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김여정 등 北대표단과 청와대 오찬, 친서 받고 "앞으로 여건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
  • ▲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을 만난 모습.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을 만난 모습.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북한의 방북 요청에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특사 김여정이 "북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을 빠른 시일 내에 만날 용의가 있다"며 친서를 전달하자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대표단의 방한으로 평창 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되고, 한반도 긴장 완화·평화 정착 및 남북관계를 개선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며 "특히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간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에 북한 김영남은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데 대해 남북이 함께 축하하자"고 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 문제 전반에 대해 폭 넓은 논의를 했다"며 "남북은 이번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마련된 한반도 평화와 화해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을 활성화해 나가자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설명했다.

  •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영남, 김여정.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영남, 김여정. ⓒ청와대 제공


    ◆ 현관까지 나와서 北 대표단 맞이…극진한 예우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하고 오찬한 자리에서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대표단을 맞이하기 위해 청와대 참모진들을 이끌고 현관까지 나갔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북측 대표단을 맞이하기 위해 본관 1층 현관 밖에서 기다렸고, 문재인 대통령은 현관 안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첫번째 차량에서 김영남, 두번째 차량에서 김여정이 내리자 임종석 실장이 먼저 맞이하고, 세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했다.

    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김영남에 "밤늦게까지 고생하셨다. 추운데 괜찮으셨나"라고 물었고, 김영남은 "괜찮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김여정에게도 "추운 날씨에 밤 늦게까지 고생이 많으셨다"고 했고, 이에 대해 김여정은 '대통령께서 마음을 많이 써주셔서 괜찮았다'는 취지로 대답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의전 수준을 묻는 질문에 "정상급 의전이 이뤄질 것"이라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간 극진한 예우를 강조할 때 '현관 마중'을 택했다. 지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방문할 때도 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현관에서 기다린 후 마중하고 환영식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시작한 접견은 11시 10분에 시작해 12시 20분 쯤에 방명록 작성 후 오찬으로 전환됐다. 오찬은 오후 1시 46분에 끝났다.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 ▲ 문재인 대통령이 김영남, 김여정
 등과 함께 청와대 본관 복도를
 지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김영남, 김여정 등과 함께 청와대 본관 복도를 지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靑, 남북관계 진전 평가… 기대감 역력

    청와대는 이같은 노력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것에 대해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앞서 언급했던 '여건'에 대해 "한반도를 둘러싼 전체 환경과 분위기 여건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남북 관계 발전을 우해 북미 간 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대통령도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 (사실상) 수락이라 볼 수 있다"며 "남북 정상회담이 2007년에 있었고 10년도 넘게만에 이뤄지는데 의미있고 성과있게 이뤄지려면 분위기와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재차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건배사로 '남북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하여'라고 했다"며 "금강산과 개성만 가보고 평양은 못 가봤다는 말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북측 대표단에 "젊었을 때 개마고원에서 한 두달 지내는 것이 꿈이어서 개마고원 사진도 걸어놨었다"며 "이렇게 오신걸 보면 마음만 먹으면 말도 문화도 같기 때문에 쉽게 (통일이)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했다.

    또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서훈 국정원장을 소개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때 북한을 자주 방문했던 분들"이라며 "제가 이 두분을 모신 것만 봐도 남북 관계를 빠르고 활발하게 발전시켜나가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정은의 친서에 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받아서 혼자 본 후 접어 부속시랑에 넘겼고, 김여정이 구두로 방북 초청에 관한 내용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기조에도 불구, 북한과 대화를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쾨르버 재단 연설에서도 북한을 언급하면서 '대화'를 13차례나 언급했다.

  • ▲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여정으로부터 친서를 받는 모습.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여정으로부터 친서를 받는 모습. ⓒ청와대 제공


    ◆ 하지만 앞날 가시밭 길…북핵·비핵화 언급은 전혀 안 돼

    그러나 이날 접견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갈 길은 여전히 멀어보인다. 이날 접견에서 북핵·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핵이나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제 기억에는 없었다"며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었고, 실무적 의제를 올려놓고 논의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핵 협상을 폐기하기 위한 몇 단계 절차를 하라는 말 등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 및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질문에도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다"고 했다. 이에 기자들이 단순히 '미국'에 관한 이야기 자체가 없었느냐고 재차 묻자 "(미국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없었다라고 할 수는 없으나, 공개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며 "북한이 그간 미국에 대해 많이 했던 이야기를 들었다"고 짚었다.

    다만 "핵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여건이 무르익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에 그런 의미도 담겨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밖의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제안이 아니었다. 의제를 놓고 말한 건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북측의 태도 역시 변화하지 않았다. 북한 김영남은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불과 40여 일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격동적이고 감동적인 분위기가 되리라 누구도 생각조차 못했는데, 개막식때 북남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역시 한 핏줄이구나 하는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는 2018년 1월 초,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 참가를 언급한 시점을 말하는 것으로, 평창 올림픽의 분위기를 북한이 만들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특히 북한 대표단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면서 김일성·김정일 뱃지를 착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한국당은 우려를 나타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평창동계올림픽 하루 전 열린 북한의 열병식에 대해서는 한 마디 유감 표명도 하지 못한 정부가 이제 북한 김정은의 초대까지 받게 되었다"며 "이 초대가 사실상 대한민국 대통령의 알현을 윤허한 것인지 국민들은 따가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는 남북 고위급 회담 첫머리에 비핵화 이야기를 꺼냈다가 리선권이 반발하자 황급히 꼬리를 내리고, 이후 비핵화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며 "문재인 정부는 평창 이후를 대비함에 있어 먼저 뿌리 깊은 대북인식을 버려야 한다.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에 말려드는 정부야말로 일촉즉발 위기의 한반도에 있어 가장 위험한 요소라는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던 때에도 일본과 미국은 대화 중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평창 이후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의 대오각성"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본격적인 접견에서는 타원형 테이블에 최휘·김영남·김여정·리선권 4명이 순서대로 앉았다. 우리 쪽에서는 서훈 국정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5명이 배석, 문 대통령이 김영남과 김여정 사이로 위치하는 구도로 진행됐다.

    아울러 이날 오찬에는 한반도의 팔도 음식이 전부 들어가는 한식 요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메인 요리는 강원도 대표 음식인 황태요리가 제공됐다. 이밖에도 북한의 대표적인 김치인 백김치와 우리나라 대표적 김치인 여수 갓김치가 나왔고, 후식으로는 천안 호두과자, 상주 곶감이 올랐다. 건배주는 한라산 소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