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文, 정치보복이냐 아니냐 두고 정치 쟁점화… 일방적 司正 강행 검찰 명분 빛 바래
  •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일방적인 사정(司正)작업이 본격적인 정치싸움으로 번졌다.

    전·현직 대통령의 감정 담긴 격돌이 벌어지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했던 검찰의 수사 명분이 빛바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꺼내든 '정치 보복' 카드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분노를 표출, 기름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이 DJ·노무현 정부의 특수활동비도 조사해야한다며 본격적으로 반발하고 있고, 일부 구체적 정황까지 드러나 있는 상황이어서 이 전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만 겨냥한 수사에 힘이 실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청와대는 18일 박수현 대변인이 논평을 내고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언급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고 밝혔다.

    박수현 대변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 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 처럼 표현한 것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모욕이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역임하신 분으로서 말해서는 안될 사법 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 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 했다.

    박 대변인의 이같은 언급은 전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성명에 대한 반박이다. 이 전 대통령은 삼성동 사무실에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의혹 수사에 대해 관련 입장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이 전 대통령은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의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한 이를 위한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 두 대통령의 논쟁 핵심은 '정치보복이냐 '정당한 수사이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에 대한 수사범위를 DJ·노무현 정부로 확대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이제 문재인 정부는 반박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동안 여권은 DJ·노무현 정부는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유용한 사례가 없다는 식으로 반발을 무마시켜왔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그동안 밝혀왔던 자료를 살펴보면 DJ-盧 정권에서도 특활비 의혹이 몇차례 제기된 바 있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2001년 3월 10일 김옥두 의원의 부인 윤영자씨가 분당 파크뷰 아파트 3채에 대한 분양금 1억3000만원을 납부했는데, 이 중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17장이 국정원 계좌에서 발행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수표 17장의 번호 일체, 검찰의 수사 착수 건의 문건, 그리고 당시 국정원 자금 흐름의 전체 맥락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옥두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권력 핵심층이었다.

    장 대변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게도 청와대의 특수활동비로 보이는 돈이 흘러간 의혹이 있다"고 했다. 박연차 전 회장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2005년 1월과 2006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94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과 현금 3억원을 건넨 사건이다. 정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2004년 1월부터 2007년 7월까지 12억 5천만원의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횡령한 혐의로 징역 6년에 추징금 16억 4400만원을 신고 받았다.

    장 의원은 "권양숙 여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재판부에 3억원을 정상문 비서관에게 받아 빚을 갚는데 썼다고 진술했다"며 "권 여사가 받았다는 3억원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가 아닌 청와대 특수활동비 중 3억원이 비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게 합리적 의심"이라고 주장했다.

    김진태 의원 또한 지난 12월 8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100억원이 북한으로 넘어간 사실을 진술한 전 오마이뉴스 편집장의 발언을 폭로하기도 했다. 

    해당 편집장은 국정원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특수활동비 40억 원을 상납했다는 보도에 대해 "우려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며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은 DJ정부 때 없어졌다가 노무현 정부때 부활했다"고 했다.

    이어 "지금 문재인 청와대에서도 특활비를 사용한 참모들이 있다"며 "청와대의 386 술값부터 북한에 준 100억원까지 김만복 (전 국정원장을) 조사하면 다 나온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재만 안봉근만 조사할게 아니라 이런 것도 조사해야하는게 아니냐"며 "막 잡아넣고 싶어 탈탈 털다보니 나오니까 영장청구하는데 그게 부메랑이 돼 다 돌아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은 그동안 검찰의 특활비 수사에 대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긴 했지만, 이를 전직 대통령을 옹호하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해 왔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감정적으로 받아친 이상 한국당도 본격적으로 노무현 정부를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날 수원에서 가진 신년인사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 같은 말씀을 했다"며 "아주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주장에 '과거 노무현 정부는 그런 특활비 유용을 한 적 없다'는 냉정한 반박도 아닌, 감정적으로 발끈한 모습을 보인 것은 오히려 여론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야권은 보고 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성명이 발표되자마자 지난 정부에 대한 수사도 개시할 것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장제원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분노 발언'이 전해지자 마자 "왜 정치보복 논란이 생겼는지 냉정하게 생각하기 바란다"며 "정치보복이 아니라며 DJ,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전희경 대변인도 "문재인 정부 논리대로 특활비가 범죄라면 좌파정부 특활비도 수사하는 것이 정의이고 공평한 것"이라며 "지난 9개월 동안 정치보복에만 매몰돼 온 것을 봐온 국민들께서는 문재인 정부가 전임정부 전전임 정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냉철한 시각으로 지켜보고 계신다"고 언급했다. 

    난감해진 쪽은 검찰이다. 정치적 쟁점으로 번질 경우 검찰의 운신의 폭도 좁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부분 수사를 이어온 입장에서 유야무야 수사를 끝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집사격인 김백준 전 청와대 기획관 등 측근들을 구속수사 중이다.

    청와대는 더이상 이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확대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시간 단축을 위해서라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정치적 고려를 통해 인내한다는 것은 국민 불안과 혼란의 시기를 길게 늘릴 뿐"이라면서도 "청와대와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