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 무릅쓰고 靑 앞으로..."文케어는 의료체계 뭉개는 포퓰리즘"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문재인케어' 저지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한 '국민건강수호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문재인케어' 저지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한 '국민건강수호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하얀 눈 위에 하얀 의사 가운은 없었다.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는 전국 의사들이 두꺼운 패딩을 차려 입고 차디찬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국민건강수호는 의사와 함께'라고 적힌 띠를 어깨에 둘러맸다. 수많은 의사들의 발걸음에 쌓였던 눈은 순식간에 녹아갔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국민건강수호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문재인 케어의 '비급여 전면 급여화'는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한국 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정부는 문케어가 추후 천문학적인 재정이 소요되고 금새 고갈될 것임을 국민에게 솔직히 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8월 9일 문재인 정부는 미용·성형 외 모든 의학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에 편입시키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를 발표했다.

    '문재인 케어' 뿐만이 아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회에서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까지 발의되자 전국 의사들은 정식 대응을 위해 비대위를 구성하고 집회를 기획했다. 비대위 측은 이날 대한문 집결 인원을 최소 3만여명으로 추산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집회 전에 다른 단체들로부터 함께할 수 있냐는 연락을 많이 받았는데 정중히 거절했다"며 "여러 단체가 섞이면 본질이 호도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순수 의사·의대생들만 모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비대위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크게 △급여의 정상화(공정 수가 산정·1차의료 살리기) △비급여의 급여화 및 예비급여 원점 재검토(중증의료·필수의료·취약계층 보장성 강화·급여전환위위원회 신설 등) △한의사의 의과 의료기기 사용 불가(의료법상 면허종별에 맞는 의료행위 규정 및 의사결정 투명화·한의약 정책과 폐지 등) △소신진료를 위한 심사평가체계 및 건보공단 개혁(심사실명제·급여기준 및 심사기준 전면 수정·임의적 건보공단 현지확인 근절 등)이다.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문재인케어' 저지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한 '국민건강수호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문재인케어' 저지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한 '국민건강수호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우리는 의료노비가 아니다…"정부 믿은 애꿎은 국민들에게도 피해갈 것"

    의사들은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비급여의 전면급여화'로 인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低)수가 진료 희생과 고통을 강요 받아 왔다는 입장이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우리 의사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 곁을 지켜왔고, 환자를 버릴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살아왔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며 "우리가 의료노비도 아니고, 어째서 우리들이 정부에 의해 자율성을 통제받고 직업 이기주의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더이상 희생을 강요 당하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임수흠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회장은 "정부는 우리 의사들이 수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전면 급여화를 통한 보장성 강화 정책 '문재인 케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당장 국민들에게 박수만을 받을 목적으로, 국민 건강과 우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이런 무책임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에 우리들의 진심을 알리고자 모였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정부는 지난 의약분업을 통해 우리에게서 조제권을 앗아갔고, 이제는 허점투성이인 '문재인 케어'로 생존권까지 위협하려고 한다"며 "사회주의적 의료시스템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무책임한 정부만 믿었던 국민과 환자들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문재인케어' 저지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한 '국민건강수호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문재인케어' 저지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한 '국민건강수호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한의사들, 의료기기 사용하고 싶다면 의과대학 가라"

    비대위는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허용 법안 발의를 성토하며 의과·한의과 건강보험 분리와 한방 행위의 과학적 검증·성분 공개·처방전 의무화 등을 요구했다.

    이용민 의료정책연구소장은 "그들도 우리를 '양의사'라고 부르니 우리도 '한방사'라고 부르겠다"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들을 의사 대접해주는 대한민국은 한방사들의 천국"이라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간호사가 단독으로 개원하겠다거나 조산사가 제왕절개한다는 걸 본 적이 없다"며 "그들은 이제 국회에 로비하면서 직접 입법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들의 의료기기 사용을 불허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고 덧붙였다.

