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채권의식 가진 李… "독고다이로 대표 됐다"는 洪… 예정된 파국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해 7·3 전당대회 직후인 11일, 이종혁 전 의원에게 임명직 최고위원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해 7·3 전당대회 직후인 11일, 이종혁 전 의원에게 임명직 최고위원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한때 홍준표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던 이종혁 전 의원이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부산광역시장 출마 선언까지 하게 된 배경을 놓고 정치권에 설왕설래가 일고 있다.

    한국당이 부산시장 후보로 서병수 현 시장을 단수추천하면서 경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낙천(落薦)하게 됐긴 하지만, 탈당과 무소속 출마라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한 것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지 않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0일 페이스북에서 "선거 시즌이 되니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며 "내 측근이라고 자처하면서 행세하던 사람도 공천에 떨어지니 내 비방만 하고 다니는 것이 현 정치 세태"라고 개탄했다.

    이는 전날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이종혁 전 의원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시 이종혁 전 의원은 "한국당이 반시대적·반개혁적 길을 걷다 망한 새누리당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다"며 "시민을 우습게 알고 선거 때면 오만한 공천을 하는 정당에 이제는 정치 아웃을 선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병수 시장을 단수추천한 한국당의 공천을 비판하는 이종혁 전 의원의 탈당의 변에 홍준표 대표가 공천불복 프레임을 걸고 들어가는 모양새다. 실제로 홍준표 대표는 "승복하는 깨끗한 정치풍토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홍준표 대표와 이종혁 전 의원의 결별은 부산시장 공천 문제가 이유의 전부일까.

    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전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홍준표 대표는 이종혁 최고위원에게 배덕광 전 의원이 사퇴한 곳(부산 해운대을)에 나가서 국회의원을 한 번 더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더라"며 "그렇게까지 했는데 당의 공천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나가는 게 참 그렇지 않느냐"고 전했다.

    홍준표 대표도 "측근을 챙기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며 "나는 정치를 시작한 이래 내 주변 사람을 이유없이 내쳐본 일이 단 한 번도 없다"고 간접적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보궐선거 출마 제안이 있었는데도 단지 자신이 원하는 자리(부산시장)가 아니라고 탈당까지 한 이종혁 전 의원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이와 관련, 한국당 핵심 중진의원은 "부산시장 공천에서 떨어졌다고 이런저런 다른 제안이 있었는데도 바로 당을 뛰쳐나가는 사람이 어디가 있느냐"며 "부산시장 낙천이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맞지만, 두 사람 사이의 결별 이유는 따져보면 20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라고 귀띔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1년, 홍준표 대표는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 대표최고위원을 겨냥하고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당권 경쟁에는 홍준표 대표 외에도 현재 바른미래당 대표를 맡고 있는 유승민 의원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한국당 나경원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뛰어들었다.

    친이(친이명박)계로 분류되던 직전 안상수 대표(현 창원시장) 체제에 불만이 많았던 박근혜 전 대표는 친박계 의원들에게 자신의 비서실장 출신인 "유승민 의원을 도우라"고 지시를 내렸다.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011년 7월 4일 열린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뒤, 당기를 흔들고 있다. 뒷쪽으로 친박계의 집중지원을 받았는데도 차점자로 밀린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표의 씁쓸한 표정이 보인다. ⓒ뉴시스 사진DB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011년 7월 4일 열린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뒤, 당기를 흔들고 있다. 뒷쪽으로 친박계의 집중지원을 받았는데도 차점자로 밀린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표의 씁쓸한 표정이 보인다. ⓒ뉴시스 사진DB

    그런데 이종혁 전 의원은 당시 '친박계의 행동대장'이라 불릴 정도로 강성 친박이었는데도, 전당대회에서는 평소 가깝게 지냈던 홍준표 대표를 돕고 싶었다.

    한국당 핵심 중진의원에 따르면, 이종혁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를 찾아가 "내가 홍준표 후보를 도우면 안 되겠느냐"며 허락을 구했다고 한다. 그러자 박근혜 전 대표는 묵묵무답으로 듣고만 있다가 "두 표 중 한 표는 유승민 후보에게 주라"고만 답했다. 당시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1인 2표제였다.

    이 대답을 긍정적인 신호로 오독(誤讀)한 이종혁 전 의원은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대표를 도왔고, 결과적으로 홍준표 대표가 유승민 의원을 누르고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홍준표 체제'는 그해 10·26 재·보궐선거 패배와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태'로 채 반 년을 못 버티고 무너졌다. 박근혜 전 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당권을 장악했고, 이종혁 전 의원은 '박근혜 공천'이 이뤄진 이듬해 총선에서 낙천했다.

