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vs 19세기 조선, 같은 점과 다른 점

文정부의 바람직한 외교안보 전략은? ①한국 상황, 구한말과 같을까?

전경웅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10.19 16:21:56

 

편집자 注: “현재 한반도 상황이 19세기 말 구한말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수 년 째 세간에 돌고 있다. 이는 2016년 1월 북한의 핵실험, 같은 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당선,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등으로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게 됐다.

뉴데일리는 창간 12주년을 맞이해 현재 한국이 처한 외교안보적 위기에 대해 되짚어 보고, 문재인 정부가 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지를 제시해 본다.

美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함. 현재 동·서해를 오가며 한국군과 합동훈련 중이다. ⓒ美로널드 레이건 함 홈페이지 공개사진.

 

지난 16일부터 美해군 ‘로널드 레이건’ 항모 강습단과 美공군이 한국군과 함께 동해와 서해를 오가며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 17일 성남 서울공항에서는 ‘2017 서울국제항공우주전시회(ADEX 2017)’가 개막했다. 여기에는 F-22 랩터, F-35 라이트닝Ⅱ 등 美공군 주요 전략무기가 참가했다. 18일 오전, 中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열렸다. 오는 11월 7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한국을 찾는다.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 일들은 단 하나의 요소 때문에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갖게 됐다. 바로 북한, 구체적으로는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과 이를 내세운 한국, 미국, 일본에 대한 협박 때문이다.

북한 김씨 왕조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한국과 미국, 일본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20년 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한국은 그동안 ‘여의도 정치판 싸움’에 골몰해 권력 쟁탈전을 치르느라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 한반도 상황은 전 국민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위기감이 고조돼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미리 감지한 사람들은 20년 전부터 “지금 상황이 구한말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지난 7~8년 사이에는 소위 ‘진보 진영’에서도 이런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 있다. 과연 21세기 한반도와 19세기 한반도가 같은지, 당시 주변국과 현재 주변국의 상황이나 국력이 같은지에 대한 점이다.

교과서와 언론은 말하지 않는 조선 멸망의 원인

한국에서는 조선왕조의 멸망과 한일 병탄을 “일본의 잔인무도한 침략에 의한 것”이라고 얼버무린다. 이런 역사 교육은 ‘국민통합’과 ‘애국심 고취’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실패로부터 성공을 배우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 제국이 한반도를 강제 병탄시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능력하고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던 조선 왕조가 가장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 왕조는 무력한 청나라에 계속 기대고 있다가 위기를 맞자 러시아, 미국 등 해외 강대국의 힘을 빌리려고만 하는 비겁함을 보였다.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라고 자칭한 고종은 본인 스스로가 뇌물을 받고 관직을 하사하는가 하면, 외국 군대가 몰려들자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피하는 추태를 보였다. 명성황후 또한 자신의 친인척뿐만 아니라 무당을 고위직에 등용하고 그에게 국사(國事)를 자문하면서 국고를 탕진하는 추태를 보였다.

반면 그보다 이른 시기 일본은 막부 시대를 끝내고, 자신들 또한 서구 열강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야 침략을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근대화 속도를 높였다.

1854년 美해군의 페리 제독이 끌고 온 ‘흑선’에 의해 강제 개항을 당한 일본은 개항파와 양이파 간의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1858년 ‘인세이의 대옥’이라는, 100여 명의 양이파 처형 사건과 1862년 사쓰에이 내전, 1863년 시모노세키 전쟁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몇 년 동안 이어진 막부 간의 합종연횡과 전쟁을 거쳐 1867년 왕정복고와 대정봉환(도쿠가와 막부가 메이지 천황에게 국가 통치권을 넘긴 일)을 겪으면서 국가 차원의 개혁을 시작한다. 바로 ‘메이지 유신’이다.

일본의 미래를 바꾼 결정 '대정봉환'을 그린 그림. 이로써 일본 제국주의가 시작된다. ⓒ日위키피디아 공개사진.

 

‘메이지 유신’은 거대 중국이 서구 열강들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군사력에 번번이 패퇴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 멸망의 위기감을 느낀 결과였다. 일본은 이때부터 유럽과 미국 등에 지식인과 군인 등을 보내 서구화를 국가발전전략으로 삼는다. 일본 정부는 세계정세를 파악한 뒤 당시 상황에서는 일본 또한 제국주의적 역량과 목표를 삼지 않으면 망하다시피 주권을 잃은 청나라나 아예 식민지가 된 인도, 아프리카와 같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미국과의 ‘카스라-테프트 밀약’, 英-日조약,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선언 등도 그런 국가전략의 결과물이었다.

한국의 교육에서는 일제의 한반도 침략이 19세기 말이나 되어서야 시작된 것처럼 말하지만, 일제 침략의 징조는 188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인의 부산 대규모 이주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일본인들은 부산 초량의 왜관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세기 말 류큐 제도를 강제 편입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했다.

