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서 김부겸 차출하고, 바른정당서 표 잠식하면 정말 문닫는다?
  •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지난 8일 재경대구·경북신년교례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지난 8일 재경대구·경북신년교례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외친 "대구시장 내주면 한국당은 문닫아야 한다"는 발언이 강렬한 임팩트만큼이나 정치권에 연쇄적인 후폭풍을 몰고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한국당 문닫자"며 청와대에 모여 모의하는가 하면, 중도통합정당도 "한국당 문 닫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서는 등 6·13 지방선거의 '프레임'이 '한국당 문 닫느냐, 계속 여느냐'로 전환될 조짐마저 엿보인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22일 여의도 당사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서울시장은 내줘도 회복할 기회가 있지만, 대구시장 내주면 한국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며 "대구시장은 자유한국당으로서는 내줄 수 없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민주화를 선도해온 70년 정당이 '문을 닫는다'라는 표현이 강렬했는지, 이후 한 주 내내 정치권에서는 이와 관련된 말들이 연쇄적으로 줄을 잇고 있다.

    이튿날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17명의 여당 의원들은 청와대로 불려들어가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회동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는 "한국당 문을 닫아버리자"며 대구시장 선거와 관련한 모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이 자리에서 홍준표 대표의 신년기자회견 발언을 언급하며 "대구시장 후보를 잘 내서 한국당 문을 닫아버리자"고 말했다. 또 "차출을 해서라도 대구에서 확실히 이겨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차출론에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구시장 차출론의 대상인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에게는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내각의 일원인 김부겸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출마를 강권할 경우, 차출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부겸 장관은 지난 2일 행안부 출입기자단 신년간담회에서 "(대구시장) 불출마라고 이야기했다"며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서 그동안 의도적으로 (대구에) 가지 않았다"고 강조했었다.

    그런데 '대구시장 내주면 한국당 문을 닫는다'라는 임팩트 있는 발언이 나오자,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여당의 입장에서는 '제1야당의 문을 닫으려면 대구시장을 가져오면 된다'라는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 홍준표 대표의 발언이 김부겸 장관에게 가서 꽂힌 셈이다.

    '한국당 문닫는 문제'에 관심이 많은 또다른 한 사람,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도 반색을 하며 나서고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25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함께 대구를 찾은 자리에서 "홍준표 대표가 대구시장을 내주면 한국당 문을 닫겠다고 했다"며 "한국당 문을 닫게 하기 위해서 대구시장 선거에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천명했다.

    유승민 대표 발언의 진의와 관련해서는 미묘한 해석이 오간다. 대구를 지역구로 하는 한국당 의원은 "유승민 대표는 우리 당이 궤멸돼야 (정치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 ▲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지난 8일 열린 재경대구·경북신년교례회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지난 8일 열린 재경대구·경북신년교례회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민주당의 '차출론' 대상인 김부겸 장관은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40.3%를 득표했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후보였고, 구 통진당과 정의당 후보가 따로 출마한데다 보수성향 후보는 새누리당 권영진 대구시장 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파괴력이었다.

    만일 '차출' 압박을 배겨내지 못하고 다가올 6·13 지방선거에 다시 출사표를 던진다고 하면 "예산폭탄" "지역개발" 공약을 던지기에 유리한 집권여당 후보인데다가 그 사이에 선수(選數)도 늘고 장관 타이틀도 달았기 때문에 득표력은 4년 전보다 올라간다고 봐야 한다.

    반면 한국당에는 악재가 산적해 있다.

    중도통합정당에서는 바른정당 출신인 류성걸·김희국 전 의원이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두 후보는 전직 의원으로서 어느 정도 조직력과 인지도가 있고, 2년 뒤 열릴 총선을 고려하면 인지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라도 선거를 완주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를 정치적 근거지로 하고 있는 유승민 대표도 적극적인 지원유세에 나설 것이다. 지난해 5·9 대선에서 유승민 대표가 대구에서의 득표율이 12.6%였는데, 이만큼은 못 가져간다고 해도 1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조원진 의원이 버티고 있는 대한애국당도 대구시장 후보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대구 지역 의원은 "조원진 의원 본인이야 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니 절대로 안 나오겠지만, 후보는 틀림없이 낼 것"이라며 "2~3%는 득표한다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통합정당이 가져가는 10%와 애국당이 가져가는 2%는 오롯이 한국당 표에서 잠식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김부겸 장관의 파괴력을 결합하면, 한국당이 대구시장을 내줄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구 지역 정가의 관계자는 "대구시장 선거 전망이 생각만큼 밝지 않다"며 "예년에는 서로 나가겠다던 현역 의원들이 이번 선거에서는 '비겁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차출설만 나오면 서로 손사래를 치는 게 이 때문"이라고 혀를 찼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인은 포지시브한 워딩(발언)을 해야 하는데 '한국당 문을 닫는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이 나오다보니 상대방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선거가 '한국당 문 닫느냐 마느냐'로 흘러가게 돼버렸다"고 진단했다.

    반면 홍준표 대표가 "대구시장 내주면 한국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발언을 하자, 당장은 집권여당과 제2야당이 '한국당 문을 닫을 방법'을 찾은 것처럼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결국 이 발언이 배수진(背水陣)처럼 한국당에게 유리하게 작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분명 한국당이 미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전통적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는 한국당이 문을 닫는 것까지는 차마 볼 수 없다는 분들이 많다"며 "저쪽이 김부겸 (장관)을 차출하고 한국당 문을 닫겠다며 달려들수록, 오히려 보수 궤멸을 막기 위해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