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국정원 개혁, 근거 없는 상상에 바탕한 정보기관 무력화
  • ▲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안'을 설명하는 조국 靑민정수석.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안'을 설명하는 조국 靑민정수석.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14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갑자기 기자회견을 가졌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조국 靑민정수석은 故박종철 씨의 물고문 사망 사건과 영화 ‘1987’로 말문을 연 뒤 당시 경찰, 검찰의 행태를 비난했다. 그는 “독재시대가 끝나고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에도 권력기관은 각 기관의 조직의 이익과 권력의 편의에 따라 국민의 반대편에 서 왔다”면서 2015년 故백남기 씨 사망과 2016년 ‘탄핵 촛불’,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을 결부시켰다.

    조국 靑민정수석은 이어 “여기에는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잘못이 있었음은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며 “이들 권력기관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反헌법적 국정농단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촛불시민혁명에 따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 악순환을 끊고자 한다”면서 향후 검찰, 경찰, 국정원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설명했다. 핵심은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원, 법무부 소속 검찰, 행정안전부 소속 경찰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물론 현재 갖고 있는 권한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국정원의 경우 국내정보 수집권한과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기존의 권한 가운데 공직자에 대한 수사권 등을 신설하는 공직비리수사처(일명 공수처)에 양보하도록 하며, 이 같은 권한을 받은 경찰은 중앙 경찰과 자치 경찰로 분리하는 방식으로 힘을 빼겠다는 내용이었다. 국정원에서 넘겨받은 대공수사권은 가칭 ‘안보수사처’를 신설해 전담시킨다는 계획도 나왔다. 또한 국정원의 예산을 국회에서 투명하게 처리하고, 감사원의 감사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보기관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적개심만 가득한 사람이라면 매우 환영할 만한 ‘개혁안’이었다. 김정은 정권에 우호적인 사람들도 좋아할 듯 했다. 하지만 국내외 안보전문가들은 이 발표에 황당해 했다. 현존하는 주적 북한을 막는 ‘대공방첩’을 경찰에 넘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보기관의 기능과 기밀성을 아예 없애겠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 ▲ 英런던 템즈강변에 있는 SIS(MI6) 청사. 영국은 국내와 해외 정보기관이 잘 나뉜 대표적 국가로 알려져 있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英런던 템즈강변에 있는 SIS(MI6) 청사. 영국은 국내와 해외 정보기관이 잘 나뉜 대표적 국가로 알려져 있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국내정보, 방첩, 해외정보 나누는 추세”…25년 전 이야기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과 여당 정치인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국내정보수집과 해외정보수집, 활동을 분리하는 것이 대세”라며 “한국도 늦었지만 이제 세계적 추세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면 이 말이 그럴싸해 보인다.

    미국도 중앙정보국(CIA)은 해외정보수집과 공작을, 연방수사국(FBI)은 대공수사를 비롯한 방첩을 맡고 있고, 영국은 해외정보수집과 공작을 SIS(MI6)에, 국내정보수집과 방첩을 SS(MI5)에 맡기고 있으며, 러시아는 해외활동은 해외정보국(SVR)이, 국내활동은 연방보안국(FSB)이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도 해외 담당은 대외정보총국(DGSE)이, 국내 담당은 국내안보총국(DGSI)가 맡고 있고, 독일도 해외는 연방정보국(BND)이, 극단주의자 수사 등 국내는 헌법수호청(BfV)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또한 해외는 모사드, 국내는 신베트가 맡는 것으로 돼 있다. 일본도 표면적으로는 정보수집 및 공작은 내각정보조사실(CRO)이 맡지만 방첩 기능은 공안조사청(PSIA)이 맡는 것처럼 알려져 있다.

