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 체제 장기화?… "야당이 국민 기대 배반했다"는 비난과 모순돼
  • 낙마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후보자의 후임 카드가 마땅치 않아 청와대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결정을 내리고 있는 헌법재판관들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낙마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후보자의 후임 카드가 마땅치 않아 청와대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결정을 내리고 있는 헌법재판관들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낙마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후보자의 후임자 지명 '카드'가 마땅치 않아 청와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헌법재판관 중에서 후임 후보자를 지명해야 하는데, 이 중에 친문(친문재인)·촛불·급진·좌파 세력의 '코드'에 맞는 '카드'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친문 일각에서는 "김이수 소장대행 체제를 무기한 끌고 가자"는 발상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김이수 후보자의 인준을 부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전혀 (후임자를) 생각한 바 없다"는 말을 세 번이나 큰 소리로 반복해 말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측이 이처럼 발을 구르면서까지 화를 낸 것은 마땅한 후임자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헌법 제111조 4항은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후보군이 '재판관 중'으로 제한돼 있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애초부터 김이수 후보자를 지명했던 것이다.

    김이수 후보자는 지금의 헌재를 구성하는 8명의 재판관 중에서 유일하게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재판관이라 이른바 '코드'가 맞는다. 구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의 소수의견을 내는 등 그간의 결정 성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게 아니었던 셈이다.

    헌재의 재판관 구성에 관한 헌법 조문을 살피면, 9명의 헌법재판관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국회가 3인, 대법원장이 3인, 대통령이 3인을 지명하도록 돼 있다. 국회 몫 3인은 다시 여당 추천 1인, 야당 추천 1인, 여야 합의 추천 1인으로 나뉘는 게 정치관례다.

    따라서 지금의 헌재 구성은 구 새누리당이 추천한 재판관 1명(안창호), 구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재판관 1명(김이수), 여야 합의로 추천한 재판관 1명(강일원),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 3명(김창종·이선애·이진성),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추천한 재판관 2명(조용호·서기석)으로 돼 있다.

    지명 경로에 따라 헌재 결정에 성향이 일부 반영된다는 것은 100% 부정하기는 어렵다.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김이수 후보자가 구 통진당 해산 결정에서 홀로 반대의 소수의견을 내는 등 급진적 성향을 보여온 것은 유명하다. 반대로 구 새누리당이 추천한 안창호 재판관은 공안 사건을 주로 다룬 검사 출신답게 보수적 결정을 해왔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결정심판에서만큼은 재판관 8명의 만장일치가 이뤄졌다. 구 새누리당이 추천한 안창호 재판관조차 결정문에서 "보수·진보의 이념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파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사례만 봐도 재판관의 소신과 양심이 반드시 지명 경로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친문 세력은 이 정도로는 마뜩치 않은 모양으로 보인다. 김이수 후보자가 낙마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더 이상 내려놓을 카드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친문의 시각에서 볼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 지명한 재판관을 소장후보자로 지명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도 마뜩찮은 눈치다.

    친문 일각에서는 최근 "사법부와 재판의 독립"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양승태 대법원장의 움직임이 급진 세력의 사법권력 장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이른바 '적폐'로 몰아붙이고 있다.

    친문 일각이 이같은 '적폐 매도' 공작을 벌이고 있는데,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을 소장후보자로 지명한다는 것은 손발이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친문 일각에서는 김이수 대행 체제의 무기한 연장을 기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법관 출신의 친문 법조인은 "김이수 대행 체제로 가면서 (이유정 후보자가 낙마해 공석이 된) 대통령 몫 재판관을 지명한 뒤 소장후보자로 지명해, 국회에서 낙마하면 다시 대행 체제로 가면 된다"며 "그러다 김이수 대행의 임기가 만료되면 민주당 몫 재판관을 추천해 소장으로 지명하고 또 낙마하면 소장대행 체제로 계속 간다"는 해괴한 발상을 내놓기도 했다.

    현 문재인정권은 애시당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성립한 정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결정에서 만장일치 8대0 결정을 내렸던 재판관들을 못 믿겠다는 것 자체가 소장 지명 과정에서 헌재의 독립성은 안중에도 없다는 반증이다. 오로지 '코드 인사'를 통한 사법권력 장악에만 혈안이 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코드에 맞는 소장을 자리에 앉힐 때까지 쭉 대행 체제로 가겠다는 것 자체가 헌법기관장의 공백 상태를 장기화하겠다는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청와대가 '야당이 헌재소장 공백 상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 국민을 철저하게 배반했다'고 펄펄 뛰었던 것과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모순' '내로남불'의 극치"라고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