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美·日 ‘완전고용’ 시대 개막…한국은 ‘취업 빙하기’
  • ▲ 2017년 12월 日NHK가 보도한 '80세 정년 기업' 소식은 국내에 큰 관심을 끌었다. ⓒ아시아 경제 유튜브 채널 관련보도 화면캡쳐.
    ▲ 2017년 12월 日NHK가 보도한 '80세 정년 기업' 소식은 국내에 큰 관심을 끌었다. ⓒ아시아 경제 유튜브 채널 관련보도 화면캡쳐.
    2017년 연말, 일본에서 나온 특이한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일본에 ‘정년 80세 기업’이 등장했다는 뉴스였다. 웬만한 기업에서는 50세만 넘어도 ‘명예퇴직’을 걱정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내용이었다. 한국 정치인과 언론들이 그렇게나 우습게 여기던 일본 아베 정부가 경제 회복에 성공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 2017년 말 한국 노인들을 부럽게 만든 일본 뉴스

    2017년 12월 26일 日NHK는 일본 내 ‘실버 취업’에 대해 보도했다. 당시 보도에서 가장 화제가 된 곳은 홋카이도 삿포로市에 있는 ‘히가시 삿포로 닛쓰 수송’이라는 기업이었다. 해당 기업은 2017년 10월 ‘80세 정년제’를 도립했다고 한다.

    기존의 일본 기업들이 ‘임금 피크제’처럼 정년이 가까운 사람들을 내보냈다가 다시 ‘촉탁사원’으로 재고용하는 것과 달리 이 업체는 65세 정년이 된 사람들에게 퇴직할 것인지 계속 일할 것인지를 묻고, 계속 일을 하겠다고 답하면 정년을 80세까지 연장해주기로 한 것이다. 다만 노인들의 체력 문제를 고려해 운송직이 아닌 영업, 총무 등 사무관리 업무에만 국한해 정년을 연장했다고 한다.

    日NHK의 보도에 나온 다른 기업도 눈길을 끌었다. 시즈오카縣 이와타市 소재 파이프 가공업체 ‘고겐 공업’은 직원 270명 가운데 76명이 65세 이상의 노인들이라고 한다. 전 임직원의 30% 이상이 노인인 것이다. ‘버블 경기’로 일손이 모자라던 1980년대 말부터 노인들을 고영한 ‘고겐 공업’은 이후 불경기 때에도 60세가 넘는 직원들 가운데 희망자들은 계속 고용했다고 한다. 日NHK에 따르면, 현재 ‘고겐 공업’의 최고령 사원은 89세라고.

    도쿄 시나가와區 소재 ‘비올리’라는 자동차 부품 유통업체 또한 노인을 채용해 성공한 사례라고 한다. ‘비올리’는 알파로메오와 같은 이탈리아 자동차 부품을 수입·유통하는 업체인데 이런 경력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어렵자 노인을 채용한다고 구인광고를 냈고, 그 결과 이탈리아 항공업체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한 68세 남성을 임원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이 남성은 지금도 이탈리아 현지에서 회사가 필요로 하는 부품들을 구해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日NHK가 보도한 내용이 일본 사회 전체의 일은 분명 아니다. 日NHK도 日후생노동성의 조사를 인용해 “65세 이상의 노인 가운데 60%가 더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10%에 불과하다”며 일본 사회에서의 노인 노동력 활용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 이 같은 ‘노인 고용’이 일어나는 이유가 경기 활황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경제 지표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일손 부족에 시달리면서 외국인들까지도 대거 고용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 ▲ 日후생노동성의 통계를 취합해 만든, 지난 10년 간의 취업률 추이. ⓒ트레이딩 이코노미 닷컴 화면캡쳐.
    ▲ 日후생노동성의 통계를 취합해 만든, 지난 10년 간의 취업률 추이. ⓒ트레이딩 이코노미 닷컴 화면캡쳐.
    ▲ 부활하는 일본 경제, 모자라는 일손

    日후생노동성이 공개한 2017년 하반기 실업률은 2.7%에서 2.8%를 오가고 있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일본 정부가 아르바이트도 ‘비정규직 근로자’로 간주하고, 대학 졸업생 취업률을 산정하는 것도 일본 전체 800개 대학 가운데 100여 개 대학만을 대상으로 조사 표본을 추출하며, 그 마저도 졸업 예정자만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실제 실업률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맞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 경기가 극도로 나쁘다는 증거는 아니다.

    1월 18일 마감한 日증시 닛케이 지수(N225)는 닷새 동안의 약보합세를 보인 끝에 2만 3,763.37을 기록했다. 전날과 비교하면 104.97 포인트가 하락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증시 지수 비율로 보면 0.44%가 빠진 것이다. 2013년 1월 25일 당시 1만 926.65에 불과했던 닛케이 지수가 5년 사이 두 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한국 증시 또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연일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금융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전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삼성전자 등 주요 대기업의 주가가 뛰면서 일어난 착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일본 증시 활황은 몇몇 대기업이 아니라 대기업부터 중견기업까지 전반적으로 주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일본으로 취업하러 간 한국 남성들이 블로그 등을 통해 가감 없이 전하는 현지 상황들도 최근 일본 경기 활황세를 보여준다. ‘카스카’라는 블로거는 2017년 1월에 이미 “일본 직장인들의 평균 연봉이 계속 오르고 있다”면서 日구인구직 정보업체 ‘도다(DODA)’의 통계를 인용했다.

