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특보가 편집인 맡은 ‘글로벌 아시아’ 보니….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이 설립한 동아시아 재단 계간지

전경웅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10.04 15:53:54
지난 6월 하순, 미국에서 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뒤 공항에 온 기자들에게 자기 주장을 강변하는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까지 가서도 북한과의 무조건적 대화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이를 두고 비판한 송영무 국방장관 등은 청와대로부터 ‘공개경고’까지 받았다.

스스로를 ‘학자’라며 “학자가 연구모임에서 한 발언을 왜 정치적으로 해석하느냐”고 반발하는 문정인 특보의 행보를 가리켜 자유한국당 등 야당에서는 “김정은의 엑스맨이냐”며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문정인 특보는 이런 반발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런데 문정인 특보에게는 직함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글로벌 아시아’라는 계간 학술지의 편집인이다.

동아시아 재단 발행 학술 계간지 ‘글로벌 아시아’ 

‘글로벌 아시아’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모두 영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세계 각국의 소위 진보적 국제관계학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연구나 주장을 정리해 발간하기에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어울린다.

‘글로벌 아시아’는 스스로를 “2005년 1월 서울에서 설립한 ‘동아시아 재단’의 이념에 따라 2006년 9월부터 비정기적으로 학술 논문을 묶어 발간하기 시작한 것”이 창간 계기라고 밝히고 있다.

동아시아 재단 창립자인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의 인사말. ⓒ동아시아 재단 홈페이지 캡쳐.

 

‘글로벌 아시아’의 모체라 할 수 있는 ‘동아시아 재단’은 2004년 10월 발기인이 모였고, 같은 해 12월 창립했다. 2005년 1월에는 ‘동아시아 재단’을 정식 창립한 뒤 바로 외교통상부 소관 비영리 단체로 등록했다. ‘동아시아 재단’이 ‘글로벌 아시아’를 만든 것은 2005년 11월로, 이때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제1회 ‘글로벌 아시아 편집인 회의’를 개최했다고 한다.

‘동아시아 재단’은 “인간과 지식의 네트워크를 통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한, 독립적 비영리 공익 재단”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동아시아 재단’은 “냉전적 안보질서 구조 지속과 경제적 상호의존 심화, 민족 국가 건설과 세계적 교류협력의 증대 등 갈등과 협력의 대립적 요인이 공존하고 있다”며 “동아시아 지역의 갈등을 관리하고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개방적인 포럼, 인적 교류를 통한 아이디어와 정책 교류, 협력적 지역 정체성 형성을 지원한다”고 설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동아시아 재단’은 “이를 위해 특정 이념이나 국가적 관점을 대변하는, 제한적인 역할을 초월해 초국가적 이익과 상호 공동의 정책 목표를 추구하고, 국적을 뛰어넘어 차세대 지도자들과 現지도자들을 연결하며, 정부·사회단체·기업·학계·언론 등 각계 전문가들을 연계한다”고 운영 원칙을 밝히고 있다.

‘동아시아 재단’의 설립자와 이사장 등 주요 임원은 하나같이 쟁쟁한 인물들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이 설립자고, 이사장은 공노명 前외무장관이 맡고 있다. 유재건 한국 유네스코 협회 연맹 회장(前국회의원), 안충영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김 준 ㈜경방 회장, 정진행 현대차 그룹 사장, 김태환 국립외교원 교수,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 등이 이사를 맡고 있다.

동아시아 재단, 동북아 국가들의 공동 번영 위한다면서….

이처럼 동아시아 재단은 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지향점을 앞세워 출범했지만, 이들이 내놓는 계간 학술지 ‘글로벌 아시아’를 보면, 과연 이것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을 지향하는지에 의문이 생긴다.

동아시아 재단이 발행하는 계간 학술지 '글로벌 아시아'의 발행인과 편집인 소개. ⓒ글로벌 아시아 홈페이지 캡쳐.

 

‘글로벌 아시아’ 홈페이지에서 최근에 나온 주요 논문들을 보면 “우리는 왜 북한 핵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가”라거나 “북한의 미사일 개발 성공: 환상적인 성공을 설명하기 어려운 점”,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워싱턴은 북한 딜레마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 “억제의 의문: 북한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작동할까” 등의 제목을 달고 있다.

이 계간지가 한반도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라거나 남태평양의 어느 섬나라, 또는 인도양이나 아프리카 대륙의 어떤 나라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한반도 문제의 운전수는 한국”이라는 말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논조의 논문들을 내놓는 계간지의 편집인이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라는 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계간지에서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한국이 해야 할 일”을 제시한 논문이 별로 없는 점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를 발행하는 ‘동아시아 재단’ 측이 “초국가적 시각에서 연구를 한다”고 밝히기는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드는 학술지가 마치 ‘유체이탈화법’을 쓰듯 한국을 ‘변수’ 가운데 하나로 취급하면서, 북한을 ‘핵보유국’처럼 묘사하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한국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10년 만에 다시 보는 故노무현 前대통령의 기고문

‘동아시아 재단’이 ‘글로벌 아시아’를 발행한 뒤 故노무현 前대통령 또한 기고를 한 적이 있다.

故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4월 15일 ‘글로벌 아시아’ 기고문에서 “민족주의, 영토분쟁, 군비경쟁 등 과거의 망령들이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에 동북아 질서는 아직도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盧대통령이 말한 ‘과거의 망령’은 일본을 가리키는 것이었겠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이 지적은 중국의 행태에 정확히 들어맞고 있다. 盧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통합의 제도화를 통해 동북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당위가 있다”고 주장했다.

盧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동북아에 다자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EU 통합의 기초가 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롤 모델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동북아 공동체 형성에 있어 미국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글로벌 아시아의 최근 커버 스토리들. 논문의 관점이 대부분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북한 간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해석한 것이다. ⓒ글로벌 아시아 홈페이지 캡쳐.

 

물론 盧대통령은 “6자 회담을 통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타결 노력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평가는 틀렸음이 사실로 드러났다.

아무튼 ‘동아시아 재단’과 ‘글로벌 아시아’를 보면, 10년 전 盧대통령이 추구하던 목표는 간 데 없고, 마치 제3국이 한반도 문제를 지켜보면서 미국과 북한을 동격으로 놓고 평가하는 듯한 글들만 볼 수 있다.

과거 故노무현 前대통령과도 깊은 친분이 있었다던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왜 이런 식으로 편집 방향을 정한 걸까. 기자가 무식해서 계간지 커버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최근 커버스토리를 본 사람들 모두가 오해하는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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