에도 봄이…” 기사 보다 더한 韓언론들의 호들갑

    오랜만의 평양 취재여서인지 일부 언론들도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특히 모 매체의 평양 스케치 사진 보도는 마치 남북관계가 이미 모두 해빙된 듯한 느낌을 줬다.

    모 매체는 한국 예술단의 1차 공연을 앞둔 시점에서 평양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촬영한 뒤 “평양에도 봄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여러 장의 사진에는 한국 예술단과 취재단의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 앞을 걸어가는 행인들이 찍혀 있었다.

    “이날 평양의 기온은 영상 10~20도로 완연한 봄 날씨였다”면서 “거리에는 가벼운 차림의 여성들이 눈에 띄었고, 놀이터에서는 어린이들이 회전목마를 타는 모습을 보였다. 노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카드 놀이 등을 하고 있었다”는 사진 설명도 붙었다.

    기사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제목 “평양에도 봄이….” 또한 이날의 평양 기온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맞는 말이었다. 한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취재하러 간 기자들은 통일부 출입기자단 가운데 순번에 따라 풀(Pool)을 맡은 사람들이다. 때문에 “평양에도 봄이…”라는 기사 속 사진을 해당 매체가 찍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둘러싼 한국 언론들의 호들갑 때문에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해당 기사를 보면서 “한국은 지금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때문에 겨울처럼 살벌한 데 평양에는 벌써 봄이 왔느냐, 핵무기는 어디 갔느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한국 예술단 평양 공연에 대한 일부 언론 보도가 지나치게 ‘띄워주기’ 일변도인 탓도 있어 보인다. 한 예로 걸그룹 ‘레드벨벳’이 자신들의 히트곡 ‘빨간 맛’을 불렀고 김정은이 여기에 박수를 쳤다는 사실 하나로 “김정은의 취향을 저격했다”거나 “열광의 평양 공연”, “외신도 주목하는 평양 공연” 등의 표현을 써가며 별의별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문제로 국제적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다수의 시민들은 이런 언론들의 호들갑이 그리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다.
  • ▲ 김정은이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관람한 날 北선전매체 '노동신문'은
    ▲ 김정은이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관람한 날 北선전매체 '노동신문'은 "썩어빠진 부르주아의 생활양식을 배격해야 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즉 한국 가수들의 평양 공연을 추진한 김정은은 혁명의식이 투철한 평양 시민들에게 '썩어빠진 부르주아 생활양식'을 소개한 흉적'이 되는 셈이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기립박수 보낸 김정은의 속내 “부르주아 썩은 물 경계하라”

    지난 1일 한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에 김정은 부부뿐만 아니라 노동당 고위층이 대거 참석했지만 같은 날 北선전매체 ‘노동신문’은 개인 칼럼을 통해 “썩어빠진 부르주아 생활양식을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北‘노동신문’은 해당 칼럼을 통해 “자본주의 문화 제도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 실현에만 철저히 복무하는 가장 반동적인 문화제도이고,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반동문화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착취계급의 이익에 맞게 근로대중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억압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고 주장했다.

    北‘노동신문’은 이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교육, 보건 등을 비난한 뒤에는 “자본주의 문학예술도 근로대중을 노예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설, 영화, 음악, 무용, 미술 등은 모두 썩어빠진 부르주아 생활양식을 유포시켜 사람들을 부화타락하게 만들고 그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는 독소 작용을 하며, 이는 자주성을 지향하는 근로대중의 요구와 완전히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北‘노동신문’은 또한 “자본주의 사회는 극소수 특권계층에게는 천당이 되지만 돈 없는 근로대중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사회”라며 “이런 제도 아래서 사회계급적 모순과 대립이 격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北‘노동신문’의 주장을 대입하면, 평양 공연을 관람한 뒤 기립박수를 치고, 이어 출연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남측 예술단의 평양 방문이 민족의 하나된 모습을 과시하는 의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기념촬영까지 한 김정은과 그 측근들은 “혁명의식이 투철한 평양 시민들에게 썩어빠진 부르주아 생활양식을 유포한 흉적”이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이 “썩어빠진 부르주아 생활양식이 혁명의 심장 평양에 퍼지는 것”마저 감수하면서 남북 예술공연 교류를 적극 추진하는,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한국 사회가 예술단 평양 공연의 성공에 기뻐하며, 마치 통일이 다 된 것처럼 희희낙락해도 냉엄한 현실,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로 한국과 미국, 일본을 위협하고 있으며, 김정은 정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현실은 어째 한국 사회보다 미국과 일본이 더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김정은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완전하게,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되돌릴 수 없게 폐기하기 위해 남북 예술공연 교류가 100번 필요하다면 지금과 같은 ‘상호유화공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와 탄도미사일 폐기에 대한 그 어떤 약속과 행동도 안 했음에도 이미 북한이 무장해제하고 남북이 통일된 것처럼 들뜨는 것은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