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대한민국호 왜 자유가 생명인가?

반자유의 흐름을 경계한다

지영해 칼럼 | 최종편집 2018.03.29 15:37:46

▲ 국회에 제출된 대통령 개헌안. ⓒ 사진 뉴시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민주당 의원의 40%가 헌법 전문에서 ‘자유’를 빼기  원하다고 한다. 청와대가 발표한 개헌초안에는 토지공개념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 또한 재산소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온통 이 반자유적 지성이 휩쓸고 있으며, 현 상황은 매우 위태로운 지경이다. 인간에게 자유란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 생명 자체를 죽이는 데에 국력이 집중되고 있다. 왜 자유가 생명인가?

우선 자유란 무엇일까? 여기서 자유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얘기하는 그런 평범한 자유를 말한다. 자기가 어떤 목적을 추구할 때, 남으로부터 방해받지 않을 행동의 자유를 뜻한다.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은 내가 어떤 행동이나 선택을 함에 있어서 순전히 나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왜 자유가 중요할까?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동식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진화를 한다. 각 생물체는 서로 다른 신체 조건과 능력, 지능을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기본 생존조건이 어떠한 한계를 갖고 있는가를 매우 잘 알며, 그 한계 내에서 최적의 생존환경을 만들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정교한 생존전략을 발전시켜 간다.

보통 TV에서 보는 동물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종적(種的)으로 서로 다른, 또 같은 종 내에서도 능력이 서로 다른 개체들이 어떻게 다양한 생존전략을 발전시키고 구사해서 생존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예로 가득하다.예를 들어 접근하는 적을 보고 카멜레온은 피부색깔을 바꿔 위험을 모면하지만, 고슴도치는 몸을 웅크리고 몸의 가시를 세워 스스로를 보호한다.

부리와 머리뼈 구조가 강한 딱따구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나무 기둥을 쪼아 둥우리를 만들지만, 그런 구조를 갖지 못하는 제비는 초가집 처마 밑에 집어 지어 비를 피한다. 카멜레온이 고슴도치의 방어 전략을 택하지 않고, 제비가 딱따구리의 집짓기방식을 택하지 않는 것은 자기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능력과 재능, 그리고 속성 안에서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생존전략을 찾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어떤 개체에게 주어진 생존에 필요한 재능과 기술, 지능, 사고방식은 대부분 다른 개체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다. 그 기술과 재능, 지능은 그 개체가 태어나는 첫날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고, 그 성장과정이 다른 개체에게 완전히 공개되지는 않는다.

성장과정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성장의 총체적 가능성, 그리고 한계를 결정짓는 유전자의 내용은 거의 절대적으로 비밀이다. 그것은 타자에게만 비밀이 아니라, 심지어 그 유전자를 소유한 그 자신에게조차도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개체의 생존에 필요한 재능과 지능에 관한 정보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상황에서 타인의 판단과 행동방식에 개입하는 것은 그 개체의 생존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경우까지 있다. 각 개체가 타인의 간섭과 강요에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간섭이 자기의 생존 확률을 낮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방해 받지 않을 자유를 추구하는 데에는 이렇게 깊은 생물학적 이유가 있다.


▲ 지난해 11월13일 북한군 병사 오청성이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은 귀순 현장. ⓒ 사진 뉴시스

바로 이러한 개체간 생존 전략의 차이로 인해, 같은 한 가지 문제를 놓고 보는 관점과 해결방식이 각각 다 다르게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로 다른 전략과 해결책은 각 개체에게는 최선의 방식이다. 물론 사안에 따라 오직 하나의 해결책, 혹은 오직 하나의 ‘최선의 방책’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능력이나 지능이 더 뛰어난 쪽이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해결책은 다른 존재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 있을 수 있다. 어떤 사고나, 해결책 등이 그 개체의 이해 능력 바깥에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모든 생명체는 누구나 바로 그런 한계를 안고 살아간다. 인간에게서 흔히 보는 ‘무지의 숙명’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유가 모든 생명체가 생명을 영위해 가는 기본적인 조건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자에게 가장 유리한 생존방식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 그 개체를 주변에서 아무리 자세히 관찰한다 하더라도 그 개체 자신만큼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은 자신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행동과 선택을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자유의 도덕률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생명권을 매개로 하여 바로 이 자연에 팽배한 생물학적 원칙 위에 서 있는 일종의 자연권인 것이다.이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부모들은 자식의 생존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자식의 교육과정에 깊이 개입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은 쉽사리 역효과가 날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앞날을 망치는 결과까지도 올 수 있다. 충분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면, 자기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단순히 어떤 선택 안에 마음이 꽂혀 있는 부모들에게는 그 외의 길을 고려하는 자식들이 그저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잘 아는 자식들은 부모들의 이해와 눈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말이다.


