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조직위 측 "최초 합의안에 따라 독도 삭제한 한반도기 제작"남북이 마지막으로 공동입장한 대회에선 '독도 포함' 한반도기 사용
  • ▲ 독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들고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공동입장하는 한국과 북한 선수단. ⓒ 연합뉴스 자료사진
    ▲ 독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들고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공동입장하는 한국과 북한 선수단. ⓒ 연합뉴스 자료사진
    "첫 번째로 공동입장이 이뤄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사용된 한반도기에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서쪽 끝 마안도, 동쪽 끝 독도, 남쪽 끝 마라도가 모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이같은 전례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김대현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문화행사국장은 23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리조트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한반도기에 독도가 들어가는지, 만일 그렇다면 일본 측의 반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묻는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과거 전례에 따라 이번에도 독도는 표기되지 않는다"며 "일본과 마찰을 빚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대현 문화국장은 앞선 대회들에서 남북 간 합의로 줄곧 독도가 빠진 한반도기를 사용해왔음으로,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도 같은 형태의 깃발을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실제로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첫 선을 보인 한반도기는 하얀 바탕에 파란 빛깔의 한반도와 제주도가 그려진 지금의 형태와 동일했다.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한 선수단은 '독도가 사라진'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다.

    그러나 한반도기에 독도가 등장한 때도 있었다. 2003년 일본에서 개최된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과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그리고 2007년 창춘동계아시안게임에선 한반도 옆에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한 선수들이 입장했다. 당시 일본에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을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다분히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국민적 정서가 반영된 결과였다.

    사실 남북한은 2006년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도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기를 흔들기로 합의를 마쳤으나 당시 조직위원회 측의 비협조로 이전 버전의 한반도기가 사용됐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대현 문화국장은 1991년 '지바 합의' 당시 한반도기에서 독도 등을 제외하기로 합의했고, 그 결과 남북한이 첫 번째로 공동입장한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동일한 깃발이 사용됐다며 해당 도안이 '최초'로 합의된 사안이라는 점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이 마지막으로 공동입장했던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사용된 깃발은 울릉도와 독도가 새겨진 한반도기였다. 최초 합의안에선 독도 등을 빼기로 결정했으나, 종국에 남북한이 내린 결론은 한반도기에 울릉도와 독도를 새겨 넣자는 것이었다. 처음 합의된 사안이 끝까지 유지됐다면 모를까 나중에 독도를 포함시키자고 중지를 모은 마당에 이제와서 27년 전 있었던 '최초 합의'를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란 목소리가 높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기를 사용한 시기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당시였다는 사실이다.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은 김대중 정권 말미에 치러졌고,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창춘동계아시안게임은 모두 노무현 정권 당시 열렸던 국제 대회였다.

    게다가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때 사용된 '독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는 북한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에도 "반드시 독도를 넣어야 한다"는 북한 측 주장을 십분 받아들여 도안을 수정했다. 해당 깃발을 사용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던 건 항상 북한이 먼저였다. 그렇다면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우리 정부의 '의지'만 있었다면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기가 채택됐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가장 근자에 합의된 사안을 멀리하고 수십년 전 합의됐던 내용을 꺼내들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은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바깥에서 찾았다.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실측하면 울릉도는 물론 독도도 한반도기에서 보일 수는 없는 게 사실"이라며 "독도를 보이게 하는 것 자체를 IOC는 정치적인 행위로 인식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올림픽 정신'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독도가 빠진 한반도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숭고한 '올림픽 정신'은, 참가 자격도 없는 북한 선수단이 동계올림픽에 '무임승차'하면서부터 이미 무너져 내렸다. 그보다는 우리 정부가 일본 측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난 19일자에 칼럼에서 "일본 영토이자 한국이 불법 점거 중인 독도가 한반도기에 포함될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그와 함께 "아베 신조 총리가 바로 이 부분 때문에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다분히 한반도기를 빌미로 독도 문제를 국제·정치적 이슈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였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과'에 목을 매고 있는 우리 정부 입장에선 북한의 참가 못지 않게 아베 신조 총리의 방한 여부도 중요한 문제다. 이런 까닭에 일본 정부를 자극하지 않는 '무난한' 한반도기를 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무튼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저런 정치적 문제에 휘말리고 있는 평창올림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