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질서에 의한 성추문 잇따라…피해 여성들, 적극 사회 고발 나서
  • ▲ 1일 부산지검 앞에서 부산지역 여성단체들이 법무부·검찰 조직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뉴시스
    ▲ 1일 부산지검 앞에서 부산지역 여성단체들이 법무부·검찰 조직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최근 성추행을 당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는 '미투(#Me_Too)' 운동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는 지난달 29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법무부 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되레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글을 올렸다.

    서 검사는 "2010년 10월 30일 장례식장에 간 법무장관을 수행한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이 허리와 엉덩이를 더듬는 강제 추행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잘 나가는 검사의 발목을 잡는 꽃뱀이라는 낙인을 찍는 경우도 많았다", "더는 침묵하지 않고자 힘겹게 글을 쓴다"는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글 말미에는 나도 당했다는 뜻으로 '#MeToo' 해시태그를 달았다. 서 검사는 30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검찰 내 성폭행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묻혔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31일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비위자가 확인될 경우 응분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NYT)는 거물 영화 감독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에 대해 보도했다. 그러자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 NYT 보도에 따르면 와인스틴은 모델, 배우, 영화사 직원 등을 가리지 않고 성희롱과 성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와인스틴은 본인 소유인 '와인스틴 컴퍼니'에 입사한 인턴을 눈여겨보다 호텔방으로 불렀고, "(나와) 성관계를 가지면 경력에 도움을 주겠다"고도 했다.

    영화배우 아시아 아르젠토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1살 때 와인스틴에게 강제로 구강성교를 당해 악몽에 시달렸다"며 "와인스틴이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 여배우들의 커리어를 망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와인스틴에게 성폭행·성추행을 당한 82명의 여성들의 명단과 내용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그 수는 점점 늘어 100명을 넘어섰다. 이후 많은 여성들이 "나 또한 (비슷한 일을) 당했다. 내 사연도 소개한다"며 트위터 상에서 '#Me_Too' 캠페인이 시작됐다.

    갑(甲)질 성추행 사건은 국내에서도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도제식 교육이 만연한 학계와 문화계에서도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지금까지 감춰져 있던 조직 내 성추행 사건이 불거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2016년은 문화예술계 성추문 폭로 사건이 끊이질 않던 해였다.

    2016년 10월, <씨네 21> 영화평론가였던 김수 씨는 한 트위터리안의 고발로 인해 어두운 과거가 드러났다. 해당 트위터리안은 "내가 미성년자일 때 그 사람(김씨)은 저에게 작업(글과 영화) 얘기를 하고 싶다며 접근했고, 작업물을 함께 보자며 집으로 유인해 (성)관계를 가졌다", "그 뒤로 관계 시 강간당하는 것처럼 연기해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폭로했다.

    함영준 전 일민미술관 책임큐레이터는 스스로 언론에 페미니스트임을 자명하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 역시 한 트위터 이용자의 폭로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해당 네티즌은 "술자리에서 만취해 눈을 떠보니 불꺼진 누군가의 집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이 팬티 속으로 들어왔는데 너무 무서웠다"며 함씨로부터 성추행 당한 사실을 털어놨다. 함 전 큐레이터는 사과문을 내고 "저의 지위와 권력(의 범위)을 엄밀히 인식하지 못하고 여성작가에게 신체접촉을 한 사실에 대해 깊이 사죄한다"는 입장을 내고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재계에서도 성추행 스캔들이 끊이질 않았다. 이른바 '회장님 망신살' 사건들이다.

    지난 2014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일하던 25세 여성 권모 씨는 중소기업 CEO들의 교육프로그램 관리를 맡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권씨는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에 늘 불안에 떨었다. 그러던 중 한 기업대표로부터 스토킹과 상습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견디지 못한 권 씨는 상사에게 "기업 대표가 블루스를 추자고 한다", "팔과 어깨에 자꾸 손을 올린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다른 기업인은 권씨의 몸을 더듬고 추근대며 '빠XX'라고 하는 등 성희롱 발언을 수시로 했다고 한다.

    권씨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인은 "전라도 지역에서는 빠XX가 학교 수업에 빠지고 놀러 가는 걸 뜻해요"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런가 하면 끈질기게 연락해 '오빠'라고 부르라던 기업대표는 "(권씨가) 술에 취해 내 다리에 앉고, 그런 행동을 보였다"며 오히려 피해자를 탓했다. 권 씨는 윗선에 이를 보고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계약 갱신이 안 돼 해고됐고,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준기(73) 전 DB그룹 회장의 경우, 3년 간 함께 일한 여비서 A씨(29)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해 고소를 당했다. A씨는 작년 2월부터 7월까지 약 6개월 간 강제 추행 당했다고 주장했다. 허리·허벅지 등 신체 접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서울 수서경찰서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이에 대해 DB그룹 측은 신체접촉은 인정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준기 회장 측은 "A씨가 김 회장의 신체 접촉 유도해 동영상 촬영한 뒤, 이를 제시하며 100억원을 요구했지만 조건을 수용하지 못해 합의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 전 회장은 작년 7월 미국으로 떠났다. 같은해 11월 경찰이 체포영장을 신청했으나, 신병 치료를 이유로 경찰의 세 차례 출석요구에 불응했다. 관할 수서경찰서는 외교부에 김준기 전 회장의 여권 무효화를 요청했고, 외교부는 여권 반납명령을 내렸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여권 발급 제한과 반납 결정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는 본안 소송과 함께 외교부 처분의 효력을 중단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냈지만 지난해 말 법원에서 기각됐다.

    최호식(64) 전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은 작년 6월, 20대 여직원을 식사 중 성추행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여비서는 "최 전 회장과 청담동 모 호텔 근처 일식집에서 식사하던 중 강제 추행을 당했고, 호텔로 들어가다 도망쳐 지나가는 여성 3명에게 도움을 청해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직행했다"고 진술했다. 최 전 회장 측은 "(여직원이) 어지럽다고 말해 호텔 방을 잡아주려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최 전 회장은 사건 직후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범현대가 기업인 정몽훈(59) 성우전자 회장은 2016년 9월 24일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음식점에서 20대 알바생에게 강제 키스를 시도하고, 허리를 손으로 감싸는 등 적절하지 않은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해당 알바생은 곧바로 일을 그만 뒀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정 회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고 4개월 뒤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검찰은 그를 약식 기소했다. 2017년 5월 16일 법원은 유죄를 인정하고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