    이 업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말을 기준으로 일본 근로자들은 업종에 따라 최고 741만 엔에서 421만 엔까지 연봉을 받고 있는데,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줄어들던 연봉이 2016년부터는 상승세를 보였다고 한다. 해당 정보를 소개한 ‘카스카’라는 블로거는 “2016년 말 기준 일본 전체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442만 엔으로 전년 대비 2만 엔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부 업종과 직종에서는 두 자리 수의 증가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사람을 줄이던 건설업계까지도 일손이 모자라지자 수익을 근로자들에게 되돌려주며 유인책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본 경제가 살아나게 된 원인으로는 아베 정부가 줄기차게 추진해 온 ‘조건부 법인세 인하(시설 및 설비 투자 기업에게는 법인세 20%로 인하)’와 금융규제 철폐, 엔화 가치 하락 정책 등이 꼽힌다. 아베 정부가 트럼프 집권 이후 그에 보조를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인 부분도 경기 호황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여기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단카이 세대’의 집단 은퇴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취업 연령대 인원의 부족이 한 몫을 했다. 매년 은퇴하는 ‘단카이 세대’는 80만 명을 넘는 반면 연간 대졸자 수는 50만 명이 채 안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 ▲ 2016년 말 기준 日주요 업종의 평균 연봉. ⓒ日구인구직 사이트 DODA 화면캡쳐.
    ▲ 2016년 말 기준 日주요 업종의 평균 연봉. ⓒ日구인구직 사이트 DODA 화면캡쳐.
    게다가 ‘프리터 세대’와 ‘유토리 세대’라 불리는 3040연령대의 상당수가 취업 자체를 포기한 탓에 일본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는 ‘허리 세대’가 부실한 편이라고 한다(이 세대들이 학교를 졸업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은 보편적 복지를 실시, 취업을 하지 않아도 생계는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즉 ‘단카이 세대’가 빈 자리를 채울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급작스럽기까지 한 경기 활황에 이런 여러 가지 사회적 요소들까지 섞이면서 현재 일본 기업들은 일손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것이 현지의 이야기다. 일부 기업들은 면접을 본 구직자에게 “꼭 와주실 거죠? 제발 와주세요!”라고 애걸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학 졸업반이 되면 100통에 가까운 이력서를 제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일이다.

    국내 총생산(GDP)에서 내수 비중이 84.8%를 차지하는 일본에서 기업들이 구직자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경기가 활성화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 실패에서 배운 일본 정부와 기업…한국은?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에도 정부와 기업이 국민과 근로자 위에서 군림하다시피 했다. 또한 ‘대본영 시대’라 불리는 군국주의 체제를 겪은 전쟁 세대는 ‘상명하복’을 철저히 따졌다. 그 결과 일본 사회는 미국을 넘어설 정도로 경제가 성장했던 1980년대까지도 “직장인은 기업의 부속품”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평생직장’도 사라지고, 무조건적 상명하복도 강요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 그로부터 20여 년 간 불황이 지속되면서 일본 기업도, 일본 정부도 많은 면에서 바뀌었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잔업 근무와 철야 근무를 시키다 근로자들이 과로사하거나 자살하자 정부가 직접 나서서 법률까지 제정하겠다며 이를 금지시킨 일이다.

    일본 기업과 사회가 외국인 근로자,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온 구직자를 대하는 태도 또한 크게 달라졌다. ‘버블 경제’ 시절과 2000년대만 하더라도 백인이 아니면 멸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던 일본은 이제 한국인이나 중국인의 취업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이공계를 전공한 한국 대학 졸업자가 괜찮은 영어 시험 성적에 일본어까지 할 줄 알 경우에는 “일본에 정착할 생각이 없냐”며 데려가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일본 기업들도 이제는 “사람이 귀한 줄”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일본 기업들에서는 야근이나 철야 근무도 있지만, 부수적인 비용을 모두 보전해주거나 주거비 등을 보조해주는 등의 유인책을 사용하기에 외국인 근로자들의 불만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등에서도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남성들이 일본으로 취업하는 사례를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취업한 사람들의 자랑도 적지 않다. 이것이 일부 사람들에만 국한된 일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버블 붕괴와 저출산 고령화, 재정적자 같은 커다란 실패를 경험한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25년 동안의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을 실천해 나가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 ▲ 일손이 모자라진 일본 기업들은 한국인과 중국인 등의 채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사진은 日현지 기업이 만든 한국인 구인 사이트. ⓒ99s 잡 재팬 닷컴 캡쳐.
    ▲ 일손이 모자라진 일본 기업들은 한국인과 중국인 등의 채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사진은 日현지 기업이 만든 한국인 구인 사이트. ⓒ99s 잡 재팬 닷컴 캡쳐.
    한편 한국은 이웃나라와 동맹국의 실패 사례를 직접 보고서도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려는 분위기다. ‘보편적 복지’와 기업 규제를 동시에 시행,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 경제를 일으켜보겠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근본 목적인 기업들이 이런 정부의 강요에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장에 닥친 규제는 피하지 못하므로 정부와 정치권의 요구를 받아들이겠지만, 철저히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서서히 일자리를 해외로 옮기거나 아예 주력 업종을 ‘자본집약적 사업’으로 바꿀 수 있다. 과거 수천여 명의 직원을 고용해 큰 돈을 번 제조업체가 정부 규제가 심해지자 회사를 매각한 뒤 그 자본으로 수십여 명의 고액 연봉자만 고용하는 벤처캐피탈이나 기술금융업체를 설립한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선거에서 당장의 표로 이어지는 근로자들의 마음을 “급여 올려주겠다”는 말로 유혹하기는 쉽지만, 그 결과는 좋아봐야 선거 패배, 최악의 경우 목숨까지 걸어야 할 수도 있음을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들은 ‘실패한 국가들’을 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