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들어서 헤어지기 싫다" 전직 영부인 맞나
  • ▲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지난달 26일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령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지난달 26일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령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 이희호 여사의 위법 경호 실태를 지적하는 외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당 김진태 의원의 목소리는 실정법상 정확한 지적이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제4조 1항 3호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과 그 배우자는 퇴임 후 10년 이내의 범위에서 경호처의 경호대상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24일에 퇴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에 대한 경호는 2013년 2월 24일로 종료됐어야 한다.

    같은 조 3항에서 '배우자의 요청에 따라 처장이 고령 등의 사유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5년의 범위에서 규정된 기간을 넘어 경호할 수 있다'는 조항을 감안하더라도, 올해 2월 24일로 경호기간이 끝난다. 따라서 청와대 경호처의 경호제공은 중단하고, 경호 책임을 경찰로 이관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경호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다만 경호 책임을 청와대 경호처에서 경찰로 이관하자는 주장이다.

    대통령은 점차 젊은 나이에 당선되는 추세인데, '백세시대'로 기대수명은 늘어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을 언제까지나 고비용의 경호처 직원들로 경호할 수는 없다. 하물며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도 않은 전직 영부인이라면, 당연히 특정 시점에는 경호를 이관해야 마땅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행 법에서 규정된 10년 경호, 5년 연장도 오히려 지나치게 긴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희호 여사에 대한 청와대 경호처의 경호기간을 연장해달라는 논지를 보면, 그 이유라는 게 고작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경호원들과 정이 들어서 헤어지기 싫다"는 지극히 사사로운 이유다.

    이희호 여사를 경호하는 인력은 청와대 경호처 소속으로, 이희호 여사의 사사로운 사복(私僕)이 아니라 엄연한 공복(公僕) 신분이다. 공무원인 경호처 직원들을 경호대상이 자기가 정이 들었다는 이유로 바꾸지 말아달라는 것은 한때 영부인 지위에 있었다고 믿을 수 없을만큼 공사 분별이 없는 주장이다.

    그러면 이들 공무원들은 이희호 여사가 타계할 때까지 그 곁을 떠날 수 없고, 그 비용은 꼬박꼬박 국민이 혈세로 부담해야 맞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 구제금융 사태를 극복하자며 국민 모두에게 땀과 눈물, 고통의 분담을 요구했다. 이제 국민들은 그 배우자 이희호 여사가 타계할 때까지 정들었던 경호 인력을 붙여주자며, 또 땀과 눈물,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것인가.

    이처럼 명분도, 염치도 없는 전직 대통령 배우자의 실정법 위반 경호 현실을 홀로 지적한 김진태 의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목소리는 정치공학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많다.

    김진태 의원은 지난해 5·9 대선을 앞두고 제1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나가 차점 득표를 했던 대권주자 반열의 정치인이다. 특정 권역에서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전직 대통령 배우자의 경호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유리할 게 없다.

    게다가 국회에서도 "여사께서 정든 경호원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하시지 않느냐"며 국민의 세 부담에는 아랑곳 없이 부화뇌동해 기상천외한 '이희호법'을 만들려는 무리들이 있는 판국에 '좋은 게 좋다' 식으로 넘어가면 본인도 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대로 하자"는 주장을 꺼내고, 청와대 경호처에 실정법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공문까지 보냈는데, 아니나다를까 여야를 막론하고 그의 '바른 목소리'에 대한 응원의 흐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청와대 경호처의 최종명령권자는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 대한 위법 경호를 지시했거나, 알고서도 묵인했다면 실정법 위반의 교사·방조범이 된다.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탄핵소추당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김진태 의원이 주의를 환기해줬는데, 속칭 '문빠'들은 고마운 줄 모르고 달려들어 악플 달기에 여념이 없으니 기이한 일이다.

    이들 답없는 '문빠'들이야 그렇다치더라도, 김진태 의원의 소속 정당인 한국당에서도 반향이 뒤따르지 않고 있다.

    "법대로 하자"는 주장을 보수정당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유한국당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를 지향하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최근 공노총의 요구에 따라, 공무원노조에도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를 도입해 유급의 노조전임자를 두도록 하는 방안을 놓고 당내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보수정당의 원내대표가 국민의 혈세 부담을 늘리는 공무원노조 유급전임자 문제에 대해 반대는 못할망정 앞장서서 당내 의원들을 설득하고 다닌다는 게 답답할 노릇이다.

    그럴 여력이 있으면 고비용의 청와대 경호처 직원들이 전직 대통령 배우자를 위법하게 경호하고 있어 국민의 혈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작태에 대해 "법대로 하자"고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낸 김진태 의원을 원내지도부가 뒷받침할 방안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 ▲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법률에 위배된 위법 경호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청와대 경호처에 발송한 공문 사본. ⓒ뉴데일리 사진DB
    ▲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법률에 위배된 위법 경호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청와대 경호처에 발송한 공문 사본. ⓒ뉴데일리 사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