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은 호선 제외, 대법관추천위에 입법부 관여 배제 등 독소조항 가득"심의에 60일은 커녕 60시간도 아까운 개헌안"… 국회, 즉시 폐기 돌입하나
  • 전문이 공개된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이 시대적 요구인 제왕적 대통령 권력 분산에 지극히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개헌안이 정식으로 발의될 경우, 국회가 60일의 심의기간을 채울 것도 없이 즉각 부결해야 한다는 국민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청와대가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전문을 국회에 전달했지만 야4당 중 일부는 수령조차 거부하는 등 반응은 냉담했다.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에 소속된 한국당 의원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권력구조 개편이 개헌의 핵심인데, 대통령의 개헌안은 실망스럽다"며 "어느 정도 예상은 됐었지만, 낮은 기대치보다 배반할 정도로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내려놓는 모습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앞서 공개된 정해구 위원장의 국민헌법자문위원회 안에서 제왕적 대통령 권한 분산이 미흡했던 점이, 혹시 문재인 대통령이 거기에서 뭔가를 더 내려놓는 방식으로 술수를 쓰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지만, 이같은 기대조차 배반당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을 권력구조 개편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국가원수 조항 삭제에도 불구하고 정부수반 지위가 유지된 점 △국무회의의 위상이 약화된 점 △헌법재판소장을 호선하면서 대법원장은 대통령 임명권을 고수한 점 △국민투표부의권·사면권·대통령령 등 핵심 권한에 변화가 없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 ▲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오히려 더욱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을 사흘에 걸쳐 설명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오히려 더욱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을 사흘에 걸쳐 설명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현행 헌법》

    제66조 ①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④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제70조 ①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한다.
    ④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있다.

    개헌안 제70조에서 대통령의 국가원수 조항이 삭제됐지만, 이는 마치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려는 대표적인 '눈속임'이자 '함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원수 조항은 삭제됐지만, 개헌안에서 누군가에게 국가원수 지위를 대신 부여하지는 않았다. 달리 국가원수가 없으므로, 해외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Head of State'는 여전히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상징적 국가원수 지위는 그대로 유지하되, 정부수반(Head of Government) 지위를 떼어내 국무총리에게 이관하라는 게 국민의 요구였는데 '꼼수'를 쓴 것이다.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을 둘 다 쥐고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부수반을 총리에게 이관하기는 싫으니, 국가원수 지위 조항을 삭제하되 다른 누군가에게 그걸 옮기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거머쥐려 한다는 분석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대통령이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의 지위를 계속해서 한 손에 틀어쥔 채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는 '선출제 왕정' 체제를 지속하려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 ▲ 헌법 상의 근거 없이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대통령의 자문기관이 국정 심의기관인 국무회의보다 앞으로 나와 논란을 빚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헌법 상의 근거 없이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대통령의 자문기관이 국정 심의기관인 국무회의보다 앞으로 나와 논란을 빚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현행 헌법》

    제88조 ①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한다.

    제91조 ①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대외정책·군사정책과 국내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둔다.

    제92조 ① 평화통일정책의 수립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제93조 ①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중요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민경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제90조 ①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대외정책·군사정책과 국내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둔다.

    제91조 ① 평화통일정책의 수립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제92조 ①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중요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민경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제95조 ①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한다.

    국정의 필수적 심의기관인 국무회의가 대통령의 일개 자문기구인 국가안전보장회의·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국민경제자문회의보다 헌법상 열거의 순서가 밀리게 됐다.

    뭘 먼저 쓰느냐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싶겠지만, 헌법에서 열거되는 순서의 함의는 매우 중요하다는 게 학계와 정치권의 중론이다.

    우리 헌법은 1948년 제헌헌법 때부터 국회~정부~법원 순서로 헌법기관을 열거해왔다. 1969년 이른바 '3선 개헌' 때까지 유지되던 이 순서는, 1972년 비상국무회의를 통해 초헌법적으로 개정된 '유신헌법'에서 뒤집혔다.

