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진 전 앵커 "조명창고서 업무발령 대기상태로 기다렸다"MBC 사측 "조명창고 아냐..엄연한 보도본부의 사무공간" 반박박상후 전 부장 "원래 '조명UPS실'로 쓰이던 곳..중앙난방도 안돼"
  • "석 달 전엔 정식 인사통보도 없이 8년 가까이 진행해온 뉴스데스크에서 쫓겨나듯 하차해야 했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올렸어야 할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모든 업무에서 배제된 채 회사 모처의 조명기구 창고에서 업무발령을 기다리며 대기 상태로 지내왔습니다. MBC 내에서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존중받는 자유는 사라졌고, 파업에 불참한 동료 언론인들은 세상이 잘 알지 못하는 부당한 일들을 온몸으로 감당해야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입당 환영식에서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는 "뉴스데스크 앵커로 근무하던 2012년 당시 언론노조 주도의 파업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파업 참여 100일 만에 노조 탈퇴를 감행한 바 있다"며 "그 이후로 인격적으로 몹시 모독감을 느낄 만한 각종 음해와 공격을 받아왔고, 급기야 석 달 전엔 정식 인사통보도 받지 못한 채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서 쫓겨나듯 하차해야 했다"는 속사정을 밝혔다.

    실제로 최승호 MBC 사장은 취임 첫 날인 지난해 12월 8일, 보도국 인사를 단행하며 7년째 뉴스데스크 간판 앵커로 활약해온 배현진 전 아나운서를 강제 하차시켰다. 배현진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은 최승호 사장은 올해 초 그녀의 자리를 '조명UPS실'로 옮기고, 어떠한 업무도 부과하지 않는 '발령대기' 상태로 방치했다.

    그야말로 '쫓겨나듯' 하차한 배 전 아나운서는 중앙난방도 안들어오는 사무실에서 오들오들 떨며 한 달여를 버텨야만 했다. "모든 업무에서 배제된 채 회사 모처의 조명기구 창고에서 업무발령을 기다리며 대기 상태로 지내왔다"는 배 전 아나운서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배현진 전 아나운서의 발언이 전파되기가 무섭게 MBC 측에서 "배 전 아나운서가 'MBC 조명창고'라고 지칭한 장소는 실제 조명창고로 쓰이는 공간이 아니"라는 반박 자료를 내놨다.
  • 지난 9일 MBC가 공개한 '보도본부 사무실' 전경. ⓒ MBC 제공
    ▲ 지난 9일 MBC가 공개한 '보도본부 사무실' 전경. ⓒ MBC 제공
    출입문에 '보도본부 사무실'이라고 적인 종이가 붙어 있고, 전화기와 TV, 에어컨 등이 설치돼 있는 사무실 자료 자신을 배포한 MBC 관계자는 "미발령 상태인 직원들의 근무장소는 상암 MBC 미디어센터 6층 사무공간"이라며 "조명기구들이 복도에 놓여있지만, 엄연히 보도본부의 사무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배 전 아나운서가 퇴사하기 전까지 사용했던 사무실 전경 사진을 공개하며 논란이 된 '보도본부 사무실'과 외견상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은연 중 강조했다. 한 마디로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무실을 배정받은 배 전 아나운서가 사퇴에 대한 '명분 쌓기용'으로 괜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리였다. 

    이러한 MBC 측의 자료를 다수 언론사가 '액면 그대로' 기사화하면서 온라인상엔 배 전 아나운서가 조명기구 창고에서 대기 상태로 지내왔다는 얘기는 가짜뉴스고, 되레 배 전 아나운서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억측성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배 전 앵커가 언급한 조명창고는 여느 사무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해설로 MBC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준 중앙일보의 기사는 이같은 '편향된 여론'을 부추기는 단초로 작용했다.

