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김정은 남매 ‘곁가지(庶子)’취급 받아…北 요구대로 ‘방남’ ‘남측’ 용어 사용
  •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김여정. 네티즌들은 여배우 '신신애'와 꼭 닮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뉴데일리 DB
    ▲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김여정. 네티즌들은 여배우 '신신애'와 꼭 닮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뉴데일리 DB
    지난 9일 오후 1시 30분,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한국에 왔다. 김여정은 김영남, 최 휘 등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을 관람했다.

    김여정 일행은 10일 정오 무렵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 훈 국정원장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만난 뒤 오찬을 가졌다. 북한 차관급 '실세' 하나가 왔다고 한국 수뇌부가 대부분 나온 것이다.

    청와대부터 주요 정부부처, 국내 대부분의 언론들이 “사상 처음으로 ‘백두혈통’이 방남 했다”고 호들갑을 떨며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북한 정상과의 대리 회담”이라거나 “김여정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갖고 왔을 것”이라며 “文대통령에게 방북 초청을 할 지도 모른다”고 떠들고 있다. 국민들은 이런 정부와 언론들의 표현을 보며 “이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여정’이 ‘백두혈통’? 북한에서는 ‘곁가지’ ‘후지산 혈통’

    몇 년 전 일본에서는 천황(일왕)의 후계 구도를 놓고 “여자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황실전범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국내 일각에서는 일본을 ‘전근대적’인 사회로 폄하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천년도 넘은 다른 나라의 일을 함부로 폄훼하는 행태였다. 그런데 이런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미개한’ 곳이 바로 북한임에도 이들을 비난하는 언론이나 학자를 보기가 어렵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정은과 김여정, 김정철은 ‘백두혈통’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김정은이 현재 ‘공포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백두혈통’이라는 주장을 들어줄 뿐이다.

  • 과거 김정일이 김일성을 수행하는 모습.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 과거 김정일이 김일성을 수행하는 모습.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북한에서 ‘백두혈통’이라는 표현은 김일성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세우려 할 때부터 나왔다. 통일부의 ‘통일 지식 사전’에는 ‘백두혈통’이 1971년 6월 24일 열린 사회주의 노동청년연맹(現김일성-김정일 주의 청년동맹) 제6차 대회에서 김일성이 첫 주장한 것으로 정의했다.

    당시 김일성은 연설에서 “청년들은 대를 이어 혁명을 이어나가야 한다”며 “새 세대들이 혁명의 대를 이어나가야 성스러운 혁명 위업을 완수할 수 있다”며 김정일의 후계자 등장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1971년 10월 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년 사업부 및 사회주의 노동청년연맹 중앙위원회 책임 일꾼들과의 담화에서 김일성의 말을 언급하며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김정일이 권력을 이어받은 뒤에는 ‘주체의 혈통론’으로 발전했다. 김일성과 김정일 때 혁명의 대를 이어받는 조건으로 ‘수령에 대한 충실성’, ‘비범한 사상 이론적 예지와 뛰어난 영도력 그리고 고매한 공산주의적 덕성’, ‘업적과 공헌으로 인민들 속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 ‘세대교체론’ 등을 모두 충족해야만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은 ‘김일성 혈통’, 즉 김일성이 인정한 자손이 아니면 권력을 세습 받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김일성이 예뻐한 유일한 손자 ‘김설송’, 가족 사진도 없는 ‘김정은 남매’

    1990년대까지 ‘백두혈통’은 김일성에게 인정받은 자손에게만 붙이는 칭호였다. 김정일은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도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부친에게 소개하지 못했다. 김일성이 ‘재일교포’ 출신 고영희에게서 낳은 자식들을 친손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죽은 뒤 김정일도 후계자로 김정은을 내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자신이 1970년대 초반 김일성의 뒤를 이어 대남공작 담당자가 됐을 때 30대 후반이었음에도 김일성의 측근들을 꺾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김정은은 1990년대 후반에도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여서 노동당 간부나 북한군 장교는커녕 자칫 일반 주민들에게도 무시당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 김정은은 김설송 등과는 달리 머리가 그리 좋은 편도 아니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김정일은 김정은의 이름을 2000년대 중반에서야 슬슬 공개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2011년 12월 죽고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자신의 모친과 형제들을 우상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전체 가족사진은 물론 김일성과 찍은 어릴 적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김정은은 자신의 외모를 김일성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살찌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김일성이 생전에 유일한 친손자로 인정한 사람은 김정일과 본처 김영숙 사이에서 낳은 김설송 뿐이다.

