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할아버지가 '스키 여제' 린지 본 '첫 스승'

린지 본 "할아버지 '도널드 킬도'에게 처음으로 스키 배워"
故도널드 킬도, 6.25전쟁에 '공병'으로 참전..정선 인근 주둔
린지본, 지난 17일 정선 올림픽 슬로프에 할아버지 유해 뿌려

조광형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2.23 12:03:27
국내 취재진이 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 선수를 언급할 때 '빙상여제(氷上女帝)'라는 극존칭을 사용하는 것처럼, 해외 취재진이 알파인 스키 선수 '린지 본(Lindsey Vonn)'을 부를 때에도 곧잘 쓰는 말이 있다. 이름하여 '스피드 퀸(Speed-Queen)'. 활강이나 슈퍼대회전 같은 스피드 종목에서 오랫동안 1인자의 자리를 지켜왔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실제로 린지 본의 전적을 보면 '여왕', 혹은 '여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16살 때 알파인 스키 선수로 데뷔한 린지 본은 18년 동안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 무려 81승을 거뒀다. 현역 선수 중에선 '우승 횟수'만 놓고 봤을 때 린지 본과 견줄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가히 '스키계의 전설'로 통하는 린지 본이 우리나라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 린지 본은 지난 17일 슈퍼대회전 경기를 마친 뒤 강원도 정선 올림픽 슬로프에 '도널드 킬도(Donald Kildow)'의 유해(遺骸)를 뿌렸다. 린지 본의 결혼 전 성은 '킬도(Kildow)'. 도널드 킬도는 바로 린지 본의 친할아버지였다.

린지 본은 할아버지 도널드 킬도에게 제일 먼저 스키를 배웠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도널드 킬도는 생전 손녀가 출전한 모든 대회의 기록을 스크랩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녀를 위해 장장 39권 분량의 신문 기사를 모을 정도로 지극 정성을 쏟은 도널드 킬도는 린지 본이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정강이뼈가 골절되는 큰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에도 끊임없는 격려와 위로로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끔 만든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저에게 할아버지는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할아버지가 정말로 보고 싶어요. 지금도 어디에선가 저를 보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할아버지를 위해 정말 경기를 잘했으면 좋겠어요."


린지 본은 지난 9일 평창 알펜시아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공식 기자회견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받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지난해 11월 할아버지를 여읜 린지 본은 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한동안 '스키폴'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슬럼프를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할아버지가 도와주실 것으로 믿고 있다"며 "할아버지를 위해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전의를 불태웠던 린지 본은 17일 열린 '슈퍼대회전'과 21일 열린 '여자 활강'에서 아쉽게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22일 복합 종목 경기에서도 기문을 밟고 지나가는 실수로 실격된 린지 본은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동메달(활강) 한 개 밖에 얻질 못하는, 다소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린지 본은 "최선을 다해 좋은 레이스를 펼쳤다"며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동메달도 자랑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여자 활강' 경기 직후 믹스트존 인터뷰에 나선 린지 본은 "금메달도 소중하지만, 8년 만에 다시 출전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는 꿈을 이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늘에서 할아버지가 지켜보실 것으로 알고 경기에 임했어요. 할아버지를 위해 금메달을 따고 싶었죠.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동메달도 무척 자랑스러워요. 할아버지가 곁에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지금 너무나 행복합니다."


린지 본은 "할아버지를 포함해 가족들 모두 제게 큰 힘이 돼 줬고, 그동안 저로 인해 큰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며 "제가 강하고 단단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는 가족을 챙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소감을 마무리했다.

오늘날의 '스키 여제'를 만들어 낸 린지 본의 할아버지 도널드 킬도는 6.25전쟁 때 미 육군 공병으로 활약했던 참전용사다. 스키 경기가 열린 강원도 정선 알파인 센터는 오래 전 도널드 킬도가 목숨을 걸고 지켜냈던 장소와 아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린지 본은 2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가 계셨던 곳에서 할아버지를 위해 뛰었다"며 "이곳에 직접 와서 제 경기를 보시고 싶어했던 할아버지를 이렇게라도 모실 수 있게 됐다. 할아버지도 영원히 한국의 일부로 남게 돼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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