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국민의당 호남당원들, 安에 등돌리고 신당 요구하는 까닭은
  •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대한 호남의 실망이 극에 달했던 2015년 말, 천정배 전 대표의 국민회의, 박주선 국회부의장의 통합신당, 박준영 의원의 신민당 등 많은 신당들이 "호남정치 복원"을 외치며 태동을 꾀하고 있었다.

    11월 29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렸던 통합신당의 창당추진위원회 출범식에는 3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4층에서 출범식이 있었는데, 미처 행사장에 들어서지 못한 광주시민·전남도민들이 1층부터 3층까지 복도 공간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게 장관이었다.
  • ▲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조배숙 대표와 중진의원들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조배숙 대표와 중진의원들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어떻게 하면 국민의당이 사느냐, 너나없이 자고 일어나면 고민"

    11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를 다시 찾았다.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의 광주·전남당원간담회는 2층 소회의실을 세 개 합친 공간에서 300여 명의 당원들이 모인 가운데 치러졌다.

    천정배 전 대표는 지난 8일 "안철수 대표가 추진하는 합당은 광주시민들 여론에서는 거의 범죄시되고 있더라"며 "심각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거의 모든 광주시민들이 일치해서 말했다는 것을 보고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반안(반안철수) 정서는 2015년 연말 당시의 반문(반문재인) 정서처럼 끓어오르지는 않는 듯 했다.

    모인 인원이 적은 것이 혹여 광주·전남의 관심에서 국민의당이 완전히 멀어졌다는 뜻은 아닐까. 문재인 대통령에게 90% 이상의 국정수행 지지를 보여주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압도적인 이 권역에서 국민의당이 '관심밖'이 된 것은 아닐까.

    이날 간담회장에서 만난 당원들은 비록 수는 적어도 당에 대한 애정이 매우 높았다. 핵심지지층(코어)이 튼튼한 정당은 언제든 재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의당과 호남 민심은 적어도 '결별'하지는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40대 여성 하모 씨는 "여기 주민들은 왜 (국민의)당이 이렇게까지 가느냐고 하며 너무 안타까워한다"며 "서울 분위기와 여기 광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70대 남성 최모 씨도 "어느 때보다도 우리 호남이 위기"라며 "어떻게 하면 국민의당이 사느냐, 너나없이 자고 일어나면 그런 고민을 한다"고 전했다.

    호남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이 많이 낮아진 것과 관련해서도, 한 60대 남성 당원은 "지지율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이 남성은 "문재인정부도 2년이 지나봐야 성공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며 "지금은 매 그 돈으로 선심성 정책만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개중에는 "제3당이 있어야 호남이 살고, 국민이 산다"는 반응도 있었다. 호남이 과거 민주당 1당 체제에서 국민의당과의 경쟁체제로 변모하면서, 이낙연 국무총리 등 호남 출신이 대거 등용되고 무안국제공항 경유 호남고속선 2단계 노선이 조기 확정되는 등 유리한 여건이 조성된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듯 했다.

    정동영 의원은 이날 당원간담회에서 "일간지들이 국민의당이 호남예산과 예산국회를 엿바꿔먹었다고 비판했을 때, 많은 분들이 국민의당의 존재의의를 발견했다"며 "국민의당이 있으니 우리 (호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걸 체득했을 것"이라고 이 점을 파고들었다.
  • ▲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장병완 의원이 정동영·박주현·최경환 의원 등 동료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장병완 의원이 정동영·박주현·최경환 의원 등 동료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대통령감이라면 정체성 훼손하더라도 따라갈텐데…"

    국민의당에 대한 여전한 애정을 가지고 모인 당원들이었지만, 바른정당과의 중도통합을 추진하는 안철수 대표에 대해서는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그 기저에는 안철수 대표가 호남 출신이 아닌데도 대권에의 가능성을 보고 밀어줬지만, 이제는 그 가능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한 정서가 깔려 있었다. 의원과 당원들을 끌어당기는 이른바 구심력이 사라진 것이다.

    70대 남성 김모 씨는 "지금은 (안철수 대표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단정했다. 50대 남성 조모 씨도 "TV토론에서 신선한 이미지가 깡그리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느냐"며 "중도보수로 가더라도 (대통령)감이면 정체성을 훼손하더라도 따라갈텐데, 대통령감이 아니니 따를 필요가 없다"고 부연했다.

