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C씨 "가해자 측 반박 주장 읽고, 조목조목 대응할 것""가해자, 재판 중에도 본질과 상관없는 '짜깁기 문자' 제출""언론에 피해 사실 제보했으나 '기사화' 안돼 직접 글 올려"
  • 최근 "나도 성폭력 피해자"라고 밝히는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동성(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한 피해자가 공개 호소문을 올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독립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A씨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015년 봄, 한 여성 감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실로 수년간 남모를 괴로움에 시달려왔다"는 속사정을 공개했다. A씨의 남자친구 C씨는 유명 커뮤니티 게시판에 실명으로 동일한 취지의 호소문을 올린 뒤 "여자친구의 말에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곳에 글을 쓴다"며 "판결 이후에도 뻔뻔하게 활보하고 있는 가해자를 보는 게 너무나 괴롭다"고 토로했다.

    여자친구와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는 C씨의 가슴 절절한 호소문은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논란이 커지면서 비난의 화살이 주변으로 향할 조짐을 보이자, 잠자코 있던 영화단체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B씨에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이란 큰 상을 안겼던 '여성영화인모임'은 지난 5일 공식 SNS를 통해 B씨에 대한 수상을 취소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같은날 한국영화감독조합은 B씨를 영구 제명하겠다는 입장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와 관련, 피해자의 남자친구 C씨는 6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전화번호를 공개한 뒤로 동성간 성폭력 피해를 입은 분들로부터 격려 문자가 쇄도하는 등 응원을 많이 받고 있다"면서 "이런 문자들을 공유하면서 일종의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좀 더 생겼다"고 말했다.

    C씨는 '사실과 다르게 알려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는 B씨의 주장에 대해선 크게 신경쓰고 있지 않다면서 "차후 B씨의 공식 입장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서 하나하나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C씨는 A씨와 자신이 합의된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는 B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 무근"이라고 밝힌 뒤 "B씨가 언급한 영화 속 '성적 코드' 얘기도 사실과 다르고 동성애적 영화로 읽힐 그런 영화가 아니"라면서 B씨가 재판에서 언급했던 사실 무근의 얘기들을 계속 되풀이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다음은 피해자의 남자친구 C씨와의 일문일답 전문.

    - 전화번호를 공개하신 뒤로 좀 곤란한 상황에 놓이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많이 오고 있는데요. 괜찮습니다.

    - 가해자로 알려진 B감독이 방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실과 다르게 알려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며 "오히려 자신이 재판 중 성소수자로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공개됐는데요. 혹시 읽어보셨는지요?

    ▲방금 전 어떤 기자 분께서 링크를 보내주셔서 마침 읽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분께서 공식 입장을 밝히시면 그 내용을 읽어보고 대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그 분이 주장하는 내용 중에서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면 하나하나 반박을 할 계획입니다.

    -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도 동일한 판결이 나왔는데요. 도대체 그 분께선 어떤 점들이 억울하고 사실과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혹시 짐작 가는 부분이라도 있으신가요?

    ▲그 부분에 대해선 저도 전혀 짐작을 못하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1심, 2심 재판에서도 사건 본질과는 상관없는 내용으로 문자 짜깁기를 해서 낸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어요. 이번에도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내용들을 추려서 공개하겠죠. 그 부분에 대해선 크게 신경쓰고 있지 않아요. 입장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서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 성폭력 피해 사실을 올리는 일도 쉽지 않지만, '실명'을 올리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는데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번에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실명'으로 심경글을 공개하신 게 여자친구 분 입장에서 볼 때엔 그 분을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측면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 부분도 없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사실 여자친구가 글을 올리기 전에 몇몇 언론사에 제보를 한 상황이었거든요. 하지만 기사화가 안됐죠. 이렇게 별다른 '스피커'가 없는 상황이라, 제 여친은 답답한 마음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겁니다. 아시다시피 몇몇 친구들만 보는 페이스북이라 지인 일부만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커뮤니티 게시판의 특징은 사실 확인이 안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서 신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요. 그래서 저는 혹시라도 제 실명을 밝히고 연락처를 오픈하면, 이 글을 접한 분들이 제 말을 '진짜'로 믿어주시지는 않을까? 이런 기대감에 실명을 밝힌 겁니다. 또 언론사에 제보를 하려해도 특별한 끈이 없으니, 제가 역으로 연락처를 올려 놓으면 언론사에서 연락을 주시지는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죠.

