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까다로운 유권자들이 모여서 치르는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
  • ▲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와, 차기 원내대표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이주영 의원이 30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와, 차기 원내대표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이주영 의원이 30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일이 내달 12일로 결정되면서, 원내대표 경선 선거운동이 불을 뿜고 있다.

    한국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선출 당규 제14조에서는 "선거운동은 후보자등록 직후부터 선거일 전일까지 할 수 있다"고 돼 있고, 당규 제10조에서는 "후보자 등록신청은 선거일전 2일에 한다"고 규정한다.

    순수하게 당규에 따르자면, 원내대표 경선 선거운동기간은 선거일전 2일과 선거일 전일, 이틀 뿐인 셈이다. 그러나 선거운동을 정말 이틀만 하는 후보는 아무도 없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일찍 움직인 후보는 추석 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그렇게 따지면 벌써 두 달째"라고 귀띔했다.

    당규도 엄연한 정치현실과의 조화를 모색한다. 당규 제18조에서는 특히 금지되는 선거운동을 규정하면서도 '사전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지난 28일, 내달 12일로 경선일을 결정하면서부터는 사실상 2주 간의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원내대표 경선, 성향 분류 블랙리스트(?) 작성이 시작

    원내대표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난데없는 '블랙리스트'부터 만들어진다.

    당 소속 의원들의 명부를 가져온 뒤, 성향(?) 분류를 시작한다. 무조건 나를 찍을 것 같은 동료 의원은 동그라미, 절대 안 찍을 의원은 가위표, 이른바 부동층(浮動層)은 세모로 분류한다.

    A·B·C로 분류하는 등 세부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동료 의원들을 어떤 형식으로든 분류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세모(△) 내지 B급으로 분류된 의원들이 주된 공략대상이다. 동그라미(○)가 됐다고 판단이 설 때까지 몇 번이고 통화하고 만난다.

    그렇다고 동그라미(○) 의원군과 접촉하는 걸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주머니 안의 동전' 여기듯 하면 상대방의 불쾌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로 독대하는 시간을 내긴 아까우니 오찬·만찬 등을 단체로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또, 가위표(X)의 경우에도 예의상 한두 차례 만나러는 가야 한다. 가위표는 그 성격상 초·재선의원인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계파 성향이 명료해진 3선 이상 중진의원인 경우가 많은데, 아예 접촉을 않고 내버려두면 뜻하지 않은 험담이 돌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의정활동을 오래 같이 하다보면 이런저런 스토리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는 조금만 각색하면 아주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도 있기 마련"이라며 "'붙일 수는 없어도 떨굴 수는 있다'는 게 중진의원들의 험담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전했다.

  • ▲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지난 28일 차기 원내대표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홍문종 의원이 대표의원 자격으로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지난 28일 차기 원내대표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홍문종 의원이 대표의원 자격으로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네 번 필터링 거치면 남는 정책위의장 후보 몇 없어

    가끔 별표(☆)가 명부에 등장할 때도 있다. 형광펜이 그어지기도 한다. 정책위의장으로 함께 나갈 대상군이다.

    3선 이상(경우에 따라서는 재선 이상)의 정책에 능한 의원으로, 원내대표 후보 본인과 지역구 권역이 다른 의원들을 따로 분류해 후보군을 추린다. 원내대표 후보 본인이 서울·수도권이라면 영남, 반대로 후보 본인이 영남 지역구 의원이라면 서울·수도권에서 정책위의장 후보를 찾는 게 상례다.

    이 과정에서 '평판조회'가 이뤄지기도 한다. 원내대표와 한 조(러닝메이트)를 이뤄 출마하는 정책위의장이 동료 의원들의 표심(票心)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므로, 아주 신중히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새누리당 시절에 치러졌던 한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특정 정책위의장 후보가 "20표를 흩어놨다"는 말이 회자됐다. 당시 평판이 좋지 않던 의원이 정책위의장 후보가 되면서, 줄잡아 20명이 넘는 동료 의원들이 등을 돌렸다는 뜻이다.

