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과거사委 대검에 권고...사전 조사 거쳐 본 조사 여부 결정
  • ▲ 6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연석회의에서 김갑배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 6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연석회의에서 김갑배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9년 전 숱한 의혹만을 남기고 끝난 ‘장자연 리스트 사건’이 검찰의 재조사 목록에 포함됐다. 본 조사가 이뤄지려면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사전 조사를 거쳐야 하지만, 법무부 과거사위원회의 공식 발표 전부터 정치권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사건이라, 본 조사 명단에서 이 사건이 제외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관측이다.

    연예계에 갓 데뷔한 신인여배우가 2년여에 걸쳐 지속적으로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며, 대상 남성들 100여명의 명단이 포함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이 사건은, 소문만 무성한 채 별 성과 없이 수사가 마무리됐다. 문제의 ‘성상납 리스트’에는 정치권, 언론계, 재계, 연예기획사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관련 혐의로 기소된 인사는 한명도 없었다. 검찰은 장씨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대표와 매니저를 각각 폭행 및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장씨 사건이 본 조사 대상에 최종 포함될 경우,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다만, 당사자가 이미 사망했고,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랜 시간이 흘러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혐의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고 시효 문제도 걸려 있어 ‘성상납리스트’ 남성들에 대한 공개 소환 역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관측이다.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장자연 리스트 사건’ 재조사 국민청원은 23만건을 넘어섰다.

    법무부 과거사위원회는 2일, 장씨 사건을 비롯해 춘천 강간살해 사건(1972),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엄궁동 살인사건, 1990),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 사건(2008년), 용산참사 사건(2009년) 등 5건을 2차 사전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변론을 맡은 사건으로, 지난해 2월 영화 ‘재심’을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이 “그분들(피고인)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한 게 평생 가장 한이 되는 사건”이라고 직접 밝히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은 1990년 1월 4일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 갈대숲에서 머리를 둔기로 맞아 두개골이 함몰된 30대 여성 시신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시신 외에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경찰은 이듬해 11월 낙동강 갈대숲에서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을 빼앗은 용의자 2명을 검거, 위 사건의 범인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피고인들은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을 받아 출소했다. 피고인들은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고문과 허위자백 강요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며, 문재인 변호사도 재판과정에서 같은 내용의 항변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춘천 강간살해 사건은 파출소장의 9살 딸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당한 사건으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신속한 범인 검거를 지시했다. 2011년 법원은 이 사건으로 15년간 복역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과정에서 경찰이 피고인을 고문해 허위자백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몇 해 전 개봉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소재가 됐다.

    이날 위원회는 1차 사전 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한 12개 사건 중 8개 사건에 대한 본 조사를 대검 진상조사단에 권고했다. 
    본 조사 대상은 ▲김근태 고문 사건(1985) ▲형제복지원 사건(1986)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 ▲약촌오거리 사건(2000) ▲MBC PD수첩 사건(2008) ▲청와대 및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사건(2010) ▲신한금융 관련 사건(2008, 2010, 2015) 이다.

    본 조사 대상에서 빠진 ▲삼례 나라슈퍼 사건(1999) ▲유성기업 노조 파괴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2011) ▲서울시공무원 유우성 사건(2012)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건(2013) 등 4건에 대해서도 조사를 계속 진행키로 했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법무부 과거사위원회가 사전 조사 및 본 조사 대상 사건을 확정하면서, 대검 진상조사단은 이들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병행 실시할 계획이다. 위원회는 “과거사 정리의 의미와 사건이 갖는 중대성, 국민적 관심 등을 고려해 객관적으로 대상 사건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가 밝힌 사건 선정 주요기준은 ‘검찰권 남용’과 ‘인권침해’다.

    그러나 MBC PD수첩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용산참사와 낙동강변 살인사건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된 사실을 놓고,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