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녹음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제는 좀 익숙할 수도 있는데 녹음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죽어도 다시는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온  기력과 정성을 다했다."

    전날(26일) 칠순을 맞은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70)가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33번째 정규앨범 '아름다운 저녁(Beau Soir)'을 내놓은 소감을 밝히며 거장의 귀환을 알렸다.

    정경화는 2년 전 평생 숙원으로 남아있던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녹음해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앨범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포레와 프랑크, 드뷔시, 그리고 엘가의 소품으로 꾸며졌다.

    프랑스 작곡가들의 곡으로만 이뤄진 '프렌치 앨범'을 발매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첫 번째는 로열 필하모닉과 함께 쇼송, 생상, 라벨의 작품을 연주한 1978년 앨범이며, 이어 라두 루푸와 짝을 이뤄 1980년 드뷔시,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했다. 

    프렌치 앨범에는 그녀가 처음으로 녹음한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과 두 번째로 녹음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담겨있다.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2011년부터 호흡을 맞춰온 '영혼의 동반자' 케빈 케너가 피아노를 맡았다.
  • "프랑크 소나타는 젊을 때 라두 루푸와도 녹음했는데, 당시의 기억은 끔찍해서 생각하기 싫다. 루푸의 연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와 하려니 주눅이 들고 활도 떨리더라. 기를 쓰고 만들어냈다. 케빈 케너는 듀오 파트너이다.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케너의 도움을 받아 처음 도전했다. 저와 케너만의 해석이 있다."

    특히 '한국반 앨범'에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32년 만에 새롭게 녹음돼 보너스 트랙으로 실려있다. 정경화가 녹음해 국내에 친숙해진 이 곡은 1987년 발매한 앨범 '콘 아모레'에 수록돼 유명해졌다.

    "포레의 '자장가'는 손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녹음했다. 큰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아직 자식이 없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는 큰 아들을 위해서 처음 녹음했던 곡이다. 젊었을 때 정열적이었다면, 안정이 된 지금 나이에서는 더 심플하고 편한 인사로 들렸다."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켰던 정경화는 2005년 9월 왼손 4번째 손가락에 부상을 당해 무대를 내려놓고 2007년 모교인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가 돼 후진양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2011년 8월 언니 첼리스트 정명화와 더불어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감독을 맡아 다시 무대에 올라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했다.
  • 무대 위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로 청중을 휘어잡는 정경화는 여전히 어머니의 교육법을 높이 평가한다. 첼리스트 정명화·바이올리니스트 경화·지휘자 정명훈 남매를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키워낸 고(故) 이원숙 여사는 2011년 5월 15일 93세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긍정적인 사고(positive thinking)의 소유자였다. 손가락 부상으로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힘든 일이 있을 때 좋은 앞을 바라볼 수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다. 공부를 하면서 자기 자신의 성장을 가지라고 하셨다."

    한국 바이올린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정경화는 "제 이름 앞에 '레전드(전설)'를 붙여주는데, 솔직히 싫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몸이 근질근질하다"며 "계속 연주 활동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하는 음악은 위로이다. 위로를 잘하려면 청중만 생각해야 한다. 제일 사랑하는 청중에게 위로를 전달하기 위해 1만% 노력했다. 지금은 체력이 안 돼 음이 빠지고 활에서 지저분한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수치스러워서 머리를 잡아 뜯던 때는 지났다. 이제는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