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대표 文대통령 연설 불참, 美부통령은 만찬도 보이콧… 김여정에겐 청와대 본관까지 불러 오찬하기로
  •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영남이 만난 모습. ⓒ뉴시스 DB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영남이 만난 모습. ⓒ뉴시스 DB
    세계정상들이 모인 평창올림픽 개회식이 북한 김영남 등장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아베 일본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는 환영 리셉션장에 뒤늦게 도착하고, 급기야 펜스 부통령은 행사장을 돌발 퇴장하는 등 외교참사가 벌어지면서 극도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 ▲ 펜스 미국 부통령과 일본 아베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 뒤쪽으로 북한 김여정이 보인다. (왼쪽에서 두번째) ⓒ뉴시스 DB
    ▲ 펜스 미국 부통령과 일본 아베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 뒤쪽으로 북한 김여정이 보인다. (왼쪽에서 두번째) ⓒ뉴시스 DB

    ◆ 10분 늦은 美·日… 펜스, 5분만에 퇴장한 사연은

    9일 열리는 평창 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에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내외,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내외, 프랑스-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내외, 한정 중국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안토니오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 등이 헤드테이블을 배정 받았다. 여기에는 북한 김영남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사전 리셉션 행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올림픽을 계기로 방한한 국내외 귀빈들을 환영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21개국 정상급 인사 26명이 참석한 가운데서도 북한이 최고 수준의 대접을 받은 셈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오후 5시 34분, 리셉션 행사에 참석하기 전 각국 정상을 맞이하는 리시빙 행사에서 북한 김영남과 악수했다.

    인공기 배지를 달은 김영남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미소로 맞이했다. 또 김영남은 문재인 대통령과 사진을 촬영하지 않고 지나가려 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안내해 옆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여기까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는가 했지만, 곧 사건이 발생했다. 리시빙 행사에 아베 일본 총리와 펜스 미국 부통령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10분정도 기다리기로 했으나 양 정상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오후 6시 11분에 리셉션 행사가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사람이 빠진 상황에서 환영사를 했다.

    그 사이 아베 총리와 펜스 부통령은 행사장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행사장 옆 별도의 방에서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도 행사장으로 입장하지 않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바흐 IOC위원장의 건배사 직후 두 사람을 찾아가 사진을 촬영했다.

    한·미·일 3국이 우여곡절 끝 나란히 촬영을 한 후 나란히 리셉션장에 입장했지만 돌발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행사장에 착석했지만 펜스 부통령은 자리에 앉지 않고 다른 정상들과 일일히 악수한 뒤 5분만에 그대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펜스 부통령은 여러 테이블을 오가며 많은 정상과 악수를 나누는 와중에도 김영남과는 악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본행사인 리셉션 환영사에서 북한을 염두에 둔 발언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지만 세계 각국은 서로 간에 풀어야 할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며 "한국도 몇몇 나라들과 사이에 해결해야 할 어려운 숙제가 있다"고 했다.

    이어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언급하면서 "선수들은 이미 생일 촛불을 밝혀주며 친구가 됐다"며 "스틱을 마주하며 파이팅을 외치는 선수들의 가슴에 휴전선은 없다"고 언급했다.


  • ▲ 평창올림픽 리셉션 만찬 좌석 배치도 ⓒ 청와대 제공
    ▲ 평창올림픽 리셉션 만찬 좌석 배치도 ⓒ 청와대 제공
    ◆ 펜스 부통령의 돌발 퇴장, 왜 일어났나

    이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리셉션 자리를 비운 것과 관련 뒤늦게 입장을 냈다. 윤 수석은 "펜스 부통령은 미국 선수단과 6시30분 저녁 약속이 되어 있었고 저희에게 사전 고지가 된 상태였다"며 "그래서 테이블 좌석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어 "(펜스 부통령은) 포토 세션에 참석한뒤 바로 빠질 예정이었으나 문 대통령께서 '친구들은 보고 가시라'라고 해 리셉션장에 잠시 들른 것"이라며 "김영남과의 악수 여부는 제가 보지 못해 확인되면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날 오전까지만해도 헤드테이블에 미국 펜스 부통령 내외가 헤드테이블에 앉을 것이라고 공지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헤드테이블에 대통령 김정숙 여사가 앉고 왼쪽에 부통령 내외분이 앉는다"고 까지 했다.

