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노동자 입장만 담은 자료를 바탕으로 기업 명단 공개하는 것은 인민재판"
  • ▲ 직장갑질119가 29일 서울시 중구 민주노총 13층에서 '최저임금 제보 유명 사업장 명단 공개'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을 주걱으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 직장갑질119가 29일 서울시 중구 민주노총 13층에서 '최저임금 제보 유명 사업장 명단 공개'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을 주걱으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다수 기업들이 가파른 인건비 상승 여파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한 시민단체가 시민의 제보와 면담을 통해 기업 10곳의 명단을 언론에 전격 공개했다. 일각에서는 시민단체가 여론의 등을 업고 기업을 쥐락펴락 하려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등의 노무사·변호사 등 241명이 모여 출범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29일 서울시 중구 민주노총 13층에서 '최저임금 제보 유명 사업장 명단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10개 기업을 최저임금을 무력화시키는 '놀부 회사'로 규정했다.

    이날 공개된 기업은 △분당차병원 △청주 에그팜(SPC 계열사) △커피빈코리아 △LH아파트-신대한관리 △신선설농탕 △삼구아이앤씨(LG디스플레이 협력업체) △에어케터링서비스(아시아나항공 기내식캐터링 업체) △민경산업(삼성중공업 협력업체) △포스코 하청업체 △한국은행 용역업체 등 10곳이다.

    직장갑질119 측은 "대기업들이 겉으로는 상생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뒤로는 임금체계를 바꾸고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만드는 시도를 자행하고 있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며 출범 100일 만에 첫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날 직장갑질119 측이 공개한 기업 명단과 관련, 아시아나항공 홍보팀 관계자는 "에어케터링서비스는 LSG쉐프코리아의 협력업체로, 아시아나항공의 협력업체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관계자는 "LSG쉐프코리아는 아시아나항공 협력업체이긴 하지만 사실관계와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김경자 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최저임금이 수백만 노동자들의 최고임금이 된 지 오래다.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넘치고 있는데, 최저임금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정·재계와 언론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며 "가장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 대기업부터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이 공개한 최저임금 무력화 시도 방식은 △한 달 이상 간격을 두고 지급하던 상여금을 매달 지급하며 최저임금에 산정하는 경우 △쉴 수 없는 휴게시간을 서류상으로 늘려 근로시간을 줄이는 경우 △식대,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를 기본급에 포함하는 경우 등이다.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은 "대기업에서 이런 꼼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경제 비용의 문제가 아니며, 정부와 노동부의 규제가 없다면 사회적으로 이런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지난 11일 고용노동부에 이들 일부 업체에 대한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을 요구했다.

    권두섭 민노총 법률원장은 "작년 포스코가 6년만에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LG디스플레이도 영업이익 2조를 넘어섰다. 재벌 대기업 영업이익률을 고려햇을 때, 이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고 하면 최저임금 꼼수는 없어져야 한다"며 "대기업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해 프랜차이즈 이외의 협력사들도 대기업 상대로 집단교섭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 ▲ 왼쪽부터 오진호 비없세 집행위원·김경자 민노총 수석부위원장·이진아 노무사·권두섭 민노총 법률원장.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 왼쪽부터 오진호 비없세 집행위원·김경자 민노총 수석부위원장·이진아 노무사·권두섭 민노총 법률원장.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대기업(원청)이 하청업체에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또한 직장갑질119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회사들에 사실관계 확인을 하지 않고 제보자 증언과 자료만으로 이날 회견 자료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날 직장갑질119로부터 '놀부 회사'로 지목된 분당차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이런 기자회견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상여금 700%는 당초 통상임금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제보자 말만 듣고 논의 자체가 안되는 걸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직장갑질119 측 자료에 따르면, '상여금 중 일부(기본급의 700%)를 기본급에 산입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임', '상여금의 기본급화를 무효로 봤을 때, 최저임금 위반인 것으로 보임' 등 제보자 입장만 담은 추측성 문구가 적혀 있다.

    차병원 관계자는 "올해부터 직원 급여가 8%인상돼 상여금이 기본급으로 전환되지 않더라도, 최저임금 기준을 넘어선다"며, "예전 임금 인상률이 3%수준이었던 점에 비춰 보면, 올해 인상률은 2배를 넘어선다"고 전했다.

    박동운 단국대 교수는 "이탈리아에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말이 있다. 이들은 기업인이 이익을 못내는 것을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생각한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돈 잘 벌어서 세금 잘 내고 일자리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하청업체 도와야 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운동권 논리"라고 못박았다.

    박 교수는 "시민단체가 한쪽 입장만 담은 자료만으로 파렴치하다며 기업 명단을 사회에 공개하는 것은 인민재판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도 "반대(기업) 입장이나 명백한 팩트확인이 선행되지 않은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최저임금 문제는 법과 현실의 괴리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끌어올리고 법을 지키라고 강제하는 측면이 있어서 현실적인지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 역시 직장갑질119가 지적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서 "원청·하청 간 고용관계 문제이기 때문에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하청업체 임금 문제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몰아가면 기업의 부담은 무한대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 전문가는 기자의 질문에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업자는 법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규정을 바꿔놓으면 맞춰 간다. 하지만 올해 인건비가 폭등한 상황에서 사업자들이 살아보겠다고 편법을 쓰는데, 이것도 부족하다면서 (최저임금) 1만원까지 가자고 한다. 노사가 분열되고 나아가 사회가 분열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다 감옥 보내고 사업 다 접어야 한다. 사회가 보이지 않는 문화대혁명 중이다. 이래서 법이 무섭다.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못사는 근로자와 영세사업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풀뿌리부터 불신으로 무장하게 만들면서 사회는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마치 시민단체판 블랙리스트를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