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논란’ 의식했나, 몸 낮춘 페이스북...우리 정부에 먼저 손 내밀어

방통위 ‘실정법 위반’ 조사 결과 발표 앞두고 본사 수석부사장 방한

전상현, 임혜진 기자 | 최종편집 2018.01.11 16:45:20
▲ 10일 케빈 마틴 페이스북 수석부사장이 방통위를 방문해 이효성 방통위원장을 만났다. ⓒ방통위 제공

 

‘통신망 공짜 이용’ 및 ‘탈세’ 논란을 빚은 글로벌 ICT 기업 페이스북이 ‘한국 법을 준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페이스북은 국내 이용자들의 거센 비난을 의식한 듯 ‘망 이용료’와 관련해서도 ‘통신사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뜻을 나타내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국내 통신기업과 페이스북 간 벌어진 ‘통신망 무임승차’ 갈등이 조만간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미국 FCC 위원장을 지낸 케빈 마틴 본사 수석부사장을 국내로 보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을 면담하고 국내 스타트업을 위한 구체적 지원 계획을 밝히는 등 한결 부드러워진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면담에 나선 케빈 마틴 부사장은 2001년부터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으로 일했으며 2005~2009년에는 FCC 위원장을 지냈다. 경력에서 알 수 있듯 미국 통신업계의 막후 실력자로 2015년 페이스북에 영입됐다.

페이스북이 본사 고위 임원을 직접 보내 우리 정부에 먼저 손을 내민 주된 이유는, ‘망 이용료 무임 승차 논란’으로 악화된 국내 여론 달래기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페이스북코리아 대표이사 등은 2016년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 의원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한동안 먹통신세를 면치 못했던 SK브로드맨드· LG유플러스 고객의 페이스북 이용이 국감 당일 정상화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페이스북 측이 국감을 의식해 한시적으로 망 이용을 정상화시킨 것 아니냐는 추궁도 이어졌다.

특히 답변에 나선 페이스북코리아 임원이 “접속 경로 변경은 KT가 결정했다”고 답하면서 위증 논란도 벌어졌댜. 같은 날 답변에 나선 황창규 KT 회장은 페이스북코리아 측의 답변에 “우리는 그런 권한이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나빠진 국내 여론을 의식한 듯 마틴 부사장은 이효성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최첨단 ICT 환경이 갖춰진 한국은 페이스북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라며 국내시장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페이스북이 화해 의사를 밝히면서 갈등은 봉합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일을 거울삼아 기술 발전 속도를 못 따라가는 ICT 관련 법제의 조속한 손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힘을 얻을 전망이다.

◆갈등 부른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통신망 공짜 이용 논란’은 새로 바뀐 제도에서 비롯됐다.

페이스북과 같은 해외 사이트를 이용하는 국내 이용자들은 ‘캐시 서버’라 불리는 시스템에 접속해야 한다. 캐시서버는 이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콘텐츠와 테이터를 최대한 가까운 곳에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이용자들을 위한 페이스북의 캐시서버는 KT 서울 IDC센터에 있다. KT 고객뿐만 아니라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가입 고객도 이 서버를 이용해 페이스북 서비스를 즐겼다.

문제는 2016년 말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가 변경되면서 불거졌다. 국내 통신서비스 기업 간 분쟁 및 불공정거래 방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제도는 해당 기업이 상대방 통신망을 이용하는 경우, 비용과 이용방법·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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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도입된 이 제도에 따르면, 인터넷망에 접속하는 통신사업자는 망의 규모·각사 인터넷 접속환경 등을 기준으로 ‘A·B·C 등급(계위)’ 평가를 받는다. 사업자는 그가 속한 각 ‘계위’에 따라 정해진 ‘용량’을 기반으로 상대 망 사업자에게 접속료를 지급한다.

사업자간 연동용량은 평균 3,000Gbps 수준이며,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는 모두 ‘1계위’에 속해 동등한 위치에서 접속료를 산정한다. 제도의 핵심은 ‘용량 기반’(capacity-based) 정산 체계에 있다. 즉, 실제 트래픽이 최대 용량에 미달하거나 심지어 아예 없는 경우에도, 최대 용량 기준 접속료를 상대 망 사업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정부는 2016년 말 제도를 변경, 트래픽 발생의 주체가 상대 망 사업자에게 접속료를 지급하도록 했다. 여기서 모순이 생겼다.  페이스북 캐시 서버 관리를 위탁받은 KT는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의 관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치’에 있다. KT는 지금까지 두 회사의 망에 접속해, 각 회사 가입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기존 제도라면 3개 회사의 ‘계위’가 동등하기 때문에 접속료 정산에 문제가 없었지만, 바뀐 제도아래서는 KT가 SK브로드밴드 및 LG유플러스 측에 ‘망 접속료’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캐시 서버를 위탁 관리 중인 KT가, 트래픽을 발생시킨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바뀐 제도로 뜻밖의 지출이 발생한 KT는 두 회사에 지급해야 하는 망 이용료가 급증하자 페이스북에 문제를 제기했다. KT가 SK·LG 측에 지출하는 망 이용료 상당을 추가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KT의 요구를 받은 페이스북 측은 서버 임대료 이외의 망 이용료 지급에 난색을 표하면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각각 별도의 캐시서버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페이스북과 SK 측의 협상이 결렬됐고 페이스북 은 SK·LG 가입고객의 접속경로를 기존 KT 캐시서버에서 홍콩 서버로 돌렸다.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가입 고객들은 접속 경로가 변경되면서 큰 불편을 겪었다. 처리속도가 느려지면서 서비스 장애를 호소하는 민원도 급증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5월 ‘페이스북의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 지난 4일 마무리 한 것으로 알려졌다.

▲ 페이스북 로고.ⓒ뉴시스

 

◆부드러워진 페이스북, 1년 전과 다른 태도

갑작스런 접속경로 변경으로 국내 누리꾼들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은 페이스북 측은, ‘갑질 논란’으로까지 확산된 망 이용료 문제부터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케빈 마틴 부사장은 “고품질 고용량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페이스북 입장에서는 네트워크 속도와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한국통신사업자들과의 망 이용료 협상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측의 태도는 국내 기업의 ‘망 이용료’ 추가 지급 요구를 거절하면서, 서비스 접속을 끊었던 1년 전과 확연히 다르다. 

◆탈세 논란에 “한국 조세법 준수” 강조

이날 면담이 주목받은 이유는 더 있다. 그 동안 페이스북은 꾸준히 탈세 의혹을 받아왔다. 한국 내 매출을 페이스북 아시아·태평양 본부 등으로 들려 고의로 세금 납부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케빈 마틴 부사장은 “(페이스북이) 수익을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키로 한 25개국에 한국도 포함돼 있다”면서 “한국 조세법에 따라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스타트업 지원 계획도 구체적으로 내놨다. 올해 1분기까지 경기 판교에 스타트업 지원 기관인 '이노베이션랩'을 세워, 벤처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효성 위원장은 페이스북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한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국내 투자 및 창업 지원 등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방통위의 접속 장애 실태조사가 면담의 계기가 된 것 같다”며, “페이스북이 전향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실제 협상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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