    - 해당 글을 여자친구분께서 잠들었을 때 올렸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혹시 올리신 이후 그 문제로 다투거나 하진 않으셨나요?

    ▲그런 건 전혀 없었고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올린 글인데, 의외로 여러분께서 문자로 응원을 많이 해주고 계세요. 자신도 동성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는데 마땅한 구제 방법을 몰라서 초반에 속앓이를 많이 했었다는 분들도 계셨고요. 여기에서 동성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건, '여성 대 여성', '남성 대 남성' 두 가지 다 해당됩니다. 그런 비슷한 피해자 분들이 자신의 사례를 오픈하면서 응원의 문자들을 주고 계십니다. 이런 격려 문자들을 받고 공유하면서 일종의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좀 더 생겼어요.

    - 걱정스러운 점은 현재 피해자분의 상황인데요. 지금은 잘 극복을 하신 상태인 거죠?

    ▲물론 그런데요. 지금은 좀 급작스러운 상황이라 경황이 좀 없는 상태이긴 합니다. 여러군데에서 연락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 가해자 측의 주장을 살펴보면, 피해자 분이 연출한 영화가 퀴어(동성애) 성향의 영화고, 피해자 분의 성향도 그러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어떤 가요?

    ▲전혀 사실 무근입니다. 애당초 그런 퀴어 성향의 영화도 아니에요. 영화 중간에 한 남학생을 좋아하는 남학생이 등장하는 신이 있긴 하지만, 이 캐릭터는 저희들이 알고 있는 어떤 분을 모델로 삼은 것이고요. 재미를 위해 감초처럼 집어 넣은 신이에요. 영화에 흐르는 주제도 성적 코드로 읽힐 만한 부분이 전혀 없어요. 동성애적 영화로 읽힐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이성애자, 남녀 주인공들 얘기에요.

    - 제가 오해할 뻔 했습니다. 잘 모르는 영화라서…. 그나저나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혹은 완료된 이후에도 가해자가 버젓이 대외 활동을 하고, 영화계에선 상까지 주는 일도 있었는데요. 피해자 분과 이런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다는 걸 업계 주변에서 정말 몰랐을까요?

    ▲그 부분은 제가 함부로 말씀드리기 곤란한 측면이 있습니다. 일단 가해자 본인은 쉬쉬했을 것이고요. 일부 피해 사실을 아시는 분이 있다하더라도 피해자에게 피해를 주고 도리어 상처가 될까봐 쉽게 입밖에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 여러 사정들과 정황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폭로글을 올리고 나서 후속 대응이 발빠르게 이뤄지는 상황들을 보면 영화계가 어느 정도 '자정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그 부분에 대해선 저희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 이번 사건과 관련, 언급된 인물 중에서 모 아카데미 교수님이 등장을 하는데요. 재판 중 이분의 행보가 좀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렇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저희가 경찰에 신고를 하자 관련 내용이 학교 측에 전달된 것 같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제 여자친구를 집무실로 불러 고소 취하와 합의를 요구했습니다. 사건 무마를 위해 여자친구를 회유하고 압박하는 얘기들을 했는데요. 그와중에 '무고죄를 조심하라'는 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학내에서 권위가 있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굉장히 무서울 수밖에 없죠.

    - 재판에서도 그 교수님께서 일부 불리한 진술을 하셨다고요?

    ▲증인으로 나오셨는데요. 가해자의 주장처럼 피해자의 작품에 성적인 뉘앙스가 있고, 평소 행동도 당돌한 편이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 '그런 퀴어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이므로, 그날 있었던 일도 합의된 관계였을 것이다'라는 가해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말이었겠군요.

    ▲그렇습니다.