▲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에 반대했다. 시장에 대한 정보는 그 시장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왜곡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네이버 화면 캡처

방해받지 않을 자유가 중요한 것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사이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마을이나 지역에 공유되는 역사와 전통적 가치를 상위의 국가나 외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전체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각 마을의 고유한 전통과 역사는 존중될 수밖에 없고, 그들의 공공적인 삶은 서로 공유된 고유한 전통과 역사적 경험에 근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그 마을과 공동체는 가장 크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번창할 수 있다. 이것이 서구사회에서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배경이다. 지방자치제의 근간은 말 그대로 그 지방의 자율적 결정권이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에는 수없이 많은 생산자와 상인, 소비자들이 얽혀서 복잡한 수요와 공급체제를 이루고 그를 통해 재화가 생산 재분배되는 시스템이다. 시장은 시장 나름대로의 고유한 생산과 분배, 소비의 메커니즘과 규칙이 지배한다. 매일 재화의 생산과 분배 소비에 깊이 참여하는 재벌과, 중소기업, 노동자, 도소매업, 소비자 등 각 그룹과 개인들은 이 메커니즘과 규칙에 상당한 지식과 민감성을 갖는다.

매일 매일 변화하는 수요와 공급의 조건과 추세들은 이들 경제행위자들이 생존해 나아가고 이익을 창출하는 데 몰라서는 안 될 중요한 요인들이다. 따라서 이들 행위자들은 본능적으로 시장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변화와 추세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된다. 매일 매일 시장과 더불어 눈 뜨고 숨쉬며,  잘 때까지 시장의 숨결을 자기 숨결처럼 느끼며 산다.

정부와 같이 시장의 제반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존재는 그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집단들이 갖는 이 본능적 생존감각과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마치 자식의 생존전략에 관한 모든 정보가 부모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듯이, 시장에서 움직이는 구성원들의 생존전략은 정부에게 다 공개되지 않는다.

시장은 정부에게 있어서 근본적으로 베일에 싸인 영역이다.


▲ 민주노총이 주최한 최저임금 인상 집회의 한 장면. ⓒ 사진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최근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재벌구조개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등, 시장의 자율성에 개입하는 일련의 정책을 추구해 왔다. 그 때문에 연속적인 해고와 설비 자동화를 통한 유실 생산성의 대체 노력, 고용시장의 축소, 국내 거주 해외 기업의 철수와 국내 기업의 생산시설 해외 이전 등, 경제의 근간이 파괴되는 재난적인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시장에서 시장참여자의 자유를 침해하면 자연히 각 참여자의 생존가능성을 낮추게 되며, 기업이나 소비자들은 자연히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정부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대안책을 강구한다.

근본적으로 시장 구성원들의 다양한 생존전략은 정부가 이해하고 개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복잡성을 갖는다. 정부가 시장의 효율성을 급격히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그 수많은 시장참여자들을 이해하고 통제할 방법은 없다. 지금 시장은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선택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인간의 관계에서나,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나, 중앙정부와 지방과의 관계에서나, 정부와 시장간의 관계에서나, 간섭, 방해, 조정, 통제, 금지는 각 개인이나 집단의 생존성 저하를 가져오며, 이것이 문화, 예술,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질 때는, 그 사회 자체가 생명력을 상실하고, 생산성이 급감하며, 국가는 국제경쟁력을 잃고, 기업은 무너지며, 개인은 피폐한 문화와 생활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영국병이 창궐했던 70년대 영국이 그랬고, 볼세비키 혁명으로 만들어진 구소련이 그랬고, 지금은 세계 어느 곳 그 유래를 찾기 힘든 북한의 가난과 참상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좌파 그리고 민주당 의원들이 좋아하는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적 기본 질서’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물론 그들이 더 잘 안다.

‘자유’가 사라진 그 공간은 극단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일종의 떼거지 민주주의로 채워질 수 밖에 없다. 극단적인 평등은 결국 그 속을 뒤집어 보면 방해받지 않을 자유를 없애자는 것이다. 개인간 집단간 평등은 방해받지 않을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는 절대로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무덤으로 가는 민주주의다. 평등에의 열망이 국가와 개인에게 미친 해악은 이미 망해서 쇠약해지거나 소멸된 나라의 역사 속에서 충분히 보아 왔다. 


▲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사실 소위 촛불혁명 이후 한국사회는 이미 이러한 단계로 진입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원전폐쇄 논의를 위한 시민참여단이나, 청와대 국민청원제도, 며칠 전 개헌과 관련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제, 법안의 국민발안제 등은 겉은 국민참여, 자율적 결정, 주권자 중심정치 등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상 그 본질은 다수가 떼거지의 힘으로 무분별하게 개인과 각종 개별 결사체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자유가 곧 생명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사회, 또 그런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국가에서는 필연적으로 각 개인과 집단의 자연적 생명력과 생존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하다. 국가와 사회, 개인의 급격한 공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공멸의 절벽을 향해 빛의 속도로 달려 가고 있다.    



지 영해

옥스포드대학교 동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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