    갑자기 대통령과 정부가 국회 앞으로 나오면서, 정부~국회~법원의 순서로 변경된 것이다. 심지어 유신헌법에서 국회는 통일주체국민회의(제3장), 대통령(제4장), 정부(제5장)에 이어 제6장에서나 언급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헌법 서술 체계는 1980년 헌법까지 유지되다가,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게 된 1987년 현행 헌법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국회~정부~법원의 순서로 복원됐다.

    이렇듯 헌법에서의 서술 순서가 띄고 있는 의미를 고려해볼 때, 국무회의가 대통령의 일개 자문기구보다 언급 순서가 뒤로 밀린 것은 주목할만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상 심의기구인 국무회의를 자신에게 자문하는 자문기구보다도 낮춰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국무회의의 부의장이 총리라는 것을 고려해볼 때, 최근 국회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총리의 도전'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불쾌감마저 느껴지는 개헌안"이라고 진단했다.

    전공이 형법학으로 헌법과는 무관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전날 "개헌안은 대통령의 의지와 국정철학, 헌법정신과 소신이 반영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따르면, 이번 개헌안 마련 과정에서 이낙연 총리와 박상기 법무부장관을 비롯해 국무위원들과 국무회의가 철저히 무시당한 것도 이해가 간다.

    국무회의를 일개 자문기구보다도 낮춰보고 있는 게 대통령의 의지와 국정철학, 헌법 정신과 소신인데, 일개 청와대 비서들하고는 개헌안을 논의할지언정 어떻게 국무회의의 심의를 먼저 받을 수 있겠는가. 개헌안에 드러난 서술 순서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마각'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이다.

  • ▲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모습. 국무총리는 인사청문회나 국회 임명동의 과정은 떠들썩하지만, 막상 임명되고나면 아무런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데, 이번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은 그같은 총리 무력화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모습. 국무총리는 인사청문회나 국회 임명동의 과정은 떠들썩하지만, 막상 임명되고나면 아무런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데, 이번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은 그같은 총리 무력화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현행 헌법》

    제86조 ②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제87조 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 국무위원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국정을 심의한다.
    ③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제89조 다음 사항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3. 헌법개정안·국민투표안·조약안·법률안 및 대통령령안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제93조 ②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제94조 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 국무위원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국정을 심의한다.
    ③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제96조 다음 사항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3.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안, 조약안, 법률안 및 대통령령안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개헌안 제93조에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는 조문을 삭제한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대통령이 정부수반을 여전히 겸하고 있는데, 국무총리가 누구의 명을 달리 받는다는 말인가. 총리가 대통령의 보좌 위치에 머물고, 임면이 대통령의 손아귀에 달린 이상, 개헌안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국무위원 제청권, 국정심의권, 국무위원 해임건의권 등은 현행 헌법에서 '빛 좋은 개살구'였던 것처럼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이다.

    총리가 정부수반으로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분리된 독자적인 지위를 갖게 된 것도 아니다. 국회에서 선출되거나 추천돼 독자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자기 소신껏 국무위원을 제청할 수 있겠는가. 국정을 심의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을 그릇 이끌어가는 국무위원을 해임하라고 건의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이낙연 총리처럼 철저히 무시당하는 총리만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당장 이번 개헌안 마련 과정에서도 총리와 국무회의가 철저히 무시당했는데, 개헌안 제96조 3호에서 헌법개정안을 국무회의의 필수적 심의사항으로 당당히 남겨놓은 것이 후안무치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 ▲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고 있는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후보자.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 따르면, 대통령이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는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 헌법재판소장이 호선되게 돼, 더 이상 대통령 입맛에 맞는 인물이 국회 임명동의 과정에서 낙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고 있는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후보자.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 따르면, 대통령이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는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 헌법재판소장이 호선되게 돼, 더 이상 대통령 입맛에 맞는 인물이 국회 임명동의 과정에서 낙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현행 헌법》

    제104조 ①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111조 ③ 제2항의 재판관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④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97조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

    제98조 ① 감사원은 원장을 포함한 5인 이상 11인 이하의 감사위원으로 구성한다.
    ② 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
    ③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

    제114조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제104조 ①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 대법관은 대법관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③ 대법관추천위원회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 법률로 정하는 법관회의에서 선출하는 3명으로 구성한다.