    - 이번 일이 불거지면서 여자친구분께서 작품 활동을 하시는데 상당한 지장이 초래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이미 일을 하는데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다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현주 감독 "합의된 성관계였다" 억울함 토로

    A씨의 남자친구와 인터뷰를 마치고 온라인 검색을 해보니, 이번엔 B씨가 '실명'으로 작성한 공식 입장문이 공개돼 있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힌 일종의 '커밍아웃'이자, 사법부의 판단을 여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공개 항명(抗命)이었다.

    이현주 감독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2015년 4월 초순경 술자리 직후 다른 일행들의 부탁으로 만취한 피해자와 함께 모텔에 머물다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갖게 됐다"면서 "당시 피해자가 저와의 성관계를 원한다고 여길만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성관계에 대한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감독은 "헤어질 때에도 조만간 또 만나자고 하며 헤어졌기 때문에, 저는 피해자가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서 혹시나 불쾌해 하거나 고통스러워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며 "그 날 저녁 피해자의 남자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서로 격앙된 상태에서 통화를 했고,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약 한 달 뒤에 갑자기 저를 고소한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됐다"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 감독은 "지금까지 제 양심에 거리낌없이 떳떳하게 행동하고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지금의 상황은 매우 참담하다"면서 "제 의도나 당시 가졌던 생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큰 처벌을 받고 살아가는 것도 힘든 상황에, 사실과 다른 얘기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4심 5심 계속해서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보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지금은 피해자 입장에서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현주 감독이 배포한 공식 입장문 전문.

    1. 저는 여성 영화감독 이현주입니다.

    우선 제 영화를 함께 만들어 주신 분들, 저의 작품을 아껴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이 사건으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피해자나 그의 남자친구가 인터뷰를 하며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의 입장을 밝히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린 이유는, 저 역시도 이 사건으로 인해 수사와 재판을 거치는 동안 상상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살아왔고 그러한 저의 속사정을 말로 꺼내기가 너무나도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2.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지금까지 동성애자라는 저의 성 정체성에 대해 피해자 등 몇몇 지인들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습니다. 공인들 중 용기있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성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저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동성애자임을 밝혔을 때 부모님께서 받으실 충격, 영화시장에서 저를 바라볼 곱지않은 시선,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들이 처한 상황 등을 생각하면 당당히 커밍아웃할 용기가 없었고, 다만 저의 세계관을 조심스럽게 영화에 담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제가 원하지 않는 시점에 제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저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게 되었고, 가족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자님들로부터 이 사건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바로 대응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공개적으로 저의 입장을 밝히는 것보다 부모님에서 받으셨을 충격과 아픔을 먼저 위로해 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이 일과 관계된 분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직접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3.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피해자를 만나게 되어 함께 영화를 고민하며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이후 매우 친밀한 관계로 지냈습니다. 피해자는 제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일 정도로 저와 친분이 깊었고, 많은 감정들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5. 4. 초순경 남성 3명 그리고 피해자와 함께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저 역시 취한 상태였지만 먼 지역에서 온 피해자를 돌봐주어야할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영화 '연애담'의 촬영을 마치고 편집을 하던 단계였으므로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저는 학교로 돌아가 잠시 쉬었다가 일을 시작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행들은 피해자를 가까운 모텔에 데리고 가 침대에 눕혀주었고, 저는 일행들의 부탁을 받아 피해자와 함께 있게 된 것입니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던 피해자는 잠에서 깨더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한참을 울었고, 그런 피해자를 위로하던 중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로서는 피해자가 저와의 성관계를 원한다고 여길만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성관계에 대한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저와 피해자는 다시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어난 피해자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저는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모텔에 오게 되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피해자의 기억을 환기시켜 줬습니다. 이후 저는 피해자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시나리오 이야기를 하였고, 전날 함께 술마셨던 사람들과 만든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누었으며, 피해자가 저에게 물건을 빌려주는 등 그 이후에도 특별히 서로간에 불편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에도 조만간 또 만나자고 하며 헤어졌기 때문에, 저는 피해자가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서 혹시나 불쾌해 하거나 고통스러워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 날 저녁 피해자의 남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저는 두 사람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던 사실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고 서로 격앙된 상태에서 통화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제가 피해자와 통화를 하였을 때에도 서로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대화를 하였고, 그 후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약 한 달 뒤에 갑자기 저를 고소한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고소가 언급되던 시점에 피해자는 남자친구와의 관계 때문에라도 이 사건에 있어서 자신에게 어떠한 잘못도 없음을 저에게 확인받고 싶어하였고, 저의 일방적인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기만 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눈감아 주겠다고 하였지만, 저는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피해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4. 저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모든 사실을 숨김없이 이야기했고, 이 일을 무마하거나 축소시키려고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 제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면 애초에 피해자가 잠에서 깨어나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말했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며 무마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또한 고소 여부가 문제되던 시점에서도 피해자의 요구대로 사과를 하고 없었던 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피해자에게 처음부터 사실대로 얘기를 했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성 정체성에 대한 편견을 가진 분들 앞에서 힘들지만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또한 저는 한국영화아카데미 교수님에게 피해자와의 합의를 부탁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합의를 하게 되면 오히려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무죄를 주장하는 저로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재판이 한참 진행되던 중에 교수님을 통해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사과다, 그 날의 시시비비를 떠나 이후 감정적인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인정하고 사건에 대해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전해듣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이는 그 일에 대해서 제가 범행을 인정한다는 뜻의 사과는 아니었습니다.