    또다른 원내대표 경선 때에는 예산 전문가인 특정 의원을 향한 '모시기' 경쟁이 벌어졌는데, 이 의원의 나이가 적지 않다보니 나이가 훨씬 어린 원내대표 후보들과의 '짝짓기'를 부담스러워했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엄청난 경쟁 끝에 당선된 의원이 그를 '모시는데' 성공했다"며 "이것이 판세를 결정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선수(選數, 3선 이상) △정책역량 △지역구 △평판까지 너댓 단계에 걸친 필터링을 거치고나면, 정작 남는 의원은 몇 없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서로가 노리는 대상은 뻔하기 때문에, 러닝메이트를 모시는 과정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넘어 십고초려(十顧草廬)를 하기도 한다"며 "정중히 사양하는 상대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거물급 정치인이 투입되는 등 막후에서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고 전했다.

    ◆표심 사로잡기, 끊임없는 '통화와 면담'만이 답

    정책위의장 파트너의 수락을 받아내든, 동료 의원들의 표심을 사로잡든, 방법은 하나 뿐이다. 끊임없는 통화와 면담이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이 일단 출마를 내심으로 결단하게 되면, 먼저 전체 의원들에게 전화를 한 차례씩 돌리는 게 상례"라며 "이미 내심으로는 결정을 했지만, 여론을 수렴하는 듯 출마 여부에 대한 반응을 떠보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전화를 받은 상대 의원 역시 '답정너'임을 모르지 않더라"며 "'파이팅하소'라는 격려와 '잘 부탁한다'는 당부가 오가면서 훈훈히 통화가 마무리되고, 의원은 자신감을 얻는 수순"이라고 덧붙였다.

    이 한 번의 통화로 세모(△)가 동그라미(○)가 됐다고 안심하면, 원내대표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다. 만나고 또 만나야 한다. 하루에 10명 이상의 동료 의원들을 만나면서 그 와중에 틈틈이 전화까지 돌리는 의원도 있다.

    문제는 원내대표 경선이 한창 정기국회 막바지라 바쁜 12월에 치러진다는 것이다. 의원회관 사무실을 열심히 돌아도 상임위 활동하랴, 지역구 예산 끝까지 챙기랴, 바쁜 동료 의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전언이다.

    원래 원내대표 경선은 5월에 한다. 4년에 한 차례, 4월에 총선이 열리고 5월에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모여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그 임기는 1년이다. 정상적이라면 매해 5월마다 원내대표 경선이 다시 돌아온다. 5월은 국회가 한가한 시점이라 선거운동하기에도 좋다.

    그런데 왜 원내대표 경선 시점이 12월로 바뀌었을까.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정진석 원내대표가 중도사퇴하면서 원내대표 경선을 새로 치렀다. 한국당 당규 제24조는 보궐선거 여부에 관계없이 새로 선출된 원내대표의 임기 1년을 보장하고 있다. 난데없이 12월로 원내대표 경선 시기가 바뀐 까닭이다.

    참고로 더불어민주당은 다르다. 당규 제3조 2항에서 원내대표 경선일을 매해 5월의 둘째 주로 못박았다. 중도에 보궐선거가 치러지더라도 전임자의 잔여 임기만을 소화한다.

    지난 2014년 10월, 박영선 당시 원내대표가 원내 친문(친문재인) 세력들의 집요한 '흔들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사퇴했을 때, 우윤근 의원이 보궐선거에서 이종걸 의원을 누르고 당선, 이듬해 5월까지 잔여 임기 7개월 동안 원내대표를 맡은 적이 있다.

  • ▲ 자유한국당 차기 원내대표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유기준 의원이 30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토론회장에 도착해 주변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뒷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의원은 역시 원내대표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이주영 의원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차기 원내대표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유기준 의원이 30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토론회장에 도착해 주변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뒷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의원은 역시 원내대표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이주영 의원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동료 의원 표심 잡으러 주말마다 지방행에 산행까지 

    동료 의원들을 만나는 장소가 반드시 의원회관 사무실로 국한될 이유는 없다.

    의원들은 주말이면 각자 자신의 지역구로 뿔뿔이 흩어진다. 지역사무소에서 지역구민들을 상대로 '민원의 날' 만남을 갖기도 하고, 주말에 관내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들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고 축사를 한다.

