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방사, '신체하단부 사격'…발포 계획 수립" 보도1시간 전 SBS가 보도한 내용 되풀이..해석은 180도 달라국방부 "촛불 든 시민들이 '작전대상?' 전혀 사실 무근"
  •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던 시위대 중 일부가 갑자기 청와대 경내로 돌진한다. 이들이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대상은 당연히 위병소 초소를 지키고 있는 초병일 것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머무는 곳이다. 청와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떠나,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집무실이라는 점에서 최고 수준의 보안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계 지역으로 진입하려는 침입자를 발견하면, 초병은 '멈추라'는 구두 경고를 한 뒤 수차례 경고에도 말을 듣지 않으면 즉각 테이저건(Taser Gun) 등으로 강제 진압에 나서야 한다. 문제는 경계 지역으로 침투한 침입자가 초병에게 달려들어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거나 총기를 빼앗으려는 시도를 할 때다. 구두 경고를 해도, 공포탄을 쏴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다.

    수방사, 촛불시민 대상 '발포' 계획 수립?


    "2016년 11월, 촛불집회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수도방위사령부가 촛불 시민들의 청와대 진입을 가정해 발포 계획까지 세웠던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시위대가 청와대 경비 병력의 총기를 빼앗거나 초병에게 위해를 가하면 '신체 하단부를 사격'하라는 내용입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비무장 시민을 향해 군이 총을 쏘는 상황까지 대비했다는 점에서 큰 파문이 예상됩니다. 수도방위사령부의 대외비 문건을 MBC가 단독으로 확인했습니다."


    MBC뉴스데스크는 지난 27일 오후 8시 15분 『[단독] "신체 하단부 사격"…발포 지침 있었다』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시위대가 청와대 경비 병력의 총기를 빼앗거나 초병에게 위해를 가하면 '신체 하단부를 사격'하라는 내용이 담긴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의 대외비 문건을 단독으로 확인했다"며 사실상 군 수뇌부로부터 시위대의 신체 하단부를 사격하라는 '발포 지침'이 있었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MBC뉴스데스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2016년 11월, 항의 시위가 절절에 치달을 무렵 경찰과 함께 청와대 경비를 맡고 있던 육군 수도방위사령부는 촛불 집회 대비 계획을 세웠다"며 "이게 바로 수방사가 작성한 '청와대 시위 집회 대비계획'"이라고 밝혔다.

    MBC뉴스데스크는 "해당 문건을 살펴보면 시위대 진로에 따른 예상 위협과 이에 대비하는 군의 계획이 차례로 열거되는데, 시위대가 청와대 경계지역 진입을 시도하면 비살상무기로 우선 저지하고 저지 불가시 전략적 진입을 허용한 뒤 예비대를 투입해 검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시위대가 총기를 빼앗거나 초병에게 직접 위해를 가할 때는 신체 하단부를 사격하라고 나온다"며 "전제 조건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군이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식의 보도를 이어갔다.

    끝으로 MBC뉴스데스크는 "촛불시위 진압을 위해 병력 동원을 검토했다는 논란은 있었지만 군의 발포 지침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앞뒤 맥락은 생략한 채 군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쏠 수 있도록 허용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거듭 지적했다.

    이 보도는 몇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단독 보도가 아니다. 이날 MBC뉴스데스크가 수방사의 '청와대 시위·집회 대비계획'을 공개하기에 앞서, 이미 SBS는 기자수첩 형식의 기사를 통해 당시 수방사가 세웠던 경내 방비 계획을 밝히고, 그 안에 '경계 지역으로 진입한 시위대가 초병의 총기를 빼앗거나 초병을 위협할 때에 한 해 수차례 경고 후 총기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총기 사용 지침이 담겨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두 번째로 MBC뉴스데스크는 해당 보도에서 "군이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점을 수차례 거론하며 군이 비무장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발포'까지 염두에 뒀다는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시위대가 청와대 경비를 뚫고 경내 진입을 시도한다는 자체도 비현실적이지만, 비무장한 시민이 총기를 든 군인을 위협하고 총기를 뺏으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시위대가 아닌 고도로 훈련된 테러집단이라면 또 모를까, 일반 시민이 총기를 든 군인에게 맨몸으로 대항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군인이 총기를 발포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건, 결국 상대방도 이와 필적한 수준으로 '무장'을 했다는 걸 의미한다. 수방사에서 초병에게 총기 사용을 허용한 상황은 이처럼 일상에서 일어나기 힘든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를 가정한 것이다.

