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의 자체로 생소한 용어 익숙해지는 효과…그러나 초기 내세웠던 '숙의 민주주의'는 어디에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일부 내용의 요지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DB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일부 내용의 요지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DB
    자유가 배제된 민주주의는 독재자를 위한 산물이었다. 역사를 돌아봐도 독재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로 사용된 사례가 많다. 민주주의를 빙자한 추대라는 형식은 답은 정해놓고 투표를 강요해 권력의 명분만 확충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랬고, 중국 시진핑도 마찬가지다. 압도적 지지율과 만장일치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제왕적 독재는 가려지지 않는다. 최악의 독재국가인 북한의 김씨 일가의 3대 세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고 일방적인 'Yes OR No'를 강요하는 행위는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대표적 사례다.

    '민주 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 개헌안'을 발의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를 최소화하고 투표로 찬반여부만 따져물으려 하고 있다.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다.

    문재인 정부는 20일부터 22일까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주요 요지만 일방적 브리핑 형태로 설명하고, 전문은 이후 공개한다. 대통령 결단을 전제로 26일, 발의와 전문 공개가 동시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발의하는 순간 이후부터는 헌법조문에 대한 수정이 불가하다. 찬반만 있을 뿐 충분한 논의가 이뤄질 여지는 없어진다. 

    비록 자문위원회를 만들어서 의견을 수렴했다고는 하지만 청와대는 "1년여 전 촛불 정신, 촛불을 세워준 국민들의 정신을 잇는다는 점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개헌"이라며 "자문위안이 단일안으로 올라왔다고 해서 그게 대통령안이 되지는 않는다"고 이미 선을 그었다. 자문위안은 그야말로 자문안일 뿐, 결정은 대통령이 한다는 뜻이다. '국민을 위한 개헌'임을 강조했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헌안을 만들고 투표라는 행위만 국민에 던진 것이다.

    심지어 이번 개헌안은 국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만큼 통과될 가능성도 낮아보인다. 청와대는 국회를 최대한 설득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가장 이념적으로 가까운 정의당마저 반대의사가 명확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 발의 강행에 초점이 맞춰지자 정치권에서는 정치공학적 유불리를 분석하는 여러 뒷이야기들이 나온다. MB구속을 통한 불필요한 논쟁을 잠재울 수 있고, 외교·안보 이슈도 일정부분 희석시킬 수 있다는 내용 등이 청와대 안팎을 떠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개헌 논의와 용어에 익숙해지게 해 다음 헌법 통과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개헌 논의가 처음 불거졌을때는 '4년 중임제'가 무엇인지 모르던 사람들이 태반이었으나, 이제는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와 국민투표등의 개헌 절차까지 국민 대부분이 알 정도가 됐다.

    이번에 제시될 개헌안 역시 지금은 일반 국민들이 생소해하는 '토지공개념' 도입이나 '이중배상금지' 삭제 등은 물론, 5.18 민주화 운동, 6·10항쟁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향후 다시 개헌이 논의된다면, 이때에는 거부감없이 이같은 내용을 논의하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만으로 사회주의 관련 용어들에 거부감을 없애는 효과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가 세간의 의심어린 눈초리를 떨칠 수 있는 좋은 전례가 있다. 바로 '탈원전 논의' 사례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논의를 하면서 신고리 원전 5,6 호기 건설 재개를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결정했다. 시민 참여단 471명이 치열한 숙의 과정을 거쳐 내놓은 결정에 여론은 차분하게 반응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정치적인 부담을 덜었다. 

    탈원전 공약사항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꼼수라는 보수진영 일각의 의심도 날려버렸고, 동시에 진보진영으로부터도 공약을 스스로 파기했다는 비판을 면했다. 하물며 국가의 형태와 국민의 기본권이 담긴 개헌안에 이런 과정이 없다니, 문재인 정부답지 않은 의사결정은 국민들에게 아이러니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숙의민주주의의 과정을 보면서 개헌안에 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말아야한다는 판단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 자칫 개헌안에 대한 숙의결과가 반대로 나온다면 역풍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