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나라 앞날 어두워...이제라도 최저임금 인상 제동 걸어야"
  • ▲ 정부가 국고 3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일자리 안정자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자리 안정자금 홈페이지 캡처
    ▲ 정부가 국고 3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일자리 안정자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자리 안정자금 홈페이지 캡처

    소상공인·영세상인의 최저임금 인상분 지원을 위해 정부가 예산 3조원을 투입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와 같은 대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경제전문가들은 "정책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에 얽매이면서 쏟아져 나오는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의 사후처리를 급히 하려다보니 일자리 안정자금이라는 사상초유의 정책이 나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올해 첫 발을 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단순 민간 최저임금 지원에 국고 3조원을 투입하는 일자리 안정자금과 같은 무대포식 정책 집행이 차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에 상응하는 사회 부작용을 다방면으로 검토하거나 균형 있고 정제된 지원 정책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 기준도 모호한 최저임금 1만원의 허상에만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올해 멈출 수 있을까, 논란의 '일자리 안정자금'

    지난 2일부터 접수를 시작한 일자리 안정자금은 정부가 올해 최저임금 7,530원에 부담을 느끼는 30인 미만, 월190만원 미만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에게 근로자 1인당 최대 13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인상분의 나머지는 사업주가 부담해야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올해 한시적으로 진행된다"고 했으나, 다른 정부 관계자는 "차후 상황에 따라 진행 과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년 7.3%의 2배를 웃도는 16.4%의 상승폭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한 데다, 거액의 세금을 투입해 민간에 직접 임금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일자리 안정자금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왔다.

    또한 정부가 고용주에게 일자리 안정자금 지급을 중단할 경우 근로자는 해고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2조9,707억원 규모의 올해 일자리안정자금 예산 역시 내년·내후년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 아래, 이미 연평균 15% 이상의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한번 시행한 복지정책을 폐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장 내년부터 일자리 안정자금을 폐지하거나 2019년 최저임금 인상폭에 맞춘 예산 확충이 부족할 경우, 이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조삼모사'(朝三暮四)였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EITC 확대가 일자리안정자금 대안?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과 같은 실비 직접 지원방식의 대안으로 EITC 확대·사회보험료 지급 연계 등 간접지원방식으로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근로 장려를 위한 조세 특례'에 따라 2008년부터 시행된 EIPC는 정부 차원에서 근로빈곤층에 대한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EIPC의 경우 각 가구 연간 총소득을 합산해 단독 1,300만원, 홑벌이 가족 2,100만원, 맞벌이 가족 2,500만원 미만의 근로자에게 각각 연간 최대 77만원, 185만원, 230만원을 근로장려금으로 지원한다.

    기획재정부의 '2018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정부는 2019년 이후 일자리 안정자금 예산을 3조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편성하고, 현행 직접지원방식 제도를 EITC 확대 등 간접지원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추진 계획을 마련해 진행 상황을 7월까지 국회에 보고한다.

    경제전문가들은 이 지침에서 정부가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 예산을 3조원으로 묶어둔 문장인 '2019년 이후 일자리 안정자금 예산은 3조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편성한다'를 주목하고 있다.

    만약 내년 최저임금 상승폭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에서 이뤄진다면, 일자리 안정자금 산정 범위인 예산 3조원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뒤집어 해석해 2019년 이후에도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 예산을 3조원으로 동결한다는 것은, 정부도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으로의 인상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내년 상승폭이 올해처럼 높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제는 정부도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의 부작용을 인지하고 어느정도 제약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기업의 사정과 근로자의 생산성에 맞춰 자율적으로 임금을 협상하고 그렇지 못하는 경우에는 도와주는 복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생활안정자금을 위한 공적보조제도의 강화, 가계소득 안정 정책, 가계소득을 판단해서 지원하는 EIPC 등을 보다 현실화해서 예산을 합리적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과 EITC 관계없어…일자리안정자금 폐지해야"

    경제전문가들은 "만약 최저임금이 계속 이런 식으로 오르고, 정부가 이를 세금으로 메우려 한다면 나라의 미래가 암담할 것"이라며 싸늘한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 사업은 폐지해야 한다"며 "일자리 안정자금과 대체하겠다는 EITC는 결이 다르고 최저임금과도 큰 관계가 없다"고 성토했다.

    EITC는 가구의 연간 총소득을 합산해 가구별로 근로장려금을 지급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EITC 수혜자는 줄어들게 된다. 반면 일자리 안정자금은 기준만 충족된다면 사용주가 실비로 수령해 최저임금 근로자에게 1명에게 지급된다. 따라서 두 정책은 지급대상과 지급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상황이나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감안하지 않고 마치 한국이 적게 주는 것처럼 호도해서 무리하게 올린 것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이제와서 일이 커지니까 3조(일자리 안정자금)로 메우다가 여론이 나빠지니 EITC로 피하려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조동근 교수는 "일자리 안정자금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렸다고 자인(自認)한 것인데 그러면서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며 "올해라도 정부가 과속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린 이후 그에 맞는 정책을 세금을 투입해서 진행하려다 보니 부작용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EITC는 빈곤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나라가 도입한 정책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기 전에 EITC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했어야 했다"며 "하지만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최우선 타겟으로 잡고 그에 맞는 지원 정책을 뒤늦게 마련하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영훈 실장은 "저소득 가구의 소득을 올려 빈곤을 해결하는 정책이라면 일자리안정자금 이외 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먼저 논의했어야 했는데, 현 상황은 정부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국고(國庫) 상황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은 기본적으로 가계소득에 관계 없이 비숙련된(unskill-biased) 사람들이 나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받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잣집 아들도 혜택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왜 국가가 세금을 가지고 모든 민간 임금을 보전해주느냐. 지금 정부는 국고는 생각하지 않고 지출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천문학적인 국고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박동운 교수는 올해 정부의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안정자금 도입으로 인해 △30인 이상 사업장 기업쪼개기 △최저임금 일자리 및 고용률 급감 △자영업자 폐업 속출 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지금이라도 문제를 시정하지 않는다면 나라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며 "이제라도 지역·업종별 차등임금제 등 해외에서 도입하고 있는 균형있는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최저임금 상승분 지원 전환 정책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내부적인 논의는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의 보고기한(7월)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 예단해 말씀드리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부처에서 단독으로 뭘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부처 실무선에서 함께 검토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