    5.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감당해야 했지만 제 주장은 전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판사님은 제 주장에 대해서 일견 타당해 보인다고 하시면서도, '혹시라도 무죄를 선고하게 되면 피해자를 동성애자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오히려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동성애자는 무조건 벗은 여자를 보면 좋은 것이 아니냐', '성관계를 할 때 어떤 포지션이냐, 어떤 성행위를 하느냐, 어떻게 만족하느냐', '당신이 남자가 아니란 걸 증명하라'라는 질문을 판사님으로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몰라 저의 성 정체성을 이해시켜드리기 위한 여러 자료들을 찾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 대해서 정말 그 어떤 편견도 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판단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지만 결국 유죄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저는 항소심에서만큼은 다시 한 번 편견을 걷고 제대로 된 판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변호인과 상의하여 40페이지가 넘는 항소이유서를 제출했습니다. 수사단계부터 대법원의 판결에 이르기까지 제발 성 정체성에 대한 편견 없이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 판단해 달라고 수없이 부탁드렸습니다. 당시 일에 대해서 피해자가 동의한 것으로 볼 만한 증거들이 다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판결문 그 어디에도 저희가 주장했던 점에 대한 판단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재판기간이 길어졌던 이유는 1심 재판부가 인사이동으로 한 차례 변경되었고, 또한 이 사건에 대해 숙고가 필요하다는 판사님의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재판 기간동안 피해자는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지만, 저는 피고인으로서 매번 출석을 해야 합니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 저는 여성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동성애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피고인석에 앉아있어야 했고, 그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오히려 저는 재판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바랬고, 무죄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재판이 지연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습니다.

    6. 재판부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저는 너무나도 억울합니다.

    저는 지난 3년간, 당시 상황에 대해 거짓 없이 솔직하게 진술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제 주장을 뒷받침 하는 증거를 제시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제대로 된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제 말이 맞는 것 같아 보인다면, 쉽게 유죄가 선고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재판을 받는 기간 동안에도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저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과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유무죄가 가려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최대한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설명하려는 저에게 판사님은 '법원은 진실을 찾는 곳이 아니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처럼 결국 저는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서 저는 더 이상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는 법원의 판단을 받을 방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마음으로는 4심 5심 계속해서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보고 싶었지만,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언젠가는 저의 억울함을 이해하는 재판부의 판단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그런 일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저에게 내려진 판결과 그에 따른 처벌이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고 열심히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고소를 당하고 재판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심리상담치료를 받고 있고, 왜 이러한 일이 나에게 벌어졌는지,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하루하루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여성 영화감독으로서 작품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성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일은 더욱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제 양심에 거리낌없이 떳떳하게 행동하고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참담합니다. 제 의도나 당시 가졌던 생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큰 처벌을 받고 살아가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사실과 다른 얘기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성이며, 동성애자이고 그에 대한 영화를 찍었던 입장에서 저 스스로가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큰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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