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호주·캐나다도 추방…스크리팔 부녀 암살 기도로 유럽-러시아 냉전 이후 최악 분위기
  • 미국 정부가 러시아 외교관 60명을 추방하고 시애틀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 폐쇄 조치를 내렸다. 사진은 문을 닫은 시애틀 주재 러시아 영사관.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국 정부가 러시아 외교관 60명을 추방하고 시애틀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 폐쇄 조치를 내렸다. 사진은 문을 닫은 시애틀 주재 러시아 영사관.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직 러시아군 총참모부 정보국(GRU) 요원으로 英MI6를 도왔던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아 스크리팔’에 대한 암살 기도 후폭풍이 유럽에서 ‘신냉전’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비화되고 있다. 영국을 지지하는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외교관 추방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英BBC, 美CNN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 60명을 추방하고 시애틀 주재 러시아 영사관도 폐쇄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유럽에 있는 영국의 우방국 10여 개국도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했다고 한다.

    英BBC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 소식을 전하며 “영국을 포함해 20개가 넘는 나라에서 100명 이상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면서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은 러시아 정보요원 추방”이라고 설명했다.

    英BBC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 외교관 60명에게 일주일 이내에 떠나라고 명령하는 한편 시애틀 영사관을 폐쇄하라고 통보했고, 프랑스와 독일, 폴란드는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 4명을, 리투아니아는 3명, 덴마크 2명, 네델란드와 이탈리아, 스페인은 각각 2명, 에스토니아, 크로아티아, 핀란드, 헝가리, 라트비나, 루마니아, 스웨덴은 각각 1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고 한다.

    캐나다는 4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는 한편 러시아 정부 관계자 3명의 입국을 거절했고, 호주도 2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고 한다.

    영국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에 적극 연대할 뜻을 밝힌 국가들 가운데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아님에도 동참한 나라도 있다. 러시아와 크림 반도 문제로 여전히 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외교관 13명을, 러시아의 군사력 확장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는 알바니아는 2명 마케도니아, 노르웨이는 각각 1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고 한다.

    러시아와 비교적 친분이 있다는 아이슬란드는 외교관 추방은 하지 않았지만 예정됐던 러시아 정부 고위관계자와의 회담을 연기하고, 러시아 월드컵에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지 않은 오스트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등 나머지 EU 회원국은 ‘스크리팔 부녀’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을 비난하고 영국 정부를 지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고 한다.

    영국과 미국에서만 외교관을 추방했다면 어떻게 해보겠건만 20개 이상의 나라들이 외교관 추방에 동참하자 러시아 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평소와 달리 선뜻 강경한 대응을 못하고 있다.
  • 지난 22일(현지시간) EU 정상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임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레사 메이 英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부터). 이날 정상회담의 효과는 컸다.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2일(현지시간) EU 정상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임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레사 메이 英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부터). 이날 정상회담의 효과는 컸다.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英BBC는 “이처럼 국제사회가 외교관 추방에 동참하자 러시아 정부는 스크리팔 부녀에 대한 암살 기도 연루를 일체 부정하면서 ‘도발적 행위’에 대해 보복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우리 외교관을 추방한) 국가들이 저지른 불친절한 행동에 따라 우리도 대응할 것”이라며 향후 러시아와 서방 진영 간의 대립 구도를 예고했다고 한다. 외신들은 “러시아 정부도 곧 서방 국가 외교관들을 추방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지만 아직 행동은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가 억울함과 ‘보복’을 말할 때 NATO 회원국과 동유럽 국가들의 연대와 동참을 얻어낸 영국 정부는 용기를 얻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英BBC에 따르면, 테레사 메이 英총리는 EU 지도자들에게 ‘스크리팔 부녀’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이 러시아 정부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며 “푸틴 정권은 유럽 대륙이 공유하는 가치와 이익을 우리 영토에서 공격했다”며 “영국은 유럽의 주권국가로써 EU와 NATO 회원국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위협에 맞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리스 존슨 英외무장관 또한 미국과 NATO 회원국, 동유럽 동맹국들이 러시아 외교관 추방에 동참해준 것을 “특별한 국제적 대응”이라며 감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러시아 정부가 이처럼 다수 국가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은 영국에서 反푸틴 정권 인사들이 정체불명의 공격으로 암살을 당한 사례가 여러 건인데다 특히 ‘스크리팔 부녀’는 러시아 외에는 보유하지 않은 화학무기(신경작용제) 공격을 받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2017년 3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이 북한의 공작으로 암살당했을 때 전 세계가 비난하고, 같은 해 4월 미국이 시리아 정부군을 향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59발을 쏜 것도 화학무기 사용이 가장 큰 이유다.

    화학무기는 핵무기, 생물학 무기와 함께 대량살상무기로 분류되며, 국제조약에 따라 사용자체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를 민간인에게, 그것도 다른 나라의 영토에서 사용했다는 점이 러시아에게는 매우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