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저서에서 성추문 당사자 고은 시구 인용...‘성추행’ 박재동, 오디세이 명예교장 사임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데일리 DB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데일리 DB

    미투(Me Too) 운동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나가면서, 가해자들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뜻하지 않은 구설에 오르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번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미투 운동 때문에 곤혹스런 상황에 놓였다. 조 교육감이 최근 출판기념회를 통해 공개한 새 저서에서, 성추문 가해자 중 한명인 고은 시인의 시를 인용한 사실이 드러난 것. 조 교육감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오디세이학교(고1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대안교육 프로그램)도 미투 운동이 발단이 돼 시작부터 모양새를 구겼다.  

    조 교육감이 고은 시인의 시를 인용한 수필은, 최근 그가 새로 펴낸 교육 에세이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한다'에 첫 작품으로 수록돼 있다.  

    '겨울에 자란 나이테가 더욱 단단하다'는 제목이 붙은 글에서 조 교육감은, 고은 시인의 시 '순간의 꽃' 가운데 일부를 인용하면서 감상평을 적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누구와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개인적으로 이 글귀를 보며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렸다.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 원로시인 고은. ⓒ뉴시스
    ▲ 원로시인 고은. ⓒ뉴시스

    조 교육감이 고은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이념적으로 논란이 있는 故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에 대한 존경의 뜻을 밝힌 사실을 문제 삼는 견해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 속칭 진보진영 지식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신 전 교수는, 1968년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중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동안 수의(囚衣)를 입었다.   

    신 전 교수는 1988년 광복절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작고할 때까지 성공회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신 전 교수가 수감 생활 중 느낀 소회를 담은 에세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진보 성향 지식인들이 가장 즐겨 읽는 스테디셀러 가운데 하나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신 전 교수가 연루된 통일혁명당 사건은 ‘임자도 간첩단사건’, ‘서귀포 간첩선 사건’과 더불어, 남한에 대규모 지하당 조직을 구축할 목적으로 기획된 북한 대남공작의 하나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신영복 전 교수를 ‘김일성 사상가’로 정의 내려, 좌파 정치인과 지식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조 교육감이 각별한 공을 들인 역점 사업 '오디세이학교'도 성추문에 휘청거리고 있다.

    오디세이학교는 학교 울타리 안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진로·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새로 도입된 교육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교 1학년 중 신청 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프로그램 운영기간은 1년이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입시 부담에서 벗어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을 갖는다.  조 교육감이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해법으로 적극 추진한 프로그램으로 출범 당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뉴데일리DB
    ▲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뉴데일리DB

    서울교육청은 사업의 비중에 걸맞게 지난해 12월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오디세이학교 명예교장으로 위촉했다. 박 교수는 오디세이학교 운영 자문 및 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 애니메이션 광고를 만들며 지명도를 높인 박재동 교수는, 한겨레 기자 출신의 시사만화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웹툰 작가 이태경씨가 “7년 전 성추행을 당했다”며 가해자로 박 교수를 지목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박 교수는 처음 “기억이 없다, 성희롱 할 생각도 없었다”며 폭로 사실을 부인했으나, 이틀 뒤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을 인지하지 못했다.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며 폭로 사실을 시인했다. 

    박 교수는 재직 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에게까지 강의 도중 성희롱에 해당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공분을 샀다. 학교는 “TF를 구성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파문이 커지면서 박 교수는 개교를 앞둔 오디세이학교 명예교장 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서울교육청은 “오디세이학교 명예교장은 상근직이 아니기 때문에 운영에 문제가 없다”며, 예정대로 입학식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