    제111조 ③ 제2항의 재판관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사람을, 3명은 대법관회의에서 선출하는 사람을 임명한다.
    ④ 헌법재판소의 장은 재판관 중에서 호선한다.

    제114조 ①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지방정부 및 법률로 정하는 단체의 회계검사, 법률로 정하는 국가·지방정부의 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감사원을 둔다.
    ② 감사원은 독립하여 직무를 수행한다.

    제115조 ① 감사원은 원장을 포함한 9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하며, 감사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 제1항의 감사위원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사람을, 3명은 대법관회의에서 선출하는 사람을 임명한다.
    ③ 감사원장은 감사위원 중에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118조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명, 국회에서 선출하는 3명, 대법관회의에서 선출하는 3명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면서도, 내려놓는 시늉만 한 대표적인 '독소조항'은 헌법재판소장의 임명권을 내려놓고 호선제로 전환하면서도 대법원장의 임명권은 고수한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호선(互選)은 기본적인 역량과 자질을 갖춘 여러 사람 중에서 대표자를 선출할 때 두루 사용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헌법재판관의 자격을 법관으로 제한한 현행 헌법에서는 그 중에서 누구나 헌재소장을 맡는 게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대법관 중에서도 누구나 대법원장을 할 수 있으니 호선이 가능하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서는 헌법재판소장은 호선을 하게끔 하면서도 대법원장만은 대통령의 임명을 고수했다. 이는 감사원장을 '감사위원 중에서 임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현행 헌법 그대로 호선하게끔 한 것과 대비해 봐도 이례적이다.

    왜 그랬을까. 각 권력기관을 대통령의 손아귀에 장악하는 열쇠가 대법원장 임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데는 헌법재판소장 호선보다 대법원장 호선이 중요한데, 거꾸로 역주행한 셈이다.

    개헌안의 대법원 구성을 보면,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다른 대법관은 대법관추천위원회를 통해 임명한다.

    그런데 대법관추천위원회의 구성 방식이 헌법관례에 따른 구성 방식과 매우 다르다. 보통 헌법기구를 구성하는 수 인의 위원회는 삼권분립의 정신에 따라 국회와 정부, 법원을 대표하는 인사가 나눠 지명하는 게 보통이다.

    개헌안에 따르더라도, 헌법재판소·감사원·중앙선관위가 모두 국회 3, 대통령 3, 대법원 3의 3·3·3 지명 구조다.

    그런데 대법관추천위만은 국회의 관여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대통령이 3명, 대법원장이 3명, 정체불명의 법관회의가 3명을 지명하는 대단히 이례적인 구조로 돼 있다.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지금의 김명수 대법원장처럼 대법원장은 철저히 대통령에 종속된 지위에 머물 수밖에 없다. 대법원 구성을 전적으로 대통령이 전단(專斷)할 수 있게끔 된 것이다.

    차라리 대법원장이 작심하면 대법관 임명에 있어서만큼은 대통령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었던 현행 헌법만도 못하다.

    이러한 구성 방식을 통해 대법원을 장악한 제왕적 대통령은 이를 무기로, 마치 외견상 내려놓는 듯 했던 헌법재판소와 감사원, 중앙선관위에 차례로 검은 손을 뻗칠 수 있게 된다.

    헌법재판소장은 호선을 하라면서 마치 임명권을 내려놓는 듯 했지만, 호선 후보자인 9인의 헌법재판관 중 대통령이 직접 3인을 임명하고, 대통령이 수중에 넣은 대법원에서 3인을 선출한다. 이미 6인이 대통령의 수족인 것이다.

    이미 현행 헌법에서 국회 몫으로 돼 있기에 차마 개헌 과정에서 빼앗을 수 없었던 국회 몫 헌법재판관 3인이 있지만, 이는 여당에서 1인, 야당에서 1인, 여야 합의로 1인을 추천하는 게 관례다. 결국 9인 중 7.5인이 대통령의 영향력 하에 있기 때문에 호선을 하면 무조건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헌재소장으로 호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차라리 현행 헌법처럼 국회에서 제동을 걸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사라진 셈이다. 제2의 '김이수 부결 사태'를 방지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장 호선제 없는 헌법재판소장 호선제가 얼마나 '꼼수'이며 '함정'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비유하자면 대법원장 임명권은 차 키"라며 "자동차를 운전하는 권한을 분권(分權)했다고 강변하면서, 차키는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이 꽉 쥐고 있는 것과 똑같다"고 비판했다.

