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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移管)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안보 전문가들이 국회에 모여 관련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응책을 제시하는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학계·정계 인사를 포함한 안보전문가·전직 국정원 수사요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자유민주연구원(원장 유동열)·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국정원 대공수사권 이관,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대남공작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시점에서 대한민국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공중분해하는 것은 중대한 안보위협 사안"이라며 "현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국정원 무력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지시하고 이행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직책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역사적으로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공수사는 더욱 척박해진 안보환경에서 대한민국 존립과 직결된다"며 "국내외 환경 변화에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함에도 정부가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겠다는 것은 이적행위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이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내용이다. 현 정부는 집권 직후 국정원 적폐청산·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북한 정찰총국 환호할 '안보적폐'
문재인 정부의 공약대로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1월 29일 국정원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변경하고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체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대공수사권(對共搜査權)을 정의하면 '북한을 포함해 불법적인 공산주의 활동에 대항하기 위한 수사 권한'으로 풀이할 수 있다. 6·25 전쟁 직후 현재까지 북한 간첩 침투는 2천여 건 정도로 알려졌다. 북한의 대남공작은 현 김정은 체제에서 더욱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바탕에는, 이러한 북한의 대남공작을 막아내고 굳건한 안보환경을 구축한 국정원 대공수사관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는 50년 이상의 수사 전문성과 폭넓은 첩보망이 국내 수사에 주력해 왔던 경찰로 이관된다면, 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 국정원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북한 김정은 정권의 숙원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국정원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의 문제점으로 다음 13가지를 꼽았다.
△경찰의 간첩 검거 등 대공수사역량 미약
△북한 간첩의 우회침투 주력, 경찰 해외방첩망 전무
△경찰의 대북정보 수집 및 분석역량 미약
△대공 과학정보(간첩통신 감청·해독·사이버 교신 등) 수집·분석력 미약
△유관국 정보기관의 대북간첩정보 교환 곤란
△경찰 직제 및 속성상 대공수사 '보안유지'취약
△합법-비합법 공작을 통한 대공정보 수집·합법 활동하는 경찰 적용 불가
△대공정보와 대공수사의 융합 필요
△국정원 대공수사인력의 경찰직 전환 불가(현 경찰공무원법상)
△대공수사기관(국정원·경찰·기무사)간 견제와 균형 상실·독주
△정치권력의 압력에 취약
△경찰과 군 갈등 심화 가능성
△외국과 비국가행위자 간첩 수사 난항유 원장은 "적폐청산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청와대는 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보기관장과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는지 직시해야 한다"며 "이는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에서 일탈해서 대통령과 참모들의 입맛에 맞는 활동을 전개한 '정보의 정치화' 탓이며, 결코 '대공수사' 탓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안보기관 최우선 임무는 남북분단 상황에서 현존하는 북한의 대남적화위협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지켜내는 일"이라며 "대공수사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국정원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북한 대남간첩공작 총본산인 정찰총국이 환호할 안보적폐"라고 했다.
특히 유 원장은 13가지 문제점 모두가 중대하지만, '경찰이 정치권력 압력에 취약하다는 점'을 가장 우려할 만한 문제로 지적했다. 경찰이 국내 안보수사를 하게 되면 여·야권에서 온갖 정치적 압력이 들어오는데 행안부 소속이며 차관급에 불과한 경찰 지휘부가 이를 견뎌내고 수사관을 보호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유 원장은 "경찰은 상급기관인 청와대·국무총리실·행안부 등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에 자유로울지 의문이지만, 국정원은 대통령 소속이기 때문에 청와대를 제외한 정치권의 압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했다.
