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작업 위한 부정한 청탁의 존재’, 항소심 “인정할 근거 없다”
  • ▲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피고인 이재용은 대통령의 입장이 이런 승계 작업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는 것인지 여부에 따라 승계 작업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 뇌물공여 등 사건 1심 판시사항 중 일부.

    5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가 선고한 이재용 부회장 사건 항소심 판결은 결과는 물론 법리 적용과 판단에 있어 1심과 극명하게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법원이 유죄 판단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한 ‘안종범 수첩’의 증거 가치를 전면 부정했다. 재판부는 1심 법원과 달리, “안종범 수첩의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이 사건 핵심 쟁점인, ‘박근혜 前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 부정한 청탁의 존재’를 입증하는 물증으로서의 증명력을 부정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 대화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수첩 내용의 진실 여부가 중요하다. (안종범 수첩을)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 대화 내용을 인정할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 피고인 측 항소 이유 일부 받아들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 ‘부정한 청탁이 존재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는 1심 법원의 판단도 파기했다.

    두 사람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객관적·구체적으로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 부정한 청탁의 존재는, 이 사건 피고인들의  운명을 가를 핵심 쟁점이었다. ‘승계 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는, 이 사건 주요 혐의인 뇌물죄의 근간이자, 공소사실의 기초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범정부 차원의 지원과 협조를 청탁하고, 박 전 대통령은 그 대가로, 자신과 경제적 공동체 관계에 있는 최순실 모녀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으며, 이 부회장이 이를 수락했다는 것이 이 사건 공소사실의 얼개다.

    박영수 특검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 부정한 청탁과 대가에 대한 합의가 3차례에 걸친 독대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봤다. 특검은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변경, 3차례 독대 이전에 이른바 ‘0차 독대’가 있었다며, 두 사람 사이의 ‘독대’ 사실을 입증하는데 각별한 공을 들였다.

    이 부분에서 항소심과 1심은 전혀 다른 시각을 나타냈다.

    1심은 명시적-개별적 청탁은 없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포괄적’ 청탁은 있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의 이 부분 판시는 ‘지나치게 자의적’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독대에서 승계 작업을 위한 명시적·개별적 현안을 해결해 달라는 청탁은 없었다”고 인정한 재판부가, “박근혜 정부 임기 안에 승계 작업을 최대한 진행하기로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고 판시한 사실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개별 현안에 대한 명시적 청탁이 없었음은 1심 재판부도 인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개별 현안들이 피고인 이재용의 계열사 지배력 확보를 목적으로 추진됐고, 이런 목적 아래 추진된 개별 현안들은 특검이 전제로 한 승계 작업의 성격이 있다’고 봤다. 즉 명시적 개별적 청탁은 없지만, 포괄 현안인 ‘승계 작업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1심 재판부의 기본적 시각이다.

    ‘포괄적 현안으로서 피고인 이재용을 위한 승계 작업이 존재 하는가’를 살피는데 주목한 항소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1·2심 법정 증언과 증거를 종합 고려하더라도, ‘피고인 이재용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성을 갖는 작업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점,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 작업이 있었음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해도 좋을 만큼 확신할 수 없다는 점, 
    ▲‘승계 작업’이 존재하더라도,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으로’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점,
    ▲박 전 대통령이 ‘승계 작업의 추진’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

    항소심은 이런 이유로 명시적 묵시적 포괄적 청탁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일부 개별현안이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줬다고 해도, 이는 구조조정을 통한 사업 합리화 등 개별 현안 진행에 따른 효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