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베에 "北에 원유공급 중단토록 중·러 함께 설득하자""과거사 문제는 안정적으로 관리"… 'status quo' 시사
  •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7일 오전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 회담장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7일 오전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 회담장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북한의 'ICBM 장착용 수소폭탄' 핵실험 주장으로 역내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오랜 길을 돌고돌아 전통적 '한·미·일 동맹'으로 회귀하고 있다.

    명백히 북한의 도발로 인한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쌍중단(雙中斷)을 내세우며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거부하는 등 실망스런 외교적 상황 속에서 사실상 본인이 '운전자'가 될 수 없고 역시 믿을 것은 우방국 뿐이라는 것을 자인한 행보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오전 제3차 동방경제포럼이 열리고 있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과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전날 오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한러정상회담에서 "이번만은 적어도 북한에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게 부득이한 만큼 러시아도 협력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아베 총리에게 함께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자고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한일정상회담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더 악화돼 통제불능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일 양국이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북한이 핵·미사일을 반드시 포기하도록 제재와 압박을 최대한으로 가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가하기 위해 원유공급 중단이 담긴 유엔안보리 결의가 추진될 수 있도록 중공과 러시아를 최대한 설득해나가자고 요청했다.

    이에 아베 총리는 "지난 유엔안보리 결의 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할 경우 새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는데 합의했었다"며 "더 강력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도록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현지 동행취재진에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6일)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거절당했던 것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며 "아베 총리가 오후에 일러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설득하겠다고 말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일 동맹 복원과 관련해, 한일 양국 관계에 걸림돌이었던 '과거사 문제'를 'Status Quo(현상을 존중하며 유지)' 상태로 관리해나가기로 하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러시아를 방문 중인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한일 양국 정상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동북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직후 의미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위안부·강제징용 등의 문제가 있는데, 한일 양국이 문제를 풀어가는데 그 요인에 발목이 잡히지 않도록 현안들을 관리하고 안정적으로 끌고가자는 이야기"라며 "북핵·미사일 문제로 동북아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데 과거사 문제가 양국 간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는 건 현재로서 적절치 않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외교적 수사의 하나로, 현안을 'Status Quo' 상황으로 유지한다는 합의라는 분석이다.

    외교적으로 볼 때 'Status Quo'란 양국이 서로 그러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 문제를 굳이 꺼내지 않고 지금 이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양국 관계의 마찰·악화 요인으로 부상하지 않도록 수면 아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북핵 위기 점증 국면에서 전통적인 한미일 동맹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된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는 'Status Quo' 상태로 관리하는데 동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위기 국면에서 국가지도자로서 냉철하면서도 탁월한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지난 광복절 경축사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던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당분간 공개 석상에서 재론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잇단 도발을 저지르고 있는 북한을 중심으로 이에 맞서는 한미일 삼각동맹과, 이를 방조하거나 종용하는 중러 대륙 세력 간의 대결 양상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게 이번 동방경제포럼을 통해 분명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한러정상회담에서 원유공급 중단이라는 최소한의 조치를 푸틴 대통령에게 호소했으나 싸늘하게 거절당했다. 반면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며, 모든 면에서 의견의 완전한 일치를 이뤘다는 평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한일정상회담의 성과와 관련해 "양국 정상 간에 이견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며 "양국 관계가 근래 들어서 가장 좋은 단계로 가고 있다고 관측된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한미일~북중러 구도 회귀를 묻는 질문에는 "지금 국면에서는 북한에 대해 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데 (한일) 양국 간의 의견이 일치했다"며 사실상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