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파가 무너졌던 것처럼 좌파 기득권에 던져진 숙제… '미투' 속에서 '공정과 정의' 세워야
  • ▲ 지난해 태극기 집회 현장 ⓒ 뉴데일리 DB
    ▲ 지난해 태극기 집회 현장 ⓒ 뉴데일리 DB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대통령 박근혜 탄핵'은 우파 내부 분열이 결정적이었다.

    최순실 정체가 드러나고 각종 루머가 판을 치며 촛불이 광화문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지지층은 분열했다. 젊은 우파와 꼰대 우파가 갈렸고, 어디선가 애국 보수라는 말이 생겨났다. 각자가 추구한 가치와 이념은 그르다 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치열한 내부 노선투쟁이 벌어지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다. 결과적으론 그랬다.

    집요한 좌파의 공격에도 공고하던 콘크리트 지지율이 일련의 사태로 한번에 꺾였다. 4% 안팎까지 떨어진 지지율은 탄핵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차 분열은 최순실 딸 정유라의 '돈도 실력,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이 시작이었다. 젊은 보수 내부에서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소위 자괴감과 회의감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왔다.

    안타깝게도 기득권 보수는 이를 위로할 여력이 없었다. 애초에 최순실과 정유라를 욕하던 사람들이 나중에 박 대통령과 연관성이 드러나자 이상하게 변해갔다. 일부 꼰대보수들은 은연 중에 '그게 세상의 이치 아니겠느냐'며 합리화를 시작했다. 좌파의 철저한 기획에 의한 탄핵시도였든 아니든, 우파 내부에서 '이건 아니다'는 말이 나오게 된 계기다.

    2차 분열은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중구난방 흩어진 구호에서 비롯됐다. 진실을 지키자는 구호가 어느새 종북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자로 발전했고, 종국에는 박근혜를 지키자는 프레임으로 치달았다.

    처음에는 박근혜는 잘못했지만, 탄핵은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우파는 외부 공격을 막기보다 내부 악다구니를 시작했다. '틀딱'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함께 탄핵반대를 외치면서도 서로를 배신자라 지칭하며 비난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내부 분열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 침묵하기 시작했다. 민낯이 드러난 친문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이들도 결국 탄핵정국에 고개를 돌리고 대열을 이탈했다.

    박 전 대통령 스스로가 말하듯 '엮어도 너무 어거지로 엮었다'는 국정농단 혐의로 징역 30년이 구형된 지금에서도 우파세력이 문재인을 욕할지언정 박근혜를 한 목소리로 옹호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 2012년 4월 부산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어준 씨, 주진우 씨와 함께 회합을 가지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 2012년 4월 부산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어준 씨, 주진우 씨와 함께 회합을 가지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지나간 불편한 얘기를 굳이 다시 돌이키는 까닭은 요즘 좌파 세력 내부에서도 이런 불안감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세상사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처럼 좌파 분열도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종북, 친북 얘기야 지겹게 들었겠지만 평창올림픽에서 자행된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역차별은 젊은 좌파 세력에게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이낙연 총리의 '메달권' 발언은 공정과 정의를 불변 진리로 삼아온 젊은층을 분노케 했다.

    "우리나라 선수보다 북한 XX들이 먼저야"라는 벌레소년(평창유감)의 외침은 정권을 쥔 운동권 세력에게는 정유라가 기억날 만큼 뼈아픈 말로 다가섰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여기저기 번져갈 때쯤 별안간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폭격처럼 쏟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좌파 인사들이 콕콕 집혀 그들의 적나라한 성(性)인식이 드러났다. 아마도 좌파 사회의 아킬레스건였던 모양이다.

    고은, 이윤택 등 좌파인지 진보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권 또는 민주세력과 가깝게 지내던 이들의 음담패설이 까발려졌다.

    국민은 충격에, 좌파 기득권은 혼란에 빠졌다. 유독 드러나는 가해자들이 자신들과 함께 했던 이들이라는 점에 위기감을 느낀다.

    정권 몰락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어준의 '미투 공작' 발언은 아마도 이런 위기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우파가 '통치'라는 개념을 두고 서로 다른 견해로 분열했던 것처럼, 좌파가 '섹스'에 대한 이견으로 대립하면서 위기를 좌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해자를 '쓰레기'로 비난하며 열을 올리는 일반적인 사고도 있지만, 반대편에는 우리사회 대표적인 어두운 부분으로 치부하며 그러려니 하는 이도 있고 김어준 씨 치럼 정치적 음모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졌던 당시를 비쳐볼 때 문제는 이 다음 과정이다. 하나의 사건이 터진 뒤 동지라 생각했던 각자가 이견이 갈리고, 분열과 내부 환멸로 이어진다. 역시나 사회 곳곳에서 환멸을 느낄 만한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여자가 행실을 바로 해야지', '꼬리 쳤을거야', '남녀관계가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닌가', '이게 다 정치적 음모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이런 인식에 박근혜를 욕하고, 문재인을 믿었던 이들의 머리 속에 의구심이 생긴다. '이게 니들이 말하던 정의야?'

    '정유라 말도 틀린 말은 아냐', '대통령이 측근 한두명 곁에 두고 기업들에게 돈 좀 걷을 수도 있지'라는 1년 전 누군가의 목소리가 중첩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은 잘나가는 서울지역 국회의원이지만, 몇년 전까지 민주당 무급 당직자로 고군분투하던 한 인사는 사석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세상은 좌파에게 너무 높은 공정과 정의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런 잣대는 우파에게 적용해야지 좌파에게 적용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좌파가 개혁과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몸에 더러움을 묻혀야 하는 법이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이치 아닌가."

  • ▲ 성추문이 드러난 이들과 문재인 대통령과 연관성이 담긴 트윗들 ⓒ SNS 캡쳐
    ▲ 성추문이 드러난 이들과 문재인 대통령과 연관성이 담긴 트윗들 ⓒ SNS 캡쳐
    좀 더 솔직해져보자. 좌우를 떠나 그동안 권력을 거머쥐고 떵떵거렸던 일부 기득권들이 이런 소름끼치는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던 건 사실 아닌가.

    우파 몰락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번 미투 아젠다도 정권을 가진 좌파 기득권이 미투 열풍 속에서 처절한 자기성찰을 통해 치부를 도려낼 수 있을것이냐는 게 눈 앞에 다가온 숙제다.

    박근혜가 끝끝내 최순실을 내치지 못했던 것처럼, 마지막 궁지에 몰린 뒤 '이건 어거지야'라고 외쳤던 것처럼, 아마도 이 문제의 끝은 문재인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업(業)이 아닐까 한다.

    친구처럼 지냈던 고은, 이윤택 등을 향해 '쓰레기'라 비난하고 또 그들과 함께 했던 대통령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김어준 말처럼 어설픈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한 많은 사람이 고개를 돌릴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불과 10개월간의 집권기간 동안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보여준 모습은 그리 철저하지 못했다.

    귀를 의심케 하는 성(性)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 탁 모 행정관에 대한 대처만 봐도 김어준의 안목은 꽤 먼 미래를 내다본게 아닌가 싶다.
  • ▲ 논란의 탁현민 행정관이 지난 1일 게재한 SNS(아래)와 과거 집필한 저서에 나온 문장들 ⓒ 방송화면 캡쳐
    ▲ 논란의 탁현민 행정관이 지난 1일 게재한 SNS(아래)와 과거 집필한 저서에 나온 문장들 ⓒ 방송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