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고 있나?" 홍콩 사람도 싫어하는 중국

'우산 혁명' 이후 축구 시작으로 각종 운동경기서 중국 국가 능욕

허동혁 칼럼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5.11 15:19:31
▲ 축구 경기에서 '홍콩독립'을 외치는 관중들. ⓒ美VOA 관련보도 화면캡쳐.
2017년 11월 14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홍콩과 레바논간의 아시아컵 축구 예선 A매치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홍콩의 국가는 중국과 같은 ‘인민의용군가’인데, 경기 시작 전 국가연주 때 거의 모든 홍콩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일부는 뒤돌아서거나, 손으로 X표를 그리거나, 가운데 손가락을 드는 이들도 있었다.

관중들 속에 낀 진행요원들은 관중을 진정시키려 두 손을 흔들고 있었고, 야유에 가담하지 않은 나머지 소수 관중들은 ‘말로만 듣던 장면을 진짜로 보네’ 하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반대로, 직전에 이뤄진 레바논 국가 연주 시에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축구장에서의 소동은 당일 홍콩 TV뉴스와 다음날 각 일간지 톱을 장식했다. 왜 남의 나라 국가에는 환호성을 지르고 제 나라 국가에 대해 야유를 보내는 이상한 일이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직접적인 이유는 홍콩에 만연해 있는 반중정서이다. 특히 2014년 가을 홍콩의 행정장관 직선제와 중국의 정치 간섭 배제를 요구하며 석 달 이상에 걸쳐 벌어진 ‘우산시위’ 를 계기로 반중 정서가 확산되며, 이후 홍콩에서 벌어지는 대표팀 축구경기마다 젊은 관중들이 중국 국가가 ‘우리나라 국가가 아니다’며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170년 이상 영국식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홍콩인들의 반중정서는 특히 영국 식민지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 이들은 1997년 영토 반환 이후 중국 자본에 의한 물가 및 땅값 상승으로 부모가 고생하고, 중국 관광객의 비문명적 행태를 보면서 성장했기에 중국은 외국이며 중국인들이 자기들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우산 시위 이후 홍콩에서 열린 첫 축구 A매치 경기인 2015년 6월 홍콩과 부탄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처음 국가 ‘모독’ 행위가 등장한 이후 매 시합마다, ‘홍콩 독립’ ‘Hong Kong is not China’ 같은 응원 깃발을 흔들며 국가 연주 때마다 야유를 퍼부었다.

▲ 홍콩 축구응원단 '파워 오브 홍콩'의 응원 장면. ⓒ파워 오브 홍콩 제공
세계축구협회(FIFA)는 무슨 이유인지 발 빠르게 대응했다. 2015년 9월 홍콩과 카타르의 월드컵 예선경기의 국가 모독행위에 대해 사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홍콩축구협회에 벌금 5천 스위스 프랑(한화 약 555만 원)을 부과했다.

홍콩 축구 팬들은 이런 조치에 대해 “카탈루냐에서 열리는 축구경기에서 스페인 국가가 연주될 때나, 스코틀랜드 시합에서 영국 국가가 연주될 때도 야유가 터지는데, 왜 우리만 문제 삼느냐” “(거대한 시장이 있는) 중국의 압력을 받은 것 아니냐” 는 등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FIFA가 그 후 매 경기마다 벌금 액수를 높여도 야유는 계속됐다.

중국 국가 모독이 전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중국 정부가 나서기 시작했다. 중국 전국인민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017년 10월 ’국가법’을 제정하여 국가 연주 시 모독행위에 대해 최장 15일간 구속 할 수 있게 했다. 한 달 후인 11월 4일 전인대는 구속기간을 15일에서 3년으로 전격 연장했다.