    시동을 걸고 끌 권리는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이 가진 채, 라디오 채널을 고를 권리나 창문을 올리고 내릴 권리를 내려놓는다고 해서 이것을 분권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어차피 차키를 돌려서 시동을 꺼버리면, 라디오도 창문도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대법관추천위원회도 국회·정부·법원이 3·3·3으로 구성할 수 있을테고, 대법원장도 충분히 대법관 사이에서 호선해도 무방한데도 왜 대법원장 (임명권)은 내려놓지 않고, 헌재소장만 내려놓았겠느냐"며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속내가 잘못된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고 질타했다.

  • ▲ 정봉주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 특별사면 과정에서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포함돼 논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도 대통령의 무소불위 사면권에 국회가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없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정봉주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 특별사면 과정에서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포함돼 논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도 대통령의 무소불위 사면권에 국회가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없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현행 헌법》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제79조 ①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②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제76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외교·국방·통일, 그 밖에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제83조 ① 대통령은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②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특별사면을 명하려면 사면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국가원수 조항을 삭제했다면서도, 헌법학계에서 국가원수의 지위로부터 나온다고 해석하던 대통령의 권력은 전혀 조문의 변화 없이 개헌안에도 그대로 남았다.

    국민투표부의권과 사면권은 학계에서 이론 없이 국가원수로서의 권한이기 때문에, 국가원수 조항이 삭제되면 이론상 함께 사라져야 하는데도 아무런 견제 없이 대통령에게 그대로 남게 됐다.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과 관련해서는 최소한 국민투표에 부의하기에 앞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제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사면권도 기존에 아무런 제한이 없던 특별사면에 사면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제한이 들어갔지만, 하나마나한 제한이라는 지적이다. 지금도 법률(사면법)에서 특별사면에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치도록 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의 무소불위의 특별사면에 제동이 걸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4년에 특별사면에도 국회가 관여하도록 하는 사면법 개정안이 마련됐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들이 고건 대통령권한대행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종용해서 특별사면의 민주적 통제가 무산된 바 있었다"며 "이번 문재인 개헌안은 14년 전 법률개정안보다도 못한 개헌안"이라고 혹평했다.

  •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 씨는 각각 영부인과 '대통령의 아들'이었던 시절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이후 수사선상에 올랐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 씨는 각각 영부인과 '대통령의 아들'이었던 시절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이후 수사선상에 올랐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제43조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

    제45조 ② 국민은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다. 소환의 요건과 절차 등 구체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55조 ② 정부는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제56조 국민은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다. 발의의 요건과 절차 등 구체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개헌안에 따르면, 대법원을 시작으로 헌법재판소·감사원·중앙선관위 등 모든 헌법기관들이 제왕적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여기에 대통령을 견제해야 할 유일한 대의대표기구인 국회조차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도록 권한과 영향력이 축소됐다는 분석이다.

    개헌안 제43조에서 입법권이 국회에 전속해 있다지만, 정부의 법률안제출권이 유지된데다가 국민발안제마저 도입됐다. 입법권 전속 규정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법률안제출권은 국회의원 10명이 동의가 필요한 것으로 외견상의 제한 규정이 생겼지만,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집권여당이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에 불과한 마당에 의미없는 제한 규정이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정무수석이 여당 의원들 인감 보관해놓고 있다가 찍어서 법률안을 제출하지 않겠느냐"며 "국민소환제를 통해 대통령이 관제데모로 국회의원들을 위협할 수 있게 돼서, 오히려 지난 박근혜 탄핵 사태에서 보듯 제왕적 대통령의 폭주를 막던 마지막 보루인 국회조차 무력화하는 개헌안"이라고 개탄했다.