    "테이블 좌석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윤영찬 수석의 설명과 달리, 리셉션 현장 테이블에는 'United States Of America', 'Second lady of 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써진 명찰이 올려져 있었다. 미국 부통령 내외의 자리가 준비돼 있었지만, 펜스 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해석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

    윤영찬 수석은 "갑자기 결정된 게 아니고, 펜스 대통령의 일정 협의 과정서부터 불참 의사를 내비쳤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펜스 부통령의 돌발 퇴장은 예고된 측면이 있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전 우리 측에 "북측 인사의 동선과 겹치지 않게 해달라"는 수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동선이 겹치는 것도 모자라 함께 식사까지 하도록 행사를 진행하면서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미국의 명실상부한 2인자 지위에 있는 인물이다.

    아베 총리와 함께 등장한 부분도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아베 총리는 펜스 부통령은 방한 직전인 7일 도쿄에서 만나 대북압박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다. 이 자리에서 펜스 부통령은 "북한의 첫 핵실험은 2006년 올림픽 뒤 불과 8개월 후 였다"며 "북한이 도발행위를 올림픽 기(旗) 밑에 숨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때문에 펜스 부통령이 북한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되는 상황에 대한 불쾌감을 내비치면서도 압박에 공조키로한 일본과 함께 행동해 분명한 메시지를 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9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9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 청와대 제공

    ◆ 직전 이뤄진 한·일 정상회담도 평행선

    리셉션 직전 이뤄진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평행선을 달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아베총리와 이날 오후 3시 15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하면서 위안부·북한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지만 서로간 커다란 입장차만 재확인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지난해 양 정상이 합의했던 셔틀외교의 복원을 본격화하기 하기로 했고,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이른 시일 내 일본에서 개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두 나라 정상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발표 2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 비전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청사진을 본격적으로 마련해나간다는 데 합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두 대목을 제외하고는 양국은 모두 평행선을 달렸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합의는 국가 대 국가의 합의로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야 한다는 게 국제원칙"이라며 "일본은 그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약속을 지켜온 만큼 한국 정부도 약속을 실현하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위안부 합의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결정은 지난 정부의 합의 이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국민들이 합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그분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아물 때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 정부 간의 주고 받기식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완연한 입장차가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대화가 비핵화를 흐린다거나 국제공조를 흩뜨리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베 총리는 "북한은 평창올림픽 기간 남북대화를 하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미소외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결국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일본, 중국의 목소리가 합쳐지지 못하고 흩어지면서, 향후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가 가시밭길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전망이 뒤따른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국가로 중국을 지목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평창 올림픽에 참석하기를 희망했지만, 현재로서는 시 주석이 평창 올림픽에 참석할 가능성은 낮은 상태다.
  • ▲ 북한 김여정. ⓒ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북한 김여정. ⓒ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결국 청와대 안방 문도 연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에도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돌파구로 보고 대화를 계속 추진할 모양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같은날 밤 기자들에 공지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0일 11시 청와대 본관에서 북측 고위급 대표단을 접견하고 오찬을 한다"며 "북측 참석자는 김영남, 김여정, 최휘, 리선권이며, 우리측 참석자는 정의용 안보실장, 임종석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등"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북측 고위급 대표단을 접견하고 오찬을 할 예정"이라면서도 장소 등 회동의 형식 및 횟수를 밝히지 않았다. 특히 청와대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장소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국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됐다. 정부가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한을 위해 대북제재에 대한 면제를 요청하는 등 공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펜스 부통령이 분명한 의사를 표현하면서, 문재인 정부로서는 북미 대화의 성과를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남북대화 성과가 절실해진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에 '올인'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야당은 강도높은 비판을 내놓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태옥 대변인은 9일 "우리 정부가 북의 대북제재 무력화 전략에 말려들고 있다"며 "문 대통령과 김여정의 대화가 '북핵폐기'가 아니라 '북핵동결'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방해하는 방향으로 진행 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언급했다.

    정 대변인은 "인권탄압에 앞장서는 반인륜적인 집단과 그 가족에 대한 과공(過恭)으로 국민적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한미군사훈련 재개를 막고 대북제재와 압박에 틈새를 벌이는 수단으로 악용하고자 하는 북의 의도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