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로 번진 미투 운동, 한만삼 신부 '강간 미수 사건' 일파만파
  • "난 힘으로 그 분을 당할 수가 없다.

    새벽 5시가 다 되어서야 풀려나 방으로 돌아왔다.

    눈과 손목에 멍이 들었다.

    주님 저를 구하소서."


    2011년 4월 천주교 신자인 김OO씨는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선교 봉사활동을 떠났다. 주변에 생필품을 나르고 학교와 병원을 짓는 일과를 반복하던 어느 날 김씨에게 감당하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함께 선교 활동을 하던 한 신부가 식당에서 나오려는 김씨를 못 나가게 막고 강간을 시도하는 일이 벌어진 것.

    "식당에서 나오려고 하니까 어....문을 잠그고 못 나가게 막고 강간을 시도하셨죠. 그래서 음....제가 손목이 붙잡혔는데 저항하면서 제 손목을 빼다가 제 팔에 제 눈이 맞아서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들고, 벗어나려고 (옆에 놓여져있던) 흉기를 집어들었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가까이 오시진 않았지만 제가 사제를 찌를 순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을 깨우려고) 헬맷으로 거울도 깨볼까 했는데 그마저도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김씨는 KBS 취재진에게 이같은 피해 사실을 고백한 뒤 그날 밤의 정황을 기록한 자신의 일기를 공개했다. 놀랍게도 이 신부는 새벽 5시까지 김씨를 상대로 강간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밤새 눈과 손목에 멍이 드는 사투를 벌인 끝에 풀려난 김씨.

    하지만 신부의 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그 신부가 창문 앞에서 계속 김씨를 불러댔다. 김씨가 못 들은 척 자는 시늉을 하자 그 신부는 클립 같은 도구로 한참 문을 흔들더니 잠긴 문을 따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에 김씨가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치자 신부는 김씨를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은 뒤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김씨는 계속해서 "그만 좀 나가달라"고 외쳤고, 그래도 신부가 움직이질 않자 먼저 방에서 나왔다.

    "그렇게 내보내고 겨우 들어가서 '아 이제 문을 잠그는 것조차도 나한테는 의미가 없는 행동이고, 이 방조차도 나에게는 안전한 곳이 아니구나' 그렇게 깨달았죠.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엔 어쨌거나 미안하다, 잘못했다, 용서해 달라 사죄를 하고 그래서 용서를 받아주고 화해를 하고 그러면 같은 일이 또 반복이 되는거죠."

    김씨가 KBS 취재진에게 털어놓은 과거는 충격적이었다. 김씨는 6년 전 일이라 정확히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분명한 건 남수단 선교 현장에서 '그러한 일'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일어났었다는 사실이다. 김씨는 날짜가 정확히 기억나는 두 가지의 사건만 일기장에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한 일'을 당한 다음 날, 김씨가 선교 현장에 있는 다른 후배 신부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왜냐면 그 분들도 거기서 살아야 됐고 그 선배 사제의 막강한 파워, 온 지 얼마 안 된 후배들은 모든 걸 그 선배 사제한테 인수인계를 받아야 했고, 물어봐야 했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 분들이 저에게서 피해 사실을 듣고 '선배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기를 바랐다면 너무한 걸까요?"

    김씨는 '아무리 외딴 곳이라지만 분명 나머지 두 명의 신부와 다른 자원봉사자도 있는데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는 KBS 취재진의 질문에 "이런 얘기가 알려지면 어마어마한 신자들의 기도와 희생으로 이뤄진 수단 선교지가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두려움에, 나 하나만 입 다물면 평화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토로했다.

    김씨가 숨어 있는 문을 클립으로 따고 들어와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되내었던 신부는 고(故) 이태석 신부의 뒤를 이어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펼쳐온 한만삼 신부였다. 현재 천주교 수원교구 광교1성당에서 주임신부를 맡고 있는 한만삼 신부는 KBS 다큐 '울지마 톤즈'에도 이태석 신부와 함께 등장해 매우 헌신적인 사제로 소개된 바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수단 선교사제로 활동한 그는 현장에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해온 수도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큰비 신부님'이란 책도 펴냈다.

    지난달 25일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이 밝힌 성명에 따르면 한만삼 신부는 자신의 강간미수 사건이 폭로된 2월 23일 오전까지도 수원 광교1동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만삼 신부는 오랫동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로 활동하며 '쌍용차 사태'와 '세월호 침몰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같은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최일선에서 목소리를 높여왔던 인물이다.

    한만삼 신부의 설교에는 양심이나 정의 같은 단어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거짓과 어둠에 당당히 맞서자"며 신도들의 행동과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월간조선과 문화일보 등에 따르면 2013년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미사에서 한만삼 신부는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빛이 있는데, 어둠이 깊어갈 때 빛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거짓이 깊어갈 때 양심이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고, 2014년 세월호 사태와 관련된 광화문광장 미사에선 "정의는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불의에 침묵하지 말고 저항하자"는 설교를 하기도 했다.

    2016년 수원촛불문화제에서도 그는 "목숨을 잃어버린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오히려 진실을 덮으려는, 국민을 개돼지보다 못한 존재로, 국민을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박근혜 정권의 사악함에 소름이 돋아오를 정도"라는 비난의 소리를 높였고, 지난해 12월 성탄절을 앞두고는 "양심수는 사회를 양심적으로 만드는 빛인데, 양심수가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양심을 탄압하고 있다는 바로미터"라면서 "양심수 석방이 촛불 혁명의 시작이며 완성이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비롯한 양심수들을 성탄절 특사로 석방하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선교 현장에서 여신도를 상대로 '강간 미수'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는 오랫동안 수많은 대중 앞에서 '정의'와 '양심'을 부르짖는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한만삼 신부가 내보인 가증스러운 위선과 이중성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 천주교인권위원회의 한 간부도 2014년 한 지역 여성활동가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는 점이다. 사건이 불거지자 해당 간부는 "용납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며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교계 신도들은 일반인보다 더욱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성직자나 간사들이 성추문에 휩싸였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한 가지 분명해진 건, 이번 사건을 통해 종교 단체도 결코 '성범죄의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성직자들의 성범죄 문제가 비단 천주교만의 문제일까?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6년 11월까지 검거된 전문직 성폭력 범죄자 5,261명 중에서 성직자가 681명을 차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폐쇄적인 조직 문화로 인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한만삼 신부 같은 사례는 타종교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개신교와 불교계에서도 내부 제보를 토대로 강력한 자정운동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선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론 불가능하다. 지금도 사회 전반 각계에서 '인면수심'으로 활동 중인 지도층 인사들이 부지기수. 용기 있는 개인의 결단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격려하고 가해자들을 집단에서 솎아내는 우리 이웃들의 관심과 노력이 더욱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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