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서 겨뤘던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대표와의 영수회담 기약없어
  • ▲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23일 오찬회동을 위해 청와대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23일 오찬회동을 위해 청와대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를 불러들인 자리에서 여야 원내대표들과의 회동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평양올림픽' 논란 등으로 경색된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야당 대표들과의 회동이 필요한데, 돌연 원내대표들과의 회동을 들고나온 것은 뜬금없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권을 놓고 겨뤘던 옛 라이벌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와의 만남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오찬 회동을 갖는 자리에서, 배석한 청와대 비서진들에게 "여야 원내대표 간의 회동을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에서 우원식 원내대표와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 강훈식 원내대변인 등 17명의 의원이 참석했으며, 청와대에서는 임종석 비서실장, 한병도 정무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대통령의 "여야 원내대표 간 회동 검토" 주문은 회동을 마치고 국회로 돌아온 강훈식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이는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 원내대표의 교체가 있었다"며 "2월 국회도 있는 만큼 청와대와 여야 원내대표 간의 회동을 건의한다"는 요청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이뤄졌다.

    비록 건의에 대한 답변 형식이지만 "당정청이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강조했던 점을 감안하면, 사전에 회동의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네가 건의하면 내가 수용한다'는 식으로 이미 문답이 짜여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은 다소 뜬금없다는 지적이다. 여야 각 정당은 이미 모두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지도체제가 수립돼 있어,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당대표를 만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각 정당 원내대표들은 지난 2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만나야 할 상대는 당대표인데, 새삼 원내대표들을 2월 임시국회를 핑계로 또 불러들여 만나겠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평창올림픽 관련 대북굴종 논란 △비트코인 등 대응 미숙 △최저임금 사태와 일자리 대란 등 경제정책 혼선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옛 대권경쟁자인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대표와 자리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대표는 대통령과 'n분의 1' 위치에서 만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지난 2일 열린 청와대 신년인사회도 보이콧하고, 여야 단독 영수회담을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까지 불러 떼로 만나는 '집단적 영수회담'에는 야당 대표들이 응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릴레이로 하는 단독 영수회담에 응하자니 그 자체가 이미 기싸움에서 밀리는 모양새인데다, 여야 영수회담에서 외교·안보·경제 분야 등과 관련해 야당 대표들의 합리적 비판에 직면했을 경우 대응할 말이 마땅치 않아 '외통수'에 몰리게 된다.

    앞서 홍준표 대표는 지난 12일 경남도당 신년인사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영수회담을 하면 나를 절대 못 당한다"며 "그러니까 1대1 회담을 절대 안 하는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도 "결국 부담스러운 야당 대표들은 '패싱'하고, 대신 원내대표들을 불러들여 오늘(23일)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말한 '문재인정부 망국법안'들을 처리할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뜻"이라며 "정치에는 정도와 대문이 있는 법인데, 대통령이 뒷길과 샛문을 찾아 헤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