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눈치보며 취재 제한 의혹…文정부, 현송월 방한 내내 ‘상전’처럼 모셔
  • 23일 오전 강릉 경포 스카이 베이 호텔을 나서는 현송월. 한국 측 인원들이 마치 '수행'하는 듯하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3일 오전 강릉 경포 스카이 베이 호텔을 나서는 현송월. 한국 측 인원들이 마치 '수행'하는 듯하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21일, 북한 현송월이 ‘삼지연 악단’ 단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한국에 왔다. “평창 동계올림픽 계기 북한 예술단 공연시설을 사전 점검한다”는 명목으로 왔다. 지난 22일 밤 북한으로 돌아갈 때까지 현송월이 보여준, 적확하게 표현하면 한국 정부가 현송월을 대하는 모습은 ‘조선시대 중국 황제 칙사 모시는 듯’한 태도였다는 비판이 거세다.

    현송월은 방한 첫날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강원도 강릉에 가서 강릉아트센터와 황영조 체육관을 돌아봤다. 이튿날에는 서울로 돌아와 잠실 학생체육관, 장충체육관,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을 돌아봤다. 이 가운데 국립극장에서는 1시간 넘게 시설들을 꼼꼼히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현송월의 공식 방한 일정 요약이다.

    하지만 언론에 비친 현송월의 모습은 강릉과 서울의 공연장을 둘러보는 것보다 숙식이 ‘공식 일정’처럼 보였다. 첫날 경포 스카이 베이 호텔, 둘째 날 서울 잠실 롯데타워 중식당과 워커힐 호텔이 더욱 부각을 받았다.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송월이 강릉에서 묵은 경포 스카이 베이 호텔 19층의 최고급 객실은 엘리베이터 입구부터 출입을 막았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9층에 내리면 나무 탁자로 통로를 막아 놓은 상태였으며, 남성 경호원 2명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경포 스카이 베이 호텔 최고급 객실의 1박 가격은 65만 원에 달한다고. 게다가 이 호텔은 개장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지금은 숙박객을 받지 않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튿날 현송월은 서울로 올라와 잠실 학생체육관을 돌아본 뒤 롯데 타워 중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롯데타워 중식당에서도 ‘한국인 출입통제’가 있었다고 한다. 사전에 예약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식사를 하러 온 한국 국민들은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당시 현송월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한 사람이 몇 명인지는 모르나 8인실에 들어가 ‘코스 요리’를 즐겼다고 한다. 1인당 13만 8,000원 짜리 식사에는 제비집 게살 스프, 어향소스 가지 새우, 흑후추 한우 안심 등이 포함됐다고 한다.

  • 현송월이 강원도 강릉에서 묵었다는 경포 스카이 베이 호텔. 아직 일반 숙박객은 받지 않는 상태로 알려졌다. 현송월이 묵을 당시 한국 정부는 해당 층을 모두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현송월이 강원도 강릉에서 묵었다는 경포 스카이 베이 호텔. 아직 일반 숙박객은 받지 않는 상태로 알려졌다. 현송월이 묵을 당시 한국 정부는 해당 층을 모두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점심 식사를 마친 현송월이 장충체육관과 남산 국립극장을 둘러보기 위해 한남대교를 지날 때에는 경찰이 아예 교통 통제를 한 상태였다. 뻥 뚫린 도로를 지나 공연장을 둘러본 현송월 일행은 워커힐 호텔로 가서 한우 전문점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고 한다.

    ‘TV조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현송월과 함께 워커힐 호텔에서 식사를 한 사람은 통일부, 국정원, 북한 전문가 3명이라고 한다. 이들은 생갈비, 생등심, 소주와 맥주 등을 162만 원 어치 먹었다고 한다.

    정부는 현송월이 방한해 소모한 비용을 ‘남북협력기금’에서 충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대겠다는 비용은 현송월과 그를 ‘수행’한 한국 측 인사들이 직접 소비한 금액일뿐 이들로 인해 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한 배상은 없을 예정이다.

