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핵-미사일 가졌대도 무덤덤하기만 한 한국인
  • “여러분은 지금 지옥문턱에 서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나친 자유와 분에 넘치는 풍요에 취해 그 엄청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따뜻한 물속에서 죽는 줄도 모르고 죽어가는 개구리신세가 돼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뉴욕에 거주하는 동포 최응표 씨가 쓴 글의 한 대목이다.

    필자는 3년 전 뉴욕에 갔을 때 최응표 씨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세상이 엄청난 이념적-체제적 위기에 쳐했는데도 우리의 대다수 국민이 왜 그걸 모른 채 무심히 앉아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 역시 우리 사회의 무감각증(apathy)에 대해선 이상하게 생각하고서 여러 가지로 그 원인을 생각해 보곤 했다. 그 누구도 확실한 대답을 내놓진 못할 것이다.

    필자는 다만 모든 건 갈 데까지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길 뿐이다.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가졌대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한 한국인들이다.

    설마...무슨 일 나랴, 하는 식으로, 대한민국을 없애버리겠다는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가졌는데 우리는 그걸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전혀 실감하질 못하는 것이다.

    이런 판에 누가 무어라고 “큰일 났다”고 소리 질러도 그러는 그의 목만 아플 따름일 것이다.

    그래서 갈 데까지 가봐야 비로소 “어? 이런 거야?” 하고 새삼스럽게 놀라면 놀랐지, 그러기 전에는 아무리 경보음을 울려도 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최응표 씨는 이런 민심의 원인을 “지나친 자유와 풍요에 취해서”라고 분석했다.

  • 필자는 이 외에도 사람들이 의외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모른다는 점을 꼽고 싶다. 다들 우수한 국민인데, 이념 문제에 관해서는 감각이 어째 무딘 것 같다.

    우리가 자유를 공짜로 들이쉬는 공기처럼 인식해서인지, 자유란 잘 지키지 않으면 잃을 수도 있다는 아슬아슬함이랄까, 위기의식이랄까 하는 게 도무지 없어 보인다.

    여기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버리자고 하는 사람들이 그 동안 영화, 출판물, 공교육 현장, 아스팔트 현장, 미디어, SNS, NGO 활동을 통해 선전선동을 너무나 잘해놓아서 대중들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법 많이 세뇌된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농단’이란 사태가 터지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깨지는 말자” “뒤집어엎지는 말자”고 하던 관성(慣性)마저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댐이 무너진 것에나 비유할까, 이 파국은 예사 대처법으론 막을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이처럼 파국은 한 순간에 온다.

    불이 날 때도 발화는 어느 순간 확하고 일어난다.

    그 동안 누적된 것도 있었겠지만, 무엇이 무너지는 건 눈 깜짝할 사이다.

    세르비아의 황태자가 암살당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필자가 보기엔 정말 갈 데까지 가야 무슨 결말이 날 것 같다.

    그 결말은 대단히 실망(또는 절망)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 내 탓이고 우리 탓이지 남의 탓은 하나도 없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뒤집어쓰는 것이지, 일본 사람도, 중국 사람도, 러시아 사람도 미국 사람도 이엔 완전 냉담할 것이다.

    태풍이 불어 닥쳐 산이 무너진다 해서 유유창천(悠悠蒼天)이 눈 하나 까딱할까?

    천지운세, 흥망성쇠란 그런 것이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7/11/24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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