예컨대 2006년 적발된 일심회 간첩 사건 당시,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수사과정에서 운동권 경력이 있는 청와대 모 비서관이 일심회 총책 장민호(마이클 장)와 수 차례 전화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후 국정원이 해당 비서관을 소환해 조사하려 하자 청와대의 압력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김승규 국정원장이 정치권의 압력을 배제하고 대공수사국에 힘을 실어 줬다. 비록 제한적이었지만 다행히 국정원은 일심회 간첩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결국 김승규 원장이 사퇴 압력을 받고 자리를 물러났다. 이런 상황이 경찰에서 일어난다면 국가안보라는 뚝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유 원장의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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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무력화, 대한민국 안보 무너진다" 우려하는 전문가들
이날 정책토론회는 이한중 전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정훈 동아일보 기자 등 3인이 토론자로 나섰다. 이들은 국정원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절벽에 떠밀린 대한민국 안보 체계에 우려를 토해냈다.
국정원 대공수사국에서 30년을 근무한 베테랑인 이한중 전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은 "현재 국정원이 갖고 있는 해외·대북·과학 분야에 걸친 대공 인프라는 단기간 구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막대한 예산도 소요돼 중대한 안보 공백 발생이 불가피하다"며 "필연적으로 정보혼선·수사력 약화 등 예상치 못한 혼란과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 국장의 지적대로, 북한은 1980년대 이후 제3국을 경유한 우회 침투 방식으로 대남공작을 전개하고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우회 침투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 통일부 통계(2017)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탈북민 숫자가 3만1,093명에 달할 정도로, 제3국을 경유한 탈북민이 한국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방법을 역이용, 탈북민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을 침투시키는 공작선을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경찰은 국정원 수준의 독자적인 해외 대공수사망과 방첩망이 없다. 북한의 우회 침투를 견제할 해외 대공수사 역량이 확보되지 않은 경찰이 대공수사를 전담한다면 안보 공백이 생기는 것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공수사는 장기간의 첩보수집·내사·외국정보기관과의 협력 등 일반범죄 수사와는 차원이 다른 전문성과 업무역량이 요구되는데,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할 경우 실질적 융합이 매우 어려워 안보공백을 초래할 것"이라며 "시간이 흐르면서 대공수사 전문인력도 점진적으로 도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정훈 동아일보 기자도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 안보와 안전 체제를 뒤흔드는 시도를 하고 있고, 이 시도는 조국 수석이 이끄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청 수사권도 경찰에 넘긴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경찰은 무소불위의 기관이 되니 민정수석실은 경찰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누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는 "정부는 정보기관의 국내와 해외활동, 수사와 공작을 나누겠다고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국가 안보를 강화한다는 것인지 의문이며, 오히려 장차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꼭 나눠야 한다면 '국가정보시스템 전면 개혁' 검토해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국정원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은 국가안보 무력화를 초래할 것이며, 경찰의 대공수사력을 강화한다 해도 북한 김씨 정권이 건재한 이상 대공수사권 이관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유동열 원장은 "다만 현 정부가 국정원 개혁을 위해 대공수사권을 반드시 타 기관에 이관해야겠다고 한다면, 미래지향적인 국가정보기구를 새롭게 재편하는 방법도 있다"고 대안책을 제시했다.
첫째로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법적 근거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질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정보기본법'을 제정한다.
해당 법에는 국가정보의 용어 정의·기능·임무·조직편제부터 안보수사활동까지 전반적 사항을 규정하고, 국가정보위원회(위원장 부총리급)을 설치해 산하에 장관급을 수장으로 하는 '국가안보수사청'과 '국가안보정보원'을 두는 것이다.
둘째로 대통령은 국가정보기관장에 대한 임명권과 감독권만 행사하고, 제반 정보권의 승인이나 통제 활동은 국가정보위원회에서 행사한다. 두 산하 기관장에게는 3년 이상의 임기제를 도입, 정치적 중립과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한다.
셋째로 국가안보수사청은 대공수사·방첩·대태러·사이버테러·산업보안·국제범죄 등을 수행(미국 FBI형)하고, 국가안보정보원은 해외정보·북한정보·안보관련 과학정보 활동을 수행(미국 CIA형)하는 방식으로 이원화하자는 것이 유 원장의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