    일요일 새벽에 출발하는 산악회원들을 배웅하고, 조기축구회에 나가서 공을 차며, 관내의 대형교회와 성당·사찰을 돌며 종교행사에 발품을 판다. 국회의원은 진정한 '주7일 초과노동' 업종이다.

    이를 노리고 아예 주말에 동료 의원들의 지역구를 돌며 만남을 갖는 열성파(熱誠派)도 있다. 동료 의원이 지역구 행사에 참석했을 때, 함께 나타나 지역구민 앞에서 추어올려준다. 어깨가 으쓱해지지 않을 수 없다. 세모(△)가 동그라미(○)로 바뀌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렇게 하려면 주말간 자신의 지역구를 비워야 하니 뒤통수가 따갑다"면서도 "일단 원내대표로 당선되면 그 언론 노출 효과와 정치적 영향력은 주말 몇 차례 지역구 비운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다 만회가 된다"고 자신했다.

    물론 떨어지면 아픔은 두 배다. '위너 테이크 올(Winner Takes All)의 비정한 정치세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경선이다.

    3선 이상의 중진의원들이 출마하는 자리다보니 그외에도 여러 가지 선거운동방법이 동원된다. 오찬과 만찬을 모시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동료 의원들을 모아 함께 산행을 가기도 한다.

    골프 라운딩이 동원되면 선관위에서 한푼 돌려받지도 못하는 원내대표 선거비용이 높아진다. 도회지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곳으로 모셔서 라운딩을 하면서 그린피와 캐디피도 부담해야 하고, 식사 또한 '고급진'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운딩은 수 시간 동안 함께 걸으며 공을 치고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아주 관계가 긴밀해진다는 장점은 있지만, 동반 라운딩을 할 수 있는 동료 의원이 최대 3명으로 제한된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골프 라운딩은 소요시간 대비 접촉인원을 따져보면 '가성비'가 좋지는 않다"며 "미리미리 두세 달 전부터 '밑밥'을 깔아놓는 방식이라면 몰라도, 경선일이 임박해서는 그다지 선호되는 선거운동방식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정책토론회에 "축사하겠소" 몰리는 중진의원

    원내대표 경선이 임박해서 벌어지는 특이한 풍경은 의원회관에서 초·재선 의원들이 정책토론회를 열 때, 와서 축사를 하겠다는 중진의원들이 넘쳐난다는 점이다.

    30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한국당 이만희 의원이 주최한 '농업의 가치, 헌법에 담다' 토론회에는 이주영(5선) 유기준 홍문종 신상진(4선) 김성태(3선) 의원을 비롯 한국당 의원 25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정우택 원내대표, 이주영 의원에 이어 세 번째로 축사 연단에 선 민주당 설훈 의원은 "이 자리가 자유한국당 의총 같다"고 농을 건넸다. 그 역시 원내대표 경선 출마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당 중진의원들이 몰린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소에는 초·재선 의원들이 중진의원을 모시려고 애를 쓰는 게 상례다. 최근의 사례로는 지난 22일 국회태권도장 개관식을 주관했던 국민의당 이동섭 의원의 경우가 있다.

    이동섭 의원은 이 자리에 당내 중진의원들을 참석시키기 위해, 전날 바른정당과 중도통합을 논의하는 의원총회에서도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의총 도중 박주선 국회부의장이 퇴장하자 국민의당 출입기자단이 '백브리핑'을 듣기 위해 따라붙었는데, 취재진들을 제치고 박주선 부의장을 마크하며 이튿날의 태권도장 개소식 시간을 거듭 강조하던 이동섭 의원의 모습은 취재진의 눈길을 끌었다.