    자, 이렇게 간단하게 ‘국내 담당’과 ‘해외 담당’으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서 말한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일본 등은 물론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인도 등 웬만한 국가는 보통 국내와 해외를 담당하는 정보기관을 따로 두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문재인 정부 관계자와 여당 정치인들, 한국 언론이 잘 모르는 내용이 숨어 있다. 앞서 언급한 나라들에는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별개의 정보기관이 국내, 해외뿐만 아니라 통신 및 신호 감청, 재무 및 세관 첩보수집, 군 정보기관, 방첩기관 등 보통 4~5개의 국가 단위 정보기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야 9.11테러 이후로 49개 정보기관을 통·폐합해 17개 기관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유명할 정도로 정보기관이 많다. 심지어는 국무부와 에너지부조차도 별도의 정보기관이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일본 등도 국내, 해외뿐만 아니라 통신감청기관, 군 정보기관, 경찰 정보기관 등을 별개로 두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총괄 관리하는 위원회를 두고 위원장을 부총리급이 맡거나 총리가 직접 맡고 있다. 동시에 냉전 때부터 유지해오던 정보기관의 국내-해외 분리 원칙을 넘어서려 노력하고 있다. 이유는 안보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 ▲ 美17개 정보기관을 총괄 감독하는 국가정보장실(ODNI)의 모토와 로고. ⓒ美ODNI 소개 슬라이드 캡쳐.
    ▲ 美17개 정보기관을 총괄 감독하는 국가정보장실(ODNI)의 모토와 로고. ⓒ美ODNI 소개 슬라이드 캡쳐.
    미국은 정보기관을 17개로 통·폐합한 뒤 국가정보장(DNI) 부서를 창설해 모든 정보기관을 총괄토록 했다. 또한 그 직할로는 국가대테러센터(NCTC)를 창설해 모든 정보기관이 안보 위협에 공조해 대응하도록 만들었다. 9.11테러 당시 국내와 해외, 각 부처 소속으로 되어 있던 정보기관들끼리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테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반성이었다.

    다른 나라들 또한 정보기관 개혁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테러조직 ISIS의 등장에서 보듯 21세기 이후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국제범죄조직, 무정부주의 조직, 공산주의 조직 등과 연계하고 있으며, 그 활동 무대가 국내외를 넘나든다는 점 때문에 각국은 국내 정보기관과 해외 정보기관 간의 연계 및 공조를 더욱 강조하고 있고, 심지어는 부처 통합까지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2007년 국토감시청(DST)과 중앙정보총국(RG)을 통합해 ‘내부정보총국(DCRI)’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국제테러조직이 프랑스와 벨기에 등을 넘나들며 테러를 시도하는 것과 사이버 테러 등을 제대로 막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프랑스는 고민 끝에 2014년에 조직을 확대 개편해 ‘국내안보총국(DGSI)’를 창설했다. 이 DGSI에는 프랑스 내무부 산하 경찰의 정보조직, 과거 별개로 존재하던 국내 정보기관, 사이버 부대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국가기술연구소(NTRO), 연구분석비행단(RAW), 정보국(IB), 약물통제국(NCB), 수익정보감독실(DRI), 국방정보국(DIA), 합동암호화국(JCB), 신호첩보부(SIB) 등의 정보기관을 보유한 인도 또한 2008년 11월 뭄바이 테러를 당한 뒤 정예 요원들을 모아 ‘국가조사국(NIA)’을 창설했다. 인도 NIA는 테러나 적성국 스파이들의 활동을 막는 데 있어서는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즉 문재인 정부와 여당, 이들을 지지하는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정보기관의 국내외 분리’라는 추세는 냉전이 붕괴한 1990년대 초반에나 통하던 ‘트렌드’이며, 지금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 ▲ 中국가안전부와 공안이 함께 입주해 있는 청사. ⓒ美국제관계교육훈련협회 홈페이지 캡쳐.
    ▲ 中국가안전부와 공안이 함께 입주해 있는 청사. ⓒ美국제관계교육훈련협회 홈페이지 캡쳐.
    ‘한국의 적’ 북한과 중국은 국내외 넘나드는데….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대외안보정보원’ 개혁안이 세계적 흐름과는 다르게 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193개 유엔 회원국의 상황을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과 같은 상황에 처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1억 2,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이슬람 국가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이 한국과 조금 비슷할 수 있겠지만, 이스라엘은 필요할 경우 관할 범위를 무시하고 군 정보기관과 국내 정보기관, 해외 정보기관은 물론 군인들까지도 활용하며, 게다가 필요할 경우에는 암살까지 하는 기관이므로 직접 비교가 어렵다. 그렇다면 일단 한국의 적성국인 북한과 중국, 한국이 경쟁자로 여기는 일본의 현실을 살펴보는 게 이해를 돕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은 과거 군 정보기관과 노동당 정보기관이 따로 움직였다. 하지만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면서부터 조직을 개편했고, 각 정보기관 간의 경쟁을 유도했다.