현재 부산의 중앙동, 광복동, 대신동, 부민동 등은 19세기까지만 해도 갯벌이어서 사람이 살지 않았다. 일본 이주민들은 조선 조정의 허락과 자기네 정부의 후원을 받아 이곳을 매립, 신도시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을 거점으로 상인으로 위장한 뒤 한반도와 중국 대륙 정탐을 시작했다.

부산 광역시 서구 일대. 1870년대 후반 일본인들은 왜관을 넘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조선 침략의 교두보였다. ⓒ부산광역시 서구청 홍보영상 캡쳐.

 

영국산 면화 등 해외의 다양한 물품으로 ‘무장’한 일본 상인들은 조선 경제를 잠식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일제가 조선 왕조의 통치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조공국’인 조선을 빼앗길까 우려한 청나라도 이에 대항해 조선 왕조를 옥죄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정부패하고 무능력한 조선 조정은 자신들의 치부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이런 일제와 청나라 간의 ‘대치’가 끝난 것이 1894년 동학혁명이다.

당시 전북 고부(現정읍) 군수 조병갑의 탐관오리 짓에 분노한 농민들이 ‘동학’이라는 신생 종교를 바탕으로 모여 난을 일으킨 것이 시작이었다. 난이 커지자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청나라 군대의 진출을 본 일제도 군대를 동원했다. 그 결과는 단기적으로 청나라 군대의 서울 용산 주둔을,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에 일제 군대의 진출을 초래했다.

동학과 독립협회, 일진회: 조선 멸망은 조선인의 손으로

동학 혁명이 무산된 뒤 대부분의 가담자들은 생업으로 돌아갔지만, 조선 조정의 부정부패와 유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조선 조정의 대신 가운데서도 일제를 부러워하며 유신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동학을 이어받은 시천교 교도로 활동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20세기 들어서부터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정에 개혁·개방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도 일본에서와 같이 개화파와 훈구파 간의 갈등이 치열했다. 개혁·개방을 요구하던 지식인들은 1896년 7월에 창설한 ‘독립협회’나 1898년 3월 창설한 ‘만민공동회’를 통해 ‘조선 자강론’을 주창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이들의 충언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고종 황제는 1898년 6월 자신을 지지하는 조정 대신을 중심으로 ‘황국협회’를 만들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며 독립협회를 강제로 해산한다.

뿔뿔이 흩어진 지식인들은 나름대로 활동을 벌이거나 해외로 유학하는 등 제 갈 길을 찾는다. 이런 와중에 19세기 후반 명성황후를 등에 업은 민씨 일가에게 쫓겨 일본으로 건너갔던 송병준이 일제 장성의 통역관으로 조선에 다시 온다. 송병준은 독립협회 출신 지식인 윤시병, 유학주 등과 만나며 사람들을 모아 1904년 봄 ‘일진회’를 조직한다. 그러나 조직 확대는 쉽지 않았다. 송병준은 이후 동학 농민군 지휘관이었던 이용구를 영입,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9월 시천교 교도들을 끌어들여 조직을 확대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일진회’의 출현이다.

무장한 일진회 회원들. 일진회는 독립협회 출신 지식인과 동학에 참여했던 시천교도 등이 중심이었다. ⓒ한국문화데이터베이스 화면캡쳐.

 

‘일진회’는 동학혁명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탓에 그 회원이 수십만 명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1910년 9월 ‘매일신보’ 보도에는 ‘일진회’ 등록 회원이 14만 725명이라고 보도됐다. 비슷한 시기 청나라 저널리스트 링치챠오는 저서 ‘조선애사’에서 “일진회 회원이100만 명에 이른다”고까지 표현했다.

‘일진회’는 단순하 조선을 일제에 병탄하도록 촉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외세가 조선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데에도 적극 나섰다. 일설에 따르면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이어진 러일 전쟁 당시 ‘일진회’가 일제를 돕기 위해 동원한 사람이 연인원 26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일진회’는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이 외교권과 국방권을 일제에 넘긴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데도 맹활약을 했다. ‘을사늑약’의 주역으로 알려진 이완용은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 다 이게 조선 백성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며, 고종 황제에게 조약 체결을 강요했다. ‘일진회’ 또한 같은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진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나라 자체를 일제에 넘기고자 한다. 바로 ‘합방 성명서’를 상소한 것이다. 1909년 12월 4일 ‘일진회’는 ‘합방 성명서’를 통해 대한제국의 주권을 일제에 넘기고 ‘연방국’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일제의 한반도 병탄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대한제국 황실은 일제 천황가 다음으로 인정받게 됐고, 엄청난 자금지원과 대우를 받도록 해준 은인이라며 이완용과 민병석 등 친일파에게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대훈위 금척대수장’과 막대한 돈을 하사한 것이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차이점과 공통점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은 19세기 말 조선(대한제국)과 비슷할까. 객관적으로 보면 차이점과 공통점이 바로 보인다.