  • ▲ 자유한국당 차기 원내대표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김성태 의원과 이주영 의원이 30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토론회장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차기 원내대표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김성태 의원과 이주영 의원이 30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토론회장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출마자 본인 의원실서 주최하는 토론회는 '썰렁'

    그런데 원내대표 경선이 열리면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다들 오겠다고 야단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전연락이 없었는데 현장에 불쑥 나타나는 중진의원도 있다. 평소에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다만 피곤한 것은 서로가 먼저 축사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당직 우선·선수(選數) 우선·나이 우선 등의 원칙이 있긴 하지만, 가끔 초선 의원실에서 미숙한 사회자가 나오면 원칙이 무너지면서 얼굴을 붉히게 되는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원내대표 후보들이 가급적 먼저 축사를 하려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의원회관 토론회는 오전에 열리면 10시, 오후에 열리면 2시에 하는 게 상례다.

    한날 한시에 여러 토론회가 열리면 원내대표 후보들은 '몇 탕'을 뛰기도 한다. 이 때는 빨리 '눈도장'을 찍고, 다음 토론회 장소로 옮겨가야 하는데 축사를 안한다면 모를까, 하게 된다면 당연히 순번이 빠를수록 유리하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눈도장의 단계에는 '주최한 의원과 악수'~'축사'~'단체사진까지 촬영'의 3단계가 있다"며 "이 중에 어느 단계까지 밟고 자리에서 일어날지는 의원 본인의 순간적인 판단에 달려 있는데, 보좌진이 축사를 앞당겨놓으면 의원으로서는 만족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반면 원내대표 후보인 중진의원 본인이 주관하는 토론회는 뜻밖에 썰렁한 광경을 연출하곤 한다.

    일단 출마자 본인은 다른 후보들의 리스트에서 단연 가위표(X)이기 때문에 경쟁 후보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나타날 리 없다. 초·재선 의원들은 평소라면 왔겠지만, 경선 국면이 과열되면 '특정 후보에 줄을 섰나' 하는 시선이 신경쓰여 행차를 기피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 출마자가 후보단일화의 대상으로 떠오를 경우에는 예외로, 이러한 경우에는 단일화를 이뤄내기 위해 경쟁 후보가 토론회장을 찾는 훈훈한 모습도 목격된다는 후문이다.

    ◆경선 막바지 치달으면 공들여 만든 ○△X도 갈팡질팡

    이러한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까다로운 유권자'인 의원들의 표심은 끝까지 알 길이 없다.

    의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돌릴 수도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가끔 전수조사를 시도하는 모험을 강행하기도 하지만, 언제 어떻게 흘러나갈지 모르는 취재진과의 전화통화에서 내밀한 표심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의원은 거의 없다.

    기표소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굳은 악수를 나누며 '아이컨택'을 하고나서도, 정작 기표소에 들어가서는 상대 후보를 찍는 경우도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選數)를 거듭하며 점점 자기중심적이 되기 쉬운 원내대표 후보는 기억도 못하는 옛날의 자잘한 기억들이 표심에 영향을 주기도 하니, 공들여 작성한 ○△X 리스트도 정확할 리가 없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경선일이 다가오면 매일같이 동그라미~세모~가위표를 갱신하며 표 집산(集算)을 하지만, 같은날 오전·오후로도 십수 표씩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며 "의원 본인도 경선일이 다가올수록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마음이 계속 달라지는 것도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또다른 의원실 관계자도 "'아무개 의원은 이제 됐다'며 동그라미(○)로 했다가, 다음날에는 '아직 모른다'고 다시 세모(△)로 바꾸는 등 본인도 판단이 갈팡질팡한다"며 "그러다보니 표 계산이 안정권과 낙선을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대체로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게 적중률이 높았던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원내대표 경선과 관련해 당시 낙선한 의원실에서는 최종적인 표 집산 결과, 십수 표 차이로 당선을 확신했다. 상대 후보의 '백중우세'로 기사를 내보낸 매체에 항의하고, 같은 계파의 동료 의원들에게도 집산 결과를 회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튿날 의총장에 모인 같은 계파 의원들은 투표하면서 다들 밝은 표정이었다.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개표해보니 불과 수 표차로 상대 후보의 당선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의 망연자실한 표정과 충격의 후폭풍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유권자들이고, 이들이 모여 대표를 뽑는 원내대표 경선은 지구상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라며 "결선 투표함을 까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결과를 모를 것"이라고 장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