    그 결과 북한군 소속인 정찰총국이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방첩 담당이라는 국가보위성이 ‘위장 탈북자’를 남파하거나 중국에 가서 한국인을 납치하기도 한다. 또한 노동당 소속 225국은 한반도를 넘어 중국, 동남아 등에서 한국 범죄조직에게 불법 도박 프로그램 등을 판매해 외화벌이를 하며, 지하당 구축뿐만 아니라 인터넷 등에서의 여론 조작을 벌이기도 한다. 이들이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벌이는 ‘외화벌이용 불법 사업’에는 정찰총국 소속 사이버 부대도 함께 한다.

    이렇게 대남공작을 위해 움직이는 북한의 요원 수는 최대 4만 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정보기관은 10년 전부터는 북한에 거주하는 화교를 탈북자로 위장시키거나 조선족으로 둔갑시켜 한국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中국가안전부도 함께 협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한국에 들어와 ‘중국 동포’ 자격으로 정착하면 북한이 국내에 간첩망을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냉전 때와 같이 육로나 해로를 통해 목숨걸고 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중국은 애초부터 공산당 직속 국가안전부(MSS)가 국내외의 모든 활동을 담당한다. 舊소련의 KGB와 같은 中국가안전부는 17개 활동국(局)과 10개 지원국을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규 요원과 ‘자산(Asset)’이라 부르는 정보원들의 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주요 언론과 각국 정보기관은 요원 수 4만 명 이상, 정보원까지 합치면 30만 명 이상의 스파이들이 중국 내부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참고로 인구 2,330만여 명의 호주에는 32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1,000여 명이 中국가안전부 요원 또는 포섭된 정보원이라고 한다. 5,1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101만 명이 중국인인 한국에는 中국가안전부가 보낸 간첩이 몇 명이나 될까.

  • ▲ 日정보기관 내각조사실이 입주해 있는 日내각부 청사. 이 건물 6층에 본부가 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日정보기관 내각조사실이 입주해 있는 日내각부 청사. 이 건물 6층에 본부가 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현 정부의 경찰력 강화, 마치 일제 경찰 보는 듯

    일본은 일반적인 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한국에 잘 알려진 내각정보조사실(CRO)은 총리 비서실장 역할을 맡는 관방장관의 감독을 받는 것처럼 돼 있고, 자위대 통합막료감실 조사부 별실은 방위성 장관의 감독을 받으며, 방첩 기능을 맡는 공안조사청(PSIA)은 법무부의 감독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모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통제를 받는다.