  •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北선전매체에 등장한 김설송. 한복 차림 여성 뒤에 있는 사람이 김설송이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北선전매체에 등장한 김설송. 한복 차림 여성 뒤에 있는 사람이 김설송이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1974년생으로 알려진 김설송이 IT 분야에 관심을 갖자 김일성이 美‘애플’社의 제품을 잔뜩 사다줬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김설송은 이후 조선콤퓨터센터를 비롯해 북한 ICT 발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에서는 2012년 12월 김정일이 죽을 때도 김설송의 집에 들러 술을 마시며 김정은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런 내용을 아는 북한 노동당 간부나 북한군 간부들은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김정은과 김정철, 김여정을 ‘후지산 혈통’이라고 불렀다. 모친이 재일교포 첩이어서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는 과정에서도 이들 남매는 북한 주민들로부터 ‘곁가지’, 즉 ‘서자(庶子)’로 취급 받았다.

    김정은이 집권 후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 처형하고 고모 김경희를 유폐시키듯 하자 북한 사회에서는 ‘공포감’ 때문에 김정은 남매가 ‘백두혈통’인 양 선전을 하고 있지만, 북한 사회에서는 이들이 ‘적자(嫡子)’가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우습게도 한국 정부와 언론이 김정은 남매를 ‘적자’로 취급해 주고 있다.

    ‘방남’ ‘남측’ 표현부터 ‘美-北 대화’ ‘남북정상회담’ 추측까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예술단, 응원단, 대표단 등이 한국에 오기 시작하면서 정부와 언론들이 내놓는 표현들도 이상한 것이 많다. ‘방남’과 ‘남측’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헌법에서부터 북한을 공식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북한 입국’ 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방북(북한 방문)’이라고 표현해 왔다. 북한 또한 ‘남조선’을 적화 통일에 실패한 곳이기 때문에 ‘방한(한국 방문)’이라고 하지 않고 ‘방남(남측 방문)’이라고 부른다.

    기자들 가운데 일부가 북한 선수나 응원단, 예술단과 만났을 때 ‘북한’이라고 말했다가 “북측이라 말하라”는 ‘경고성 항의’를 받는 이유도 김정은 체제에서는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나 ‘공화국’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며 한국을 ‘남측’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수복 지역을 무력 점령한 국가 참칭 집단’의 이런 요구를 한국 일부 언론이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 그리고 한국 정부 부처들이 받아들였다는 것이 문제다.

  • 김정은과 나란히 걷는 김여정. 북한 내부에서는 이들을 '곁가지' 또는 '후지산 혈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정은과 나란히 걷는 김여정. 북한 내부에서는 이들을 '곁가지' 또는 '후지산 혈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 선수단이 방한한 뒤에는 올림픽 경기종목의 호칭이 이상하게 변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종목이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 여자 아이스하키였다. 일부 언론이 ‘빙구(氷球)’라고 부르더니 나중에는 수백여 개의 언론사가 ‘빙구’라고 쓰기 시작했다.

    ‘빙구’는 ‘아이스하키’를 뜻한다. 한국에 처음 아이스하키가 전해졌던 일제시대 ‘빙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고, 북한에서는 이후로도 계속 ‘빙구’라고 부르고 있다.

    이밖에도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보도 곳곳에서 북한식 표현들이 점차 늘고 있다. "북한 측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해달라"는 마이크 펜스 美부통령의 공식 요청을 9일 올림픽 개막 만찬에서 간단하게 무시해 버린 문재인 정부는 이후 김여정 일행과 북한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대접을 더욱 극진하게 하려는 분위기다. 언론들 또한 문재인 정부에 편승하려는 듯 펜스 美부통령을 향해 "무례하다" "결례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있다.

    여기에 맞춰 올림픽 경기가 진행될수록 북한식 표현이 더 범람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평양 동계올림픽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반박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국민들 눈에는 정말 ‘평양 동계올림픽’을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