    하지만 MBC가 배포한 자료에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었다. 먼저 '보도본부 사무실'이라고 써붙인 철문에는 원래 '조명UPS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원래 사람의 거주 공간이 아닌, 배터리실 겸 창고로 쓰이는 공간이었다. 이곳을 급히 사무실로 꾸미면서 보관 중이던 각종 조명기구들을 복도에 늘어 놓은 것은 이 방이 본래 사무공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또 하나, 이 사무실(?)에 에어콘이 설치돼 있는 이유에 대해 사측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UPS'의 풀네임은 'Uninterruptible Power Supply', 즉 '무정전 전원 공급장치'를 일컫는다. 방송국의 경우 정전이 되면 모든 카메라와 음향 장비가 올스톱 되는 대형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에 전원이 끊기지 않고, 일정한 상태로 전원을 공급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UPS실'은 정전 같은 돌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설비실로, 열을 내는 배터리를 식혀주는 '냉방장치'가 반드시 설치돼 있어야 한다.
  • 박상후 전 MBC 시사제작국 부장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문제의 사무실(?) 전경. ⓒ 박상후 전 MBC 시사제작국 부장 페이스북 캡처
    ▲ 박상후 전 MBC 시사제작국 부장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문제의 사무실(?) 전경. ⓒ 박상후 전 MBC 시사제작국 부장 페이스북 캡처
    배 전 아나운서와 함께 급조된 '보도본부 사무실'로 자리를 배정받은 박상후 전 MBC 시사제작국 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상암 사옥은 중앙난방식이라 별도의 에어콘이 필요 없는 곳인데, 이곳엔 에어콘이 설치돼 있다"면서 "겨울 추위에 배현진 앵커와 자신은 이 에어콘을 온풍기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박 전 부장은 "어지간한 대형건물에는 어김없이 설치돼 있는 UPS실은 창고도, 사무실도 아니고 기계실의 일부에 해당하는 공간이며 정전시 자가발전을 위해 사용될 수백, 수천개의 배터리가 설치된 곳"이라고 지적한 뒤 "배터리가 많으니 열이 발생하기 쉬워 냉방 장치도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제한구역'이라는 것이 전기전문가들의 설명"이라고 덧붙였다.

    "'조명UPS실'이 위치한 미디어센터 6층은 사람의 거주 공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중앙난방이 안돼 에어콘을 히터용도로 사용했는데 처음에 온풍이 안 나와 추위에 떨었으며 다른 층과는 달리 화장실이 아예 없다. UPS나 조명기구들은 생리현상이 없기 때문이리라."

    실제 MBC 사측이 보도본부 사무실이라고 주장하는 조명UPS실에는 '배전반'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밝힌 박 전 부장은 "문자 그대로라면 UPS실을 사측에서 미러볼 같은 조명기구 창고로 겸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박 전 부장은 "배현진 전 MBC 앵커가 조명창고에 있었다고 하자 일각에서는 이를 가짜뉴스라고 반박하는데, 사실 '조명창고'라기보다는 '조명장비 비상전원 공급 기계실'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라며 "배현진 전 앵커와 박상후, 김세의 등을 이 공간에 몰아넣고, 전원이상이 생기면 전기를 공급하는 인간 배터리 역할을 하라고 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전직 최장수 공중파 뉴스 앵커를 '조명장비 비상전원 공급 기계실'에서 근무하도록 한 조치는 해외토픽감이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ILO, 국경없는기자회 등도 진상조사에 나섰으면 하는 게 필자의 바램이다. 상암동의 랜드마크로 우뚝 솟아있는 MBC 사옥의 위용을 보면 인도 타지마할 북서쪽의 웅장한 요새 아그라성(Agra Fortress)를 연상케 하는데 이 성채의 모서리에는 샤 자한이 유폐된 ‘포로의 탑’이란 의미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가 있다. 웅장한 성채에 의외인 ‘포로의 탑’이 있듯 상암동의 랜드마크 MBC 사옥의 한 모서리에는 배현진 전 앵커가 박상후, 김세의 등과 사실상 ‘유폐’됐던 ‘조명UPS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