    중요한 점은 일본에서 이런 공안 직군, 특히 첩보수집과 방첩을 담당하는 인력들은 대부분 경찰 출신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경찰은 한국과 달리 군대보다 훨씬 위상이 높다. 메이지 유신 때 ‘존왕양이’를 외쳤던 천황파 사무라이들이 처음 가진 직업이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제국군은 경찰이 된 사무라이들의 손에 탄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제시대 경찰들이 모두 칼을 차고 다녔던 것도 이런 사무라이 전통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일본 경찰은 이런 ‘사무라이의 후예’를 자처하는 중앙 경찰과 자치 경찰로 나뉘어 있다. 절도, 도난, 폭행 등의 소소한 사건은 자치 경찰이 처리하지만 총기사건이나 살인사건, 테러 등 여론이 들끓을 듯한 사건이 발생하면 중앙 경찰이 지방으로 내려가 자치 경찰을 지휘한다. 이때 1970년대 한국 경찰 서장이 젊은 검사에게 쩔쩔 매던 것과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일본에서 인기를 끌어 영화로도 제작했던 ‘춤추는 대수사선’이 이런 일본 경찰의 부조리함을 꼬집은 내용이다.

    아무튼 이런 일본 중앙 경찰이 내각조사실과 공안조사청의 실무진을 대거 장악하고 있다 보니 일본에서는 경찰이 모르는 정보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한계는 일본을 벗어날 경우 동맹국에게 기대야 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통산성 산하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단체 ‘게이단렌’의 회원사들이 정보를 수집해 공유하는 덕분에 통상 또는 해외 현지 사정 등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이런 ‘경찰 중심 정보기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고, 아베 정부가 들어선 뒤부터는 NSC를 중심으로 업무를 조정·취합하면서 정보기관 역량 강화와 함께 국내외를 아우르는 기관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 ▲ 美테러위협통합센터(TTIC)가 소개하는 정보 흐름도. 미국마저도 정보기관 간의 협력과 소통을 강조하고 업무 범위의 확대를 준비하는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美TTIC 소개 슬라이드 캡쳐.
    ▲ 美테러위협통합센터(TTIC)가 소개하는 정보 흐름도. 미국마저도 정보기관 간의 협력과 소통을 강조하고 업무 범위의 확대를 준비하는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美TTIC 소개 슬라이드 캡쳐.
    국정원이 해외 정보만 수집…간첩 잡을 수 있을까?

    조국 靑민정수석은 국정원과 검찰, 경찰을 ‘권력기관’이라고 불렀다. 현 정부가 정보기관과 사법기관을 보는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나 좌익인사를 제외하고는 자국 정보기관을 ‘권력기관’이라 부르는 경우는 중남미나 아프리카,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과 같은 독재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

    아무튼 조국 靑민정수석은 “국정원이 국내정치와 대공수사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대북·해외에 전념하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최고 수준의 전문 정보기관으로 재탄생하도록 하는 것”이 이번 국정원과 검찰, 경찰 개혁의 핵심 목표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 정보 수집을 가로 막고 대공 수사를 금지하는 것은 현재 북한이나 중국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없도록 만드는 조치라는 지적이 안보전문가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뿐만 아니라 감사원이 국정원(대외안보정보원)을 감사하도록 하는 조치, 여기다 ‘예산 투명성’을 이유로 회계까지 공개할 경우에는 한국의 대외정보력과 방첩기능은 사실상 무력화된다고 봐야 한다. 회계가 드러나면 해당 정보기관의 인원이 몇 명인지, 그들이 받는 임금이 얼마인지, 현재 어떤 공작을 진행 중인지를 추정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내부에 ‘두더지(Mole, 이중스파이)’를 심기가 매우 수월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국정원 안팎에서는 “민주화 정권들이 들어선 뒤부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비밀공작을 금지해 국정원의 역량이 크게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특히 지난 15년 사이에는 해외 담당 부서들의 역량이 낮아져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조직 내에서조차 제기됐다. 비밀공작 금지와 해외 첩보활동의 약화가 국내 대공수사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었다.

    현 정부의 계획대로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뀌고, 예산도, 활동도, 조직도 모두 ‘투명’해졌다고 치자. 이런 정보기관이 과연 국내외를 넘나들면서 북한의 대남공작과 중국의 정치공작을 막을 수 있을까. 이제 한국인들은 정부의 정보기관을 믿지 말고 ‘각자도생’하는 길밖에 안 남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