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경기 지자체 “군인 외출 외박구역 제한철폐, 120만 명 죽는다”반대 기자회견
  • ▲ 2014년 2월 폭설이 내린 강원도 인제군 일대에서 민간 제설작업을 대민지원 중인 3군단 장병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이들에게 '일당'을 지불한 적이 없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4년 2월 폭설이 내린 강원도 인제군 일대에서 민간 제설작업을 대민지원 중인 3군단 장병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이들에게 '일당'을 지불한 적이 없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21일 군 적폐청산위원회는 국방부에 여러 가지 권고를 내놨다. 이 가운데 하나는 ‘군 장병들의 외출·외박 지역 제한 철폐’였다. 기성세대들은 ‘위수지역 제한철폐’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해군과 공군은 애초부터 ‘위수지역 제한’이 없으니 사실상 육군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를 두고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 지역 상인들이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지난 26일에는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역 시장·군수 협의회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인들의 외출·외박구역 제한철폐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군 적폐청산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 지역 상권을 무너뜨려 주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해 버리는 것”이라며 “120만 접경지역 주민들은 당장의 생계 걱정에 잠을 설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들은 “접경지역 주민들은 남북 분단 상황으로 수십 년 동안 삶을 희생당했는데 정부가 국가안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견뎌 온 접경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현역 복무 중이거나 현역 복무를 마친 장병들은 이런 접경지역 지자체의 주장에 코웃음을 치고 있다. “평소에 군인들에게 잘 했다면 이런 일이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지난 15년 동안 경기도와 강원도 전방 지역을 수십 차례 돌아볼 때마다 현장에서 만난 장병들은 “접경 지역의 상인들이 군인들을 호구로 보는 것 같다”는 불평을 쏟아냈다. 일부 상인들 또한 병사들이 자주 찾는 PC방이나 식당, 술집, 숙박업소가 병사들이 외출·외박을 나오는 주말만 되면 폭리를 취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병사들이 외출·외박을 나와 PC방에 가면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요금을 받고, 주말에 가족이나 친구, 애인이 면회를 와 숙박업소를 잡으려 하면 하루 숙박비를 10만 원 이상 요구하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다른 문제도 있다. 실은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군부대 인근에서 수십 년 동안 장사를 하며 살아온 주민들이다보니 군인들과 그 가족마저 너무 우습게 본다는 점이다.

    접경 지역에서 군복무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해당 지역에서의 대민지원 활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부 주민들은 "나라를 지키러 입대한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마치 노예 부리듯 함부로 대한다. 그럼에도 현역 군인은 민간인에게 함부로 대응할 수가 없다. 이런 지원을 수십 년 동안 받아 온 지역 주민들은 군인 알기를 '천민'처럼 알고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생각이 깊숙이 박혀 있다 보니 "우리가 군인들에게 함부로 한다고 설마 걔네들이 반발 하겠어"라고 착각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접경 지역 주민의 경제는 그 군인들에게 달려 있다는 점이다.
  • ▲ 2011년 3월 10일 YTN이 보도한 양구 고교생의 외박병사 폭행 영상. ⓒYTN 당시 미공개 영상보도 화면캡쳐.
    ▲ 2011년 3월 10일 YTN이 보도한 양구 고교생의 외박병사 폭행 영상. ⓒYTN 당시 미공개 영상보도 화면캡쳐.
    실제 2011년 3월 6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버스 터미널 인근에서 외박을 나온 병사 2명이 지역 고교생 10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군인이 민간인과의 폭행 사건에 휘말리면 형사처벌된다는 것을 아는 병사들은 그저 맞고만 있었다고 한다. 피해를 입은 병사 한 명은 전치 6주의 중상을 입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양구군에 주둔 중인 2곳의 사단 사령부에서 병사들의 외출·외박을 금지했다. 병사들을 집단 폭행한 고교생이 누군지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던 지역 상인들이 이 조치에 놀라 범인들을 잡아 경찰에 인계하고, 부대를 방문해 공식 사과했다. 그 뒤에야 피해 병사 소속 부대는 지자체 등으로부터 재발 방지 약속을 받은 뒤에야 외출·외박 금지령을 풀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에 대한 소문은 이미 30년 전부터 경기도와 강원도 곳곳의 부대 내에서 알려져 왔다. 때문에 장병 외출·외박 지역 제한 철폐 권고안은 시중에서 “군 적폐청산위원회 권고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역 지자체들은 국회까지 찾아가 소란을 피우고 있지만, 외출·외박 지역 제한을 적용받는 육군 측에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육군 관계자는 “해당 사안은 군 적폐청산위원회에서 국방부에 권고안으로 내놓은 것으로, 28일 현재까지는 국방부에서 내려온 지침이 없다”고 밝혔다.

    아무튼 장병들의 외출·외박 지역 제한이 사라지면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역 상인들은 수십 년 동안 손쉽게 돈을 벌던 ‘호구’가 사라지니까 불안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매년 2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복무 지역에 대한 불만과 악감정만 쌓여서 사회로 복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일부 군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유사시 빠른 부대 복귀를 고려한다면, 현재의 해군과 공군처럼 외박·외출 구역 제한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그 구역을 광역 지자체 범위로 대폭 확대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기도와 강원도 모두 30년 전과는 달리 다른 지역만큼이나 고속도로가 잘 정비돼 있다.

    특히 강원도는 강릉까지 KTX도 개통됐고, 서울에서 춘천까지 ITX도 자주 운행하므로 광역 지자체를 장병 외출·외박 구역으로 지정한다면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