    그간의 국정농단 사례에서 보듯 국민소환을 통해 견제해야 할 대상은 정작 대통령인데, 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만 도입되고 대통령 국민소환제는 없는지도 의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차남 현철 씨는 제왕적 대통령의 차남이라서 국정농단이 가능했다. YS가 국회의원을 9선이나 하는 동안, 현철 씨가 나서서 국정을 농단했다는 말은 듣도보도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세 아들 홍일·홍업·홍걸 씨도 DJ가 대통령일 때 모두 '홍삼 게이트'에 연루됐다. DJ 또한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국회에서 활동했고, 홍일 씨와 홍업 씨는 그 자신이 국회의원까지 지냈지만, 국회의원일 때보다 오히려 '대통령 아들'일 때 더 손쉽게 국정을 농단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 권양숙 여사가 '논두렁 시계'를 비롯한 다양한 의혹에 연루된 것, 그 아들 건호 씨와 딸 정연 씨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이런저런 수사선상에 오른 것 역시 그 발단은 '제왕적 대통령제'였다. 대통령의 영부인이고 아들이고 딸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이 꼬인 것이다.

    최순실 씨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두 번이나 하면서 5선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에는 수면 아래 조용히 잠복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왕'의 지위에 오르자, 비로소 비선(秘線)에서 농단이 시작된 것이다.

    역대 무수한 국정농단 사례의 원흉인 제왕적 대통령을 국민소환으로 견제하는 장치는 없고, 오히려 이를 견제하는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국민소환제로 무력화하겠다는 발상은 독재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 ▲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김재경 의원과 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는 황영철 의원이 한국당 개헌의원총회에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김재경 의원과 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는 황영철 의원이 한국당 개헌의원총회에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현행 헌법》

    제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제74조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연이어 선출되는 경우에만 한 번 중임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통해 오히려 더욱 강화된 제왕적 대통령의 임기를 최대 8년까지 연장하겠다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부터 촉발돼,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라는 민심과 시대적 요구를 무시하는 역주행이라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꼼수개헌' '함정개헌' '역주행개헌'에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뿐만 아니라, 소수야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잇달아 터져나오고 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은 "개헌 논의가 처음 이제 나온 이유가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되겠다는 필요 때문에 시작을 했는데, 이번에 나온 개헌안을 보면 대통령 권한 축소가 아니라 대통령 임기연장 개헌"이라며 "완전히 지금 무슨 청개구리식 답변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민주평화당 천정배 전 대표도 "제왕적 대통령제 유지에 찬성하는 야당이 하나도 없지 않는데, 발의를 한들 가능성은 제로"라며 "뭔가 의지를 가지고 통과시키려고 추진할 때 밀어붙인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밀어붙이기라는 평가도 과분하고 이것은 헐리우드 액션"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따라서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이런 개헌안을 심의하는데, 과연 현행 헌법 제130조 1항에서 부여한 국회심의기간 60일이 꼭 필요한가 라는 점에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20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지방선거총괄단 전체회의에서 "애초부터 개헌 투표하자고 하면 우린 본회의장 안 들어간다"며 "들어가는 사람은 제명처리한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국회법 제112조 4항에서 헌법개정안에 대한 투표는 기명투표로 하도록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연한 반란표가 나올 가능성은 적다.

    굳이 투표를 피해서 심의기간 60일 동안 국가적 소란을 일으키며 지방선거 직전까지 논란을 가져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빠르게 국회의장과 여당을 압박해 본회의에서 부결시켜버리는 게 상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런 개헌안을 심의하는데 헌법에서 부여한 60일은 과분하다. 60시간, 60분, 60초도 아까운 개헌안"이라며 "국회에 넘어오자마자 바로 본회의에서 부결시켜 폐기해버리면,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대통령이 또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서긴 어려울테니, 이후부터 국회에서 차분히 냉정하게 개헌을 논의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는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헌정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당 중진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내용에는 좋은 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지만, 이걸 발의할 경우 딱 하나 좋은 점은 개헌 논의의 '뒷문'을 걸어잠근다는 점"이라며 "뒷문을 열어놓은 채 국회에서 논의하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합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개헌안이 국회에 계류해 있는 동안 빨리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이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