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400명 소환조사하고도 주요 혐의 대부분 무죄...‘수사 부실’ 논란
  •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22일 나온 ‘롯데그룹 총수 일가 비리 의혹’ 1심 공판은 검찰사(史)에 흑역사로 남을만한 수치다.

    검찰이 이 사건 최대 성과로 꼽은 700억대 증여세 포탈 혐의는 물론이고, 신동빈 회장에게 적용한 롯데기공 일감 끼워넣기 및 부실 기업 인수·유상증자 관련 배임 혐의도 무죄판결이 났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에 대한 주요 혐의가 대부분 무죄로 나오면서,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줄줄이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대규모 전담팀을 꾸려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4개월 동안 무려 10번이 넘는 압수수색과 400명이 넘는 전·현직 임직원을 소환조사한 뒤, 신격호 총괄회장과 두 아들, 신 총괄회장의 내연녀 등을 일괄 기소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법원 판결은 검찰에게 당혹감을 넘어 충격을 추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유죄로 나온 부분도 사실상 ‘별건 수사’를 통해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 검찰 특유의 저인망식 기업 수사 관행이 다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징역 10년, 1천억원의 벌금을 구형한 신동빈 회장에게 재판부가 징역1년8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내린 부분은 뼈아프다. 특히 700억대 증여세 포탈 혐의에 대한 재판부의 무죄 판단은, ‘검찰이 처음부터 사안을 헛짚었다’는 법조계 안팎의 비판에 힘을 실어준다.

    검찰 사정에 밝은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 일가에 대한 수사는 ‘총수 일가의 비자금 의혹’이 계기가 됐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거액의 비자금을 차명으로 조성했으며, 이 중 일부를 신 회장이 사용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신 총괄회장의 비자금이 조세피난처 은행에 예치돼 있다는 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검찰은 대규모 압수수색과 관계자 소환조사에도 불구하고 비자금 수사가 제자리를 맴돌자, ‘증여세 포탈’로 방향을 틀었다.

    롯데가 일가 비리 사건 1심 공판 최대 쟁점은, 신동빈 회장의 실형 선고 및 법정구속 여부였다.

    검찰이 신 회장에게 업무상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 징역 10년에 1천억원의 벌금을 구형하면서, 법원 주변에서는 신 회장의 실형 선고를 예상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상당한 수준의 중형을 구형했다는 것은 검찰이 혐의 입증에 그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받아들여졌다.

    700억대 증여세 탈루 혐의를 받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구속 여부도 주목을 받았다. 고령과 지병을 고려할 때, 실형이 나오더라도 법정구속은 면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했지만, 검찰이 대규모 전담팀까지 꾸려 집중적인 수사를 벌였다는 점에서 중형 선고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이런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서울중앙지법 24형사부(김상동 부장판사)는, 신동빈 회장에게 1년8월의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2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했다. 신 총괄회장에게는 징역 4년에 벌금 35억원을 병과했지만,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신격호·신동빈 회장에게 적용한 9가지 혐의 가운데, 서미경·신영자 두 사람에게 롯데시네마 매점을 부당하게 임차한 사실, 계열사에 근무하지도 않은 서씨와 그 자녀에게 공짜 급여를 지급한 사실만을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신 총괄회장이 2006년 페이퍼컴퍼니를 이용, 서미경씨와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차명주식을 증여하면서 조세를 포탈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각각 무죄와 면소(免訴)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수사 부실은 판시사항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가 조세포탈 혐의다,

    서미경씨에 대한 증여 관련 조세포탈 혐의는, 세법상 서씨를 국내 거주자로 볼 수 없어 무죄 판결이 났다, 증여재산이 일본에 있는 주식이므로, 세법 상 증여세 부과를 위해서는 수증자가 국내 거주자라야 한다. 재판부는 서씨가 생활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영위하고, 이미 일본 영주권을 취득한 사실 등을 볼 때 서씨를 국내 거주자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신영자 전 이사장에 대한 증여 및 이에 따른 조세포탈 혐의도, 공소시효 10년이 지난 후 공소가 제기돼 면소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에 대한 공소가 부적당한 경우, 혐의 성립 여부를 따지지 않고 소송절차를 끝내는 면소판결을 내린다.

    검찰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급여 지급을 횡령으로 본 부분도 수사 부실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가 신 전 부회장을 임원으로 선임, 급여를 지급한 것을 업무상횡령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신 전 부회장이 후계자 지위에서 신 총괄회장을 보좌하며 실제 그룹 경영에 관여한 점, 다수 계열사에 이사로 등재돼 경영상 책임을 직접 부담한 사실도 무죄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