이 법은 명백히 홍콩 사람들을 겨냥한 법으로, 친중파 의원이 다수인 홍콩 입법원에서는 해당 법안이 2019년 하반기 쯤 통과 될 것으로 보이나, 민주파 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그런 소식에도 불구하고 홍콩 팬들은 2017년 11월 9일 바레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또다시 중국 국가가 나오자 야유를 퍼부었다. 당시 홍콩 팬들은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잡아 갈 테면 잡아 가 봐라” “국가법 따위에 신경 안 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5일 후 필자가 직접 찾아간 홍콩과 레바논 간 아시아컵 축구 경기에서도 중국 국가 모독 행위는 이어졌다. 다만 ‘홍콩 독립’ 등 정치적 문구가 담긴 깃발은 없었는데, 이는 홍콩축구협회가 입장객 소지품 검사로 이런 깃발 반입을 사전에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당시 홍콩 대표팀의 김판곤 감독(현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 선임위원장)이 제안한 구호라는 ‘Die for Hong Kong’, ‘HK Time I Die’ 같은 깃발이 내걸리고, 팬들은 경기 중 ‘대~한민국’ 구호를 모방한 ‘We are Hong Kong’ 구호를 계속해서 외쳐댔다. 깃발의 내용 때문인지 구장 안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기 도중 이런 일도 있었다. 홍콩의 친중 방송국 ‘Viu TV’가 하프타임 도중 홍콩 팬들 속에 들어가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팬들이 이들을 중국인으로 오인하여 ‘We are Hong Kong’ 구호를 외치며 오물을 집어 던졌다. 이 소동은 곧 진정됐다.

홍콩 팬들이 자리 잡은 관중석 반대편에는 대형 중국 오성홍기와 홍콩기를 관중석에 걸쳐놓고 조용하게 시합을 관전하는, 홍콩 혹은 중국 오성홍기가 그려진 붉은 옷을 입은 젊은 남녀들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기자들이 이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하였으나, 진행요원들로부터 접근을 제지당했다. 때문에 관제동원한 응원객이 아닌가 하는 말이 나왔다. 이들의 정체는 결국 드러나지 않아서, 홍콩축구협회장 마크 서클리프 (영국인) 조차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이날 시합은 레바논이 후반 페널티 킥을 성공시켜 1-0으로 승리했다. 홍콩 팬들은 패널티 킥 판정이 불공정했다며 퇴장하는 레바논 팀을 향해 오물을 집어던지며 야유를 퍼부었다. 아시아축구협회(AFC)는 또 홍콩축구협회에 관리책임을 물어 미화 3,000달러(한화 약 321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 홍콩국제경마대회에서 국가 연주시의 관중 모습. ⓒ유튜브 관련영상 캡쳐.
홍콩의 유명 축구응원단체는 ‘파워 오브 홍콩’ (香港力量) 그리고 ‘홍콩 모멘트’(波台黐線佬)가 있는데, 홍콩-레바논 전에서도 이들은 열띤 응원을 펼쳤다. 인터뷰에 응한 ‘파워 오브 홍콩’의 피우스 찬(Pius Chan) 씨는 “홍콩은 행동의 자유가 있다. 국가 연주 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지 각자 자유의사에 맡겼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고 답했다.

‘파워 오브 홍콩’은 오는 3월 평양에서 열릴 홍콩-북한 간 아시안컵 최종예선에 원정 응원을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찬 씨에 따르면, ‘파워 오브 홍콩’이 생긴 지 12년 정도 되었으나, 2014년 우산 시위 이후 급격히 세가 커졌고 응원 내용도 격렬해 졌다고 한다. 찬 씨는 홍콩축구협회의 단체표 배부 거부 등 당국의 견제도 간간히 있어 왔다고 귀띔했다.

중국에 반대하는 축구장의 분위기는 요즘 다른 종목으로도 번지는 중이다.

2017년 12월 10일 홍콩 샤틴 경마장에서 열린 ‘홍콩국제경마대회’에서 인민의용군가가 흘러 나오자 거의 대부분의 관중이 앉아있거나 무시했다. 당시 광경을 촬영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중국인으로 보이는 극소수만 일어나 경례를 할 뿐이었다. 관중들은 SCMP와의 인터뷰에서 “돈을 따러 왔지 노래에 경의를 표하러 온 것이 아니다” “너무 피곤해서 일어서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나라 국가였다면 일어섰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중국 당국의 ‘징역 3년’ 엄포가 과연 얼마나 통할 것인지는 홍콩 입법원에서 통과가 돼야 알 수 있다. 요즘 홍콩 TV매체는 인민의용군가를 배경음으로 한 공익광고를 자주 내보내며 분위기 띄우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중이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일국양제의 실천은 이처럼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과연 중국의 의도대로 국가법은 홍콩에서 연착륙에 성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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