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걸어도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한파가 찾아왔다. 춥다고 집 안에만 있거나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서울 곳곳에 겨울을 따뜻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매서운 추위를 피해 실내에서 데이트도 하고 문화 감성을 충전할 수 있는 전시회를 소개한다.

    ◇ 피카소를 그린 화가, '미라보 다리' 주인공…마리 로랑생展

    "내가 다른 화가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마도 그들이 모두 남자들이어서 일지 모른다. 남자들이란 내게 풀기 어려운 문제와 같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이자 시인이며 북 일러스트 작가인 마리 로랑생의 국내 최초 특별전 '마리 로랑생展-색채의 황홀'이 2018년 3월 1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파리의 여성들을 화폭에 담아냈던 마리 로랑생(1883-1956)을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70여 점의 유화와 석판화, 수채화, 사진과 일러스트 등 총 16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0대 무명작가이던 시절부터 73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 작가의 삶의 궤적에 따라 추적해가는 방식을 택해 시대별 5부로 구성됐다.

    마리 로랑생은 여성 화가가 드물던 100여 년 전 미술교육기관인 아카데미 앙베르에서 '입체파의 창시자' 조르주 브라크에게 재능을 인정받으며 화가의 길을 걸었다. 이후 파블로 피카소가 무명이던 시절의 작업실인 '세탁선'을 드나들며 기욤 아폴리네르, 조르주 브라크 등의 예술가들과 교류했고 '몽마르뜨의 뮤즈'로 불렸다.

  • 세명의 젊은 여인들_캔버스에유채_1953
    ▲ 세명의 젊은 여인들_캔버스에유채_1953
    로랑생은 피카소의 소개로 모더니즘의 선구자이자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1911년 벌어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아폴리네르가 연루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고, 1년 후 아폴리네르는 실연의 아픔과 상실감을 드러낸 명시 '미라보다리'를 발표한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독일인 남작과의 결혼생활에 실패한 로랑생은 프랑스 파리로 돌아와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해 나간다. 핑크와 옅은 블루, 청록색, 우수가 감도는 회색 등을 사용해 마크 샤갈과 더불어 세계 미술사에서 색채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낸 작가로 손꼽힌다.

    히로히사 요시자와 일본 마리 로랑생 뮤지엄 관장은 "가정부였다가 양녀로 입양된 수잔 모로는 로랑생의 유지를 받들어 작품을 외부에 판매하지 않았다. 모로가 사망한 직후 제 부모님이 로랑생의 작품 600여 점을 수집해 1983년 나가노현 타네시나에서 뮤지엄을 오픈했다. 한때 문을 닫았다가 지난 7월 도쿄에서 재개관했으며, 2017년 프랑스 정부 공식 인증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대성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대표는 "로랑생은 위대한 예술가인데 말년에 20년 넘게 은둔생활을 하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그의 작품을 보면 따뜻하고 치유를 받는 느낌이 있어 많은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리로랑생展'은 연극배우 박정자가 오디오 가이드 녹음 작업에 나섰으며, 전시 기간 낭독콘서트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를 마련해 관람객 참여형 전시로 꾸며질 예정이다. 관람료 8000~1만30000원. 문의 02-396-3588.


◇ '나우시카에서 마니까지' 스튜디오 지브리 30년 역사 한눈에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을 제작한 스튜디오 지브리가 이색 전시회를 연다.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막한 '스튜디오 지브리 대박람회– 나우시카에서 마니까지'展이 2018년 3월 2일까지 89일간 펼쳐진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가 1985년 7월 설립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일본 영화 역대 흥행수입 상위 5개 작품 중 3개를 갖고 있다.  

이번 전시는 스튜디오 설립으로부터 30여 년 간 제작돼 온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최신작 '추억의 마니'까지 일본극장 개봉작 24편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속 영상, 입체, 평면 등을 소재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 전시장에는 지브리가 제작한 영화와 관련된 주요 자료들 중 홍보용 포스터, 각종 시각물, 드로잉과 미술설정, 애니메이션 레이아웃 보드, 라이선스 복제화, 캐릭터 굿즈·기획서 등 30년간의 수많은 자료들이 채우고 있다.

    테마전시로 기획된 '하늘을 나는 기계들'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에 주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비행선들을 입체조형으로 제작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특히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비행선 타이거모스호를 그대로 재현해 눈길을 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 아오키 다카유키는 지난 4일 전시 프레스오프닝에 참석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늘 '자기 반경 3m'라는 말을 강조했다. 어떤 사물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자신에게서 가까이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말에 지브리의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아이디어를 냈으며, 3m 이내의 대상을 잘 관찰한 결과 다양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이런 철학을 한국 관람객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관람료 1만~1만5000원. 문의 1566-6668.

  • [사진=예술의전당, 대원미디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