    현송월 방한 이후 현 정부를 보는 언론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특히 통일부 출입기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통일부 출입기자들에 따르면 현송월의 이번 방한 첫날부터 언론의 불만이 팽배했다고 한다.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된 “불편해 하십니다”라는 국정원 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말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언론의 취재를 강하게 제한하는 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현송월 방한 첫날,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강릉으로 이동할 때도 현송월 한 사람을 위해 ‘특별열차’가 운행했다고 한다. 또한 통일부 출입기자들이 현송월과 그 수행 인력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규모 공동취재단’을 구성해 취재하겠다고 요청 했음에도 정부 측은 기자들과 현송월이 직접 만날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통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기자들은 통일부가 제공한 ‘현송월 영상’을 받은 뒤 더 화가 났다고 한다. 지난 21일 ‘조선일보’가 공개한 21초짜리 영상에는 현송월이 “그러게나 말입니다”라며 웃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통일부가 지난 22일 출입기자단에게 제공한 영상은 음성도 없고 표정을 짓는 장면도 없었다고 한다.

    통일부는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뒤에야 현송월 관련 영상을 제공했는데, 원본 영상에도 현송월의 목소리가 편집됐고 내용 또한 ‘조선일보’가 공개한 것에 비해 빈약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통일부 출입기자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지시를 받고 사전 편집하거나 아예 촬영을 하지 않은 것이냐 아니면 정부가 알아서 긴 것이냐”며 비판 섞인 질문을 던졌고, 통일부는 처음에는 “(남북 간) 합의에 근거해 진행했기 때문에 현송월이 말하는 장면이나 웃는 모습을 찍지 않은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가 비난이 더욱 거세지자 “북한 측은 ‘시설점검에만 충실하고 싶다’고 했지 그 밖에 특별한 요청은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고 한다.

  • '조선비즈'가 단독 촬영해 공개한 21초 짜리 영상. 통일부가 자체 촬영해 배포한 현송월 관련 영상에는 음성이 모두 편집돼 있고 현송월이 표정을 짓는 장면이 단 한 컷도 없다고 한다. ⓒ조선비즈 유튜브 채널 캡쳐.
    ▲ '조선비즈'가 단독 촬영해 공개한 21초 짜리 영상. 통일부가 자체 촬영해 배포한 현송월 관련 영상에는 음성이 모두 편집돼 있고 현송월이 표정을 짓는 장면이 단 한 컷도 없다고 한다. ⓒ조선비즈 유튜브 채널 캡쳐.
    기자들과 별개로 국민들은 현송월을 동맹국 국가원수보다 더욱 극진히 대접하는 정부와 이동 경로와 식사 메뉴, 입은 옷까지도 시시콜콜히 보도하는 언론들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으로 만들 작정을 했느냐”며 거센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현송월 전용 강릉행 KTX’ 때문에 화가 난 사람들, 서울 강남과 잠실, 한남대교, 장충동 일대에서의 예고 없는 교통 통제에 열 받은 사람들, 호텔 등에서 얼떨결에 쫓겨나거나 멈추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당황했던 사람들, 현송월에게 한 끼에 10만 원이 넘는 식사에 최고급 호텔에서의 숙박을 제공하는데 국민 세금을 사용한다고 화가 난 사람들 등 다수의 국민들이 ‘현송월 방한’을 통해 북한 김정은 정권과 문재인 정부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일각에서는 현송월이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1시간 15분 동안 시설들을 꼼꼼히 살펴본 점을 지적하며 “1974년 8월 15일 북한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재일교포 간첩 문세광이 당시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살해한 곳에서 공연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현송월이 강릉아트센터를 돌아본 뒤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에 이탈리아제 ‘클레이 파키’ 조명, 미국제 ‘메이어 사운드’ 음향기기, ‘아비드 디쇼’ 콘솔 등을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해 달라고 한 대목 또한 국민들의 감정을 긁었다. 한국에 맡겨놓은 것도 아니면서 저렇게 당당하게 “내놔”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23일에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대표단이 공동 입장하고 단일팀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변명을 늘어놨다. 그러나 국민들의 분노는 그뿐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 관계자들, 심지어는 국정원 요원들까지도 ‘상전 모시듯’ 알아서 설설 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에서 더욱 증폭됐다.

    재앙적인 참사에서부터 원자력 발전 중단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만 생기면 “여론을 수렴해서 결정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해서는 여론을 수렴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 정부 부처 안팎에서 나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