    이종혁 전 의원은 이 과정에서 '내가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대표를 돕다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밉보여 공천에서 떨어졌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정치적 채권의식의 출발점인 셈이다. 홍준표 대표가 자신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종혁 전 의원은 전날 YTN라디오 〈정면승부〉에 출연해 "18대 국회의원 잘 하다가 친홍(친홍준표)이라고 낙인이 찍혀서 밉보여서 공천 학살도 당하고 그랬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홍준표 대표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홍준표 대표는 그간 자신이 '독고다이'로 정치를 해왔다고 수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독고다이'로 검사, 국회의원, 집권당 원내대표, 당대표, 경남지사, 보수본당 대통령 후보까지 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당내 중진의원들을 향해 "계파없는 독고다이 정치를 하지만 당대표도 내 힘으로 두 번이나 할 수 있었다"고 내세웠다.

    이처럼 스스로 '독고다이'로 당대표가 됐다고 자부하는 홍준표 대표의 입장에서는, 이종혁 전 의원이 나를 도운 덕분으로 내가 대표최고위원이 됐다는 인식이 생길 수가 없다. 한 마디로 정치적 부채의식이 없는 것이다.

    비극은 여기에서 잉태됐다. 한 사람은 빚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빚이 없다고 생각했다. 엇나갈 수밖에 없는 잘못된 관계의 시작이다.

    지난해 7·3 전당대회 직후에 있었던 이종혁 전 의원에 대한 최고위원 임명부터가 그렇다.

    홍준표 대표의 시각에서는 측근이라 각별히 챙겨줬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치적 채권의식이 있는 이종혁 전 의원의 입장에서는 채권에 대한 일부 상환으로 당연한 일이 된다.

    출발선이 잘못됐기에 이후에도 모든 것이 꼬이게 된다.

  • 이종혁 전 의원이 지난해 연말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위해 임명직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이종혁 전 의원이 지난해 연말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위해 임명직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홍준표 대표로서는 자신의 측근이라 당내의 불만을 무릅쓰고 최고위원으로 임명한 이종혁 전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 등 중요한 국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고 지방선거 출마에만 관심이 있는 모습이 괘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종혁 전 의원 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특별히 문제될 일이 아니다.

    결별을 막기 위한 마지막 시도였던 부산 해운대을 공천 제안도 해석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홍준표 대표 입장에서는 측근에 대한 최선의 배려다. 홍준표 대표가 페이스북에서 "측근을 챙기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한 말그대로 챙겨주려 한 것이다.

    정치적 채권의식이 있는 이종혁 전 의원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2011년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대표가 대표최고위원이 되는 것을 돕다가, 이후 진박(眞朴)이 아닌 것으로 찍히면서 7년씩이나 정치적으로 험한 꼴을 다 봤다.

    게다가 대안이라는 게 원래 자신의 지역구(부산 부산진을)도 아닌 곳이다. 이종혁 전 의원이 YTN라디오에서 "내가 국회의원을 하려면 내 지역에서 2년을 기다렸다가 거기에 나가서 연고가 있는데 가서 국회의원을 해야 한다"고 토로한 것처럼, 맘에 드는 제안일 수가 없다.

    부산시장 전략공천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경선을 붙여달라는 것인데 왜 이 정도 요구를 못 들어주는지 서운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문제는 정치적 채권·채무라는 것은 홍준표 대표와 이종혁 전 의원의 사례에서 보듯이 서로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도 엇갈릴 뿐더러, 차용증을 써둘 수도 없는 것은 물론 입에 공공연히 담을 수조차 없는 성격의 것이라는 점이다.

    "너 그 때 내가 도와줬는데 이럴 수 있느냐"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속칭 '가오(정치적 체면)'가 상하게 된다. 드러내놓고 입에 올릴 수가 없다보니, 아무리 소통을 한들 오해가 풀릴 길이 없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전한대로 이종혁 전 의원이 홍준표 대표의 설득을 묵묵무답으로 듣고 있다가 "내가 나이가 육십이 넘었다"며 "이제는 내 인생을 내가 살아가겠다"고 한 것,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홍준표 대표가 "네 마음대로 하라"고 답한 것처럼 파국은 예정된 수순인 것이다.

    한국당의 다른 중진의원은 "이종혁 전 의원이 '내가 나이가 육십이 넘었다'고 한 말에는, 홍준표 대표를 전당대회에서 돕다가 정치적으로 방황하게 된 7년의 세월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었다고 본다"면서도 "전당대회에서 빚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 홍준표 대표로서는 읽어낼 수 없는 행간"이라고 씁쓸한 심경을 내비쳤다.

    한때 "사석에서는 형이라 부를 정도로 친하다"는 홍준표 대표, 이종혁 전 의원 두 사람은 결국 선거를 앞두고 최악의 형태로 결별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깜도 안되는 사람이 공천 신청을 하고 공천에서 떨어지면 당과 나를 비방하고 다닌다"는 독한 말까지 오가게 됐으니, 이는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당에도 불행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부산 지역의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작은 오해가 쌓이고 쌓이다가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탈당과 무소속 출마라는 최악의 형태로 터져나왔다"며 "보수·우파 세력 전체의 손해로 돌아오지 않을까"라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