조선(대한제국)은 탐관오리만 들끓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 교육수준, 군사력, 기술수준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세계 최하위권이었다. 상하수도 시설은 거의 없었고, 물류를 뒷받침할 도로는 정비돼 있지 않았으며, 군대는 훈련조차 하지 않았다. 기술은 장인을 천대하는 문화 탓에 수백 년 동안 발전이 없었다.

법치는 무늬만 있을 뿐 왕의 측근부터 지방 관리까지 “돈을 주고 얻은 관직이니 본전을 뽑을 때까지 백성들을 착취하자”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금을 제대로 낼 바에야 차라리 뇌물을 주는 것이 더 싸다는 생각도 팽배했었다고 한다.

조선(대한제국)의 주류 지식인들은 ‘조선식 성리학’만을 고집하는 훈구파와 해외의 선진문물을 배워와 조선에 적용, 발전시키겠다는 생각보다 “힘 센 열강에 기대 권력을 차지하자”는 생각으로 가득 찬 개화파들이 대부분이었다. ‘자강론’을 외치던 지식인들은 조선(대한제국) 주류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South Korea'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도시의 야경이다. 사진은 美아이오와 주립대 학생이 공개한 사진. 사진 속 장소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일대다. ⓒ美아이오와 주립대 관련 홈페이지 캡쳐.

 

이런 조선(대한제국)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찬란함’ 그 자체다. 2016년 말 기준 국내총생산 규모는 세계 11위, 주요 제품에서 세계를 석권하는 기업들도 여럿이 있다. 과학기술과 군사력은 세계 상위권에 들어간다. 물류 및 전력, 생산 인프라 또한 세계 수위권으로 평가받는다. 교육 수준 또한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19세기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개방적이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빛’ 뒤에는 ‘어둠’도 있다. 주로 사람에 대한 문제다. 일제로부터 배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공무원 채용 제도와 권위주의, 조선 시대 사대부 같은 지연·학연 지상주의, 일제가 ‘대동아 공영권’을 선전할 때 사용하던 것 같은 ‘동아시아 공영권’, 친일파로 변질된 개화파 지식인 같은 ‘무조건적 사대주의’를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소위 ‘진보적’이라는 표현이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착각하고, 입으로만 떠드는 반일주의와 반미주의, 대한민국을 멸망시키려는 북한을 향해 “우리 동포”이자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조선(대한제국) 멸망 시기의 ‘어둠’과 묘하게 닮았다.

조선의 주변국, 대한민국 주변국과 같을까

“대한민국의 현 상황이 19세기 구한말과 닮았다”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렇다면 21세기 일제는 어디인가”라는 점이다.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한반도를 점령한 것은 일제, 그 이전에 ‘주인 행세’를 한 세력은 청나라였다.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부동항을 얻어볼까 시도하다 실패했고, 미국이나 영국은 한반도에 별 관심도 없었다.

반면 21세기 한반도는 상황이 다르다. 일본에서 득세하는 우익의 배후에는 과거 일제를 되살리자는 게 아니라 “천황이 제사장이자 국가원수인 나라, 신도를 바탕으로 한 신정일치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종교기반 정치세력들이 있다. 이를 아는 일본 국민과 기업은 호응은커녕 “일본은 이미 거세된 상태”라고 자조하며 “그런 나라는 너네끼리 만들라”며 냉소 짓고 있다.

미국은 19세기 청나라가 아니다. 미국을 침략해 치외법권을 누리며 수탈하는 열강은커녕 경제력이나 기술력, 군사력 측면에서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게다가 한국을 비롯해 유엔 회원국 대부분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의 적은 ‘내부의 적’뿐이라고 할 정도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일대에 배치돼 있는 미군 자산들. ⓒ美CSIS 동아시아 군비연구 홈페이지 캡쳐.

 

19세기 말 거세가 아니라 아예 해체가 됐던 중국은 이제 일당독재 공산국가로 거대한 경제력과 뛰어난 기술력,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제2의 대동아 공영권’을 주창하고 있다. 中공산당은 최근에는 극심한 빈부격차, 슬럼프에 빠진 경제발전, 공산당 내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주변국들을 위협하는 한편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제3세계 국가에 선심을 쓰며 동맹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사이비 종교를 바탕으로 김정은이 '신(神)'인 신정일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교주 김정은은 측근과 친인척마저 살해하는 공포정치로 주민들을 숨도 못 쉬게 만들고,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전 세계를 향해 핵전쟁 위협을 하고 있다.

이런 현실만 보면 “구한말과 현재 대한민국 상황이 흡사하다”는 주장이 틀려 보일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말 일제와 같은 행동을 지금 누가 하고 있는지, 당시 청나라 역할을 하던 나라가 어디인지, 당시에는 없었던 우리의 ‘백기사’가 누군지 등으로 생각해 대입하면 현재 상황이 왜 구한말과 비슷한지 알 수 있다. 여기에 새로운 변수로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과 그의 측근들, 이스라엘까지 포함시키면 꽤나 구체적인 모양새가 나온다.

‘②언론도 말하지 않는 한국의 위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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