    MBC뉴스데스크는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이 문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촛불 시민들을 군의 작전 대상, 즉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라며 "총을 쏘는 상황을 가정한 것도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자의적인 해석을 달았다.

    경호·경비 계획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세워야 한다.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가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에도 침착한 대응을 할 수가 있다. 오래 전 김신조가 이끄는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평소 방비태세를 철저히 유지한 경찰 덕분에 이들의 대통령 암살 시도는 불발에 그칠 수 있었다. 따라서 수방사가 대비 계획에 '사격 지침'을 넣은 것은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르는 '가상의 적'을 염두에 둔 것이지, 평화적으로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다.

    MBC뉴스데스크 보도에 앞서 수방사의 '청와대 시위·집회 대비계획'을 공개한 SBS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48조의 '초병이 폭행당하거나 당할 우려가 있을 경우, 그 상황이 급박하여 자위상 부득이할 때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3항이 총기 사용 지침의 근거가 되고 있다"며 "수방사는 법 기준보다 총기 사용을 제한한 점이 보인다는 게 국방부 감사의 결론"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48조에 따르면 ▲책임구역 내 인원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보호함에 있어서 그 상황이 급박해 무기를 사용하지 아니하면 보호할 방법이 없을 때 ▲국방부장관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수하(誰何)를 해도 이에 불응, 대답이 없거나, 도주하거나 또는 초병에게 접근할 때 ▲초병이 폭행을 당하거나 또는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그 상황이 급박해 자위상 부득이할 때 초병은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휴대하고 있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기돼 있다.

    여기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만 돼 있을 뿐 어떻게 사용하라는 지침은 나와 있지 않다. 그 지침은 수방사의 총기 사용 규정에 자세히 언급돼 있다. 수방사 초병은 위급한 상황 발생시 ▲가장 먼저 구두 경고를 하고 ▲두 번째로 공포탄을 공중에 쏜 뒤 그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실탄 공중 사격을 하고 ▲마지막으로 신체 하단부를 사격하도록 돼 있다.

    SBS가 공개한 '청와대 시위·집회 대비계획'의 해당 항목에도 "총기피탈 또는 초병위협시 3회 경고 후 신체하단부 사격"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중 '3회 경고'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지만, 본디 수방사 총기 사용 지침이 실탄 발포까지 총 4단계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3회 경고'는 '구두 경고'와 '공포탄·실탄 공중 사격'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MBC뉴스데스크는 "수방사의 해당 문건은 1,2,3단계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4단계 신체 하단부 사격만 언급해 과잉 대응을 유발할 수도 있다"며 "수방사가 총기 사용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의혹도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해석을 곁들였다.

    '청와대 시위·집회 대비계획'은 수방사가 작성한 문건이다. 따라서 초병이 침입자의 신체 하단부를 사격하기 전, 수차례 경고와 공중 사격을 해야 한다는 건 수방사 군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지침이다. 해당 문건에도 '3회 경고 후 사격한다'는 문구가 담겨 있다. 경고 과정이 간력히 언급돼 있다고 해서 이를 수방사의 기본적인 총기 사용 단계를 건너 뛰고 곧바로 발포를 허락한다는 지침으로 곡해해석할 군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촛불시민이 '작전대상'이라는 MBC보도, 사실과 달라"


    한편 국방부는 27일 오후 "2016년 11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시기에 수도방위사령부가 촛불 시민들을 작전대상, 즉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는 "모 언론 매체가 보도한 수방사 문건은 시위대가 경계지역 내로 진입을 시도하는 우발상황에 대처할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평화적인 촛불집회 참가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만든 문서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수방사 문건은 통상의 부대경계지침에 비해 완화된 대비계획으로, 대규모 시민들이 군사 경계구역 안으로 진입하는 경우에도 총기를 사용하지 말고, 비살상무기로 우선 저지하고 저지 불가 시에도 군경계시설 내로 일단 진입을 허용한 후에 예비대를 투입, 검거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초병을 위해 할 경우 신체 하단부를 사격하도록 하는 문구 역시 관련 법령, 지침, 계획 등의 범위 내에서 만들어진 대응지침으로 위법성은 없으나, 촛불집회 참가 시민을 상대로 한 총기사용지침으로 오해될 소지는 있다고 판단하고, 앞으로 이런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현행 총기사용 관련 법령과 지침, 계획 등에 대한 수정, 보완 여부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 MBC뉴스 방송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