    김숙희 서울시 의사회 회장도 "엑스레이와 초음파 기기 쓰고 싶은 한의사들은 우선 의과대학 들어가서 의사면허부터 따고 하시라"며 "국민들 상대로 실험하려 들지 말라"고 강조했다.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로 행진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로 행진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의사들, 청와대 앞으로…"공짜 점심은 없다"

    덕수궁 대한문에 운집한 수만명의 의사들은 오후 2시 40분경 광화문·경복궁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이 기거하는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까지 기다란 행진을 시작했다. 이필수 비대위원장과 김숙희 서울시 의사회장을 필두로 의사들은 구호를 외치며 약 1시간가량 이동했다.

    경복궁역 인근 통인시장을 거닐던 시민들이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시민들은 이들의 행진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고, 일부 시민·외국인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 효자동 주민은 "다들 진짜 의사가 맞느냐? 여기 살면서 이런 걸(집회 행진) 많이 봤지만 의사들이 하는 건 처음 봤다"며 의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효자치안센터에서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자, 이미 그곳에는 대기 중인 수십여명의 경찰 병력들과 비대위의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효자치안센터 인근은 금새 발디딜 틈도 없이 의사들로 가득찼다. 오후 3시 50분경이었다.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로 행진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로 행진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필수 비대위 위원장은 "비대위에서 수차례 요구한 끝에 정책 입안 참여자 리스트가 공개됐지만, 그 집행부들은 대부분 협의 사실을 부인했는데 그럼 대체 누구와 협의한 정책이란 말이냐"고 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재정을 투입하면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져야 하고, 많은 재정이 들면 국민 부담이 커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며 "당장 건보료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진실을 말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료계는 오랫동안 정상 수가를 요구해 왔지만,그걸 보장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온데간데 없다"며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다.

    청와대 인근 집회를 마친 의사들은 오후 4시 20분경 이동을 시작, 5시가 되기 전 대한문으로 도착했다.

    즉시 이어진 폐회사에서 이필수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제2·제3의 의사 총궐기대회가 이어질 것이고 우리는 계속 국민 건강을 위한 목소리를 낼 것을 약속한다"며 이날 집회를 마무리했다.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로 행진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로 행진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건보 재정 바닥나는 순간 '의료판(版) 베네수엘라'보게 될 것"

    운영위 천막과 도로변에 있던 일반 집회 참여 의사들은 더욱 강도 높은 목소리를 냈다.

    경상북도에서 올라왔다는 박상현(가명·외과의)씨는 푸른 띠를 두르고 시청역 3번 출구 근처에서 궐련형 담배를 연신 피우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문재인 케어'에 대해 묻자 "문 대통령은 감언이설 비슷하게 국민을 속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걸 하면 대부분 국민들은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지속 가능성이 없다"며 "건보 재정이 바닥나는 순간 베네수엘라처럼 디폴트(채무불이행·파산) 하는 일밖에 남지 않을 것"고 덧붙였다.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문재인케어' 저지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한 '국민건강수호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문재인케어' 저지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한 '국민건강수호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수원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하진석(가명·외과의)씨도 "문 대통령은 마치 자신의 임기가 5년인 게 아니라 대한민국 임기가 5년인 것처럼 하고 있다"며 "당장 국민들에게 달콤한 말만 하고, 나중에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국종 교수를 존경한다는 하씨는 "잠 못자고 가정생활도 포기해가면서 생명을 살리고 있지 않나? 나라 분위기가 그런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고 지원도 아낌없이 해줘야 하는데 (이국종 교수) 본인 스스로가 자신이 '적자의 원흉'이라고 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행진을 마치고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던 중년의 의사는 뼈있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를 비판하는 (일부) 국민들은 우리들에게 돈도 잘 벌고 남들보다 잘 살면서 의사가 돈좀 그만 밝히고 그만 인술(仁術)을 베풀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도 삶이 있고 가정이 있다. 먹여살려야 할 가족이 있다. 의사라고 다 잘 사는 것도 아니다. 의사 중에 신용불량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왜 우리의 희생만 강요하는지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