    60대 남성 당원도 "지난 대선에서 2위도 못하고 한나라당(자유한국당)한테 큰 표 차이로 지는걸 보면서 실망이 컸다"며 "반성의 시간을 가질 줄 알았는데, 당대표에 나오고… 지금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문재인보다도 더 큰 패권에 사로잡혀 있다"고 절망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간담회에 참석한 광주·전남당원들은 안철수 대표가 추진하는 바른정당과의 '중도통합'에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김 씨는 "통합이 정상적으로 되면 되는데, 바른정당만 위해주는 꼴이니 마이너스"라며 "표가 희석될테니 통합은 안 되고, 똘똘 뭉쳐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60대 남성 당원도 "호남과 경상도는 정서가 다른데, 왜 유승민한테 붙어서 안달복달하는지 모르겠다"며 "호남이 아니면 국민의당은 없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조배숙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조배숙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안철수가 물러나면?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 안해봐"

    박지원 전 대표는 김대중컨벤션센터가 반문 정서로 들끓던 시절, 신당 창당 성공의 3대 조건을 제시한 적이 있다. 당시 박지원 전 대표는 신당을 창당하려면 △국민을 설득할 명분 △국민이 바라볼 수 있는 대권주자 △돈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국민을 설득할 명분은 통합반대파가 운동본부를 조직해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다. 이날의 당원간담회도 명분을 쌓는 과정 중의 하나다.

    박지원 전 대표는 이날 간담회 직후 취재진과 만나 "국민들은 늘 동서화합·야권통합을 좋아하고 분열을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는 명분을 축적하고 있다"며 "개혁신당 창당의 명분을 만들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명분과 돈은 갖춰진다고 보면, 신당 성공의 마지막 요건인 대권주자는 어디에서 마련해올 수 있을까. 이 자리에 모인 당원들도 그 점에 대해서는 마땅한 생각을 내놓지 못했다.

    최 씨는 "안철수 대표가 물러나면?"이라고 되묻더니, 곰곰히 고민하다가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라고 토로했다.

    이렇듯 대안이 마땅치 않다보니, 일각에서는 개혁신당이 창당하면 더불어민주당에 흡수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로 안철수 대표를 중심으로 한 통합찬성파의 주요 공격지점이기도 하다. "중도통합을 반대하는 통합반대파는 민주당에 당을 갖다바치려고 한다"는 공격이다.

    이와 관련해, 하 씨는 "민주당과 통합은 전혀 언급하는 사람이 없다"며 "처음에 (당을) 만들었던 초심 그대로 가면 된다"고 잘라말했다.

    하지만 이날 본지 취재진이 간담회장에서 접촉한 당원들 중 조 씨는 "우리나라는 양당 체제가 체질"이라며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중도가 없기 때문에 민주당과 합당해야 맞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운동본부 조배숙 대표와 박주현 최고위원은 통합찬성파의 공격을 의식한 듯, 당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어떤 통합도 절대 생각할 수 없다"며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 ▲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천정배
 전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천정배 전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박지원 "국회의원이 문제가 아니라, 당원들이 절규"

    2015년 연말과 비교해서는 다소 초라한 추동력이 모여 있지만, 다시 한 번 신당이 태동하게 되는 결과가 올까.

    장병완 의원은 이날 "신당 창당과 전당대회 저지 중에 어느 부분에 무게중심이 있느냐"고 자문하더니 "전당대회가 무산된다면, 안철수 대표에게 책임을 물어 새로운 지도체제를 수립할텐데 그 때는 신당 창당이 필요없다"고 잘라말했다.

    반면 "지방선거가 며칠 안 남았기 때문에 출마를 희망하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굉장히 시급하게 상황이 정리돼야 한다"며 "기득권에 매몰돼 합당 결정이 나더라도 못 이기는 척 따라가는 게 아니라, 신당 창당을 불사한다"고 정리했다.

    결국 전당대회 저지와 신당 창당 준비를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은 전대 저지가 선(先)이고 신당 창당은 후(後)인 셈이지만, 당원들은 신당 창당을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는 듯 했다.

    60대 여성 김모 씨는 "(안철수 대표가) 밀고가면 탈당해서 새 당을 만들어야 한다"며 "(호남이 신당을) 100%로 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씨도 "통합이 강행되면 신당을 만드는게 광주정서에 부합한다"며 "이념이 다른 사람들끼리 같이 가는 것은 사당(私黨)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일부에서는 신당의 지도부까지 앞질러 언급하기도 했다. 한 60대 남성 당원은 "3선~4선한 의원들 중에서 (신당 대표를) 당원들이 선거로 뽑으면 된다"며, 박주선 부의장을 거론하더니 "호남에서 당대표는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신당 추진의 동력이 밑바닥 당원들로부터 먼저 앞장서 올라오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이날 "이 이상 못 기다리겠다"며 "여러분을 위해서 개혁신당을 반드시 창당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선언한 박지원 전 대표는 자못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박지원 전 대표는 이날 간담회장을 나설 때,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은 당원들이 얼마나 절규했는가"라며 "국회의원이 문제냐"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