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면 위험" 지적... 市 "폭우 대비책, 세부 계획 없지만 전체 계획 있다"?
  • 수도권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와 팔당댐 방류로 한강 수위가 높아진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수교에서 차량이 통제된 가운데 관계자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수도권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와 팔당댐 방류로 한강 수위가 높아진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수교에서 차량이 통제된 가운데 관계자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 곳곳에 집중폭우가 쏟아져 인명피해와 재난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폭우는 수도권을 비롯한 중부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몰고 왔다. 지난달 24일에는 인천 남동구 구월동 자택에서 기습폭우로 A(96) 씨 등이 숨진 채 발견됐다. 31일 충북 청주에는 최고 149㎜의 폭우가 쏟아져 상가 건물과 도로가 침수됐다. 물폭탄을 맞은 음성 지역은 통행이 금지됐다. 서울에도 수시로 장맛비가 내렸다. 언제 어떤 피해를 입게 될지 몰라 애를 태우는 시민들이다. 

    곧 개장을 앞둔 ‘서울 잠수교 바캉스 행사’의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잠수교 수위는 1일 새벽 한때 4m까지 올랐다가 현재(08시)는 3.9m 정도로 평소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10~11일 밤새 내린 폭우로 서울 잠수교 차량 통행은 전면 통제됐다. 잠수교는 수위는 5.5m 이상이면 보행자 출입이 통제되고 6.2m 이상이면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여전히 지역마다 강수량 차이가 큰 국지성 호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불안한 상황이다.

    ‘잠수교 바캉스’ 행사는 서울시가 한강에서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는 인공 모래해변이다.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총 3일간 반포대교 아래 잠수교에서 진행된다. 시는 810t 규모의 모래를 가져와 백사장을 조성하고 선베드와 파라솔 60개를 각각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경사로를 이용한 워터 슬라이드(150m)도 만든다. 곳곳에 각종 예술 및 공연행사도 마련한다. 이 행사는 지난달 28일 개장될 예정이었지만 집중호우 예보로 연기된 바 있다.

     

    √. 비가 오면 사라지는 다리, 잠수교(潛水橋)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국지성 폭우가 잦은 우리나라의 기후 조건을 들어 잠수교 바캉스 행사에 대한 안전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김행범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1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여름이면 잠기는 잠수교에 해변을 조성한다는 사업의 경우 타당성 여부에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국민이 절실히 요구한 것도 아닌데 너무 긴급하게 갑작스럽게 행사를 추진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보여주기식 행정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정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년이여는미래 백경훈 대표는 “잠수교가 백사장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재난현장으로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지난 7월 초에도 잠수교가 물에 잠겼고 청주에도 물난리가 발생해 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이 시점에 특히 잠수교에서 이런 바캉스 이벤트를 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강고수부지에 수영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위험성을 가지고 행사를 계속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집중호우 피해가 발생하자 시민들과 대학생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남양주에 거주하고 있는 이동현(27) 씨는 가족과 함께 잠수교 바캉스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언제 쏟아져내릴지 모르는 호우 문제 탓에 휴가지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 씨는 “다리 밑에서 해변이 조성되는 이벤트는 처음 있는 일이라 색다른 경험을 체험하고 싶어서 이곳에 놀러갈 예정이었지만, 고령의 부모님도 함께 모시고 가야하는 상황이라서 여전히 안전 문제가 걸린다”면서 “놀러갔다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박성호(29·회사원) 씨도 “우리나라는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장마철이라는 건 기본 상식”이라며 “이 기간에 특히 잠수교에서 이런 행사를 여는 건 공무원들의 안전의식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서울시가) 구의역 사건도 모자라 얼마나 더 많은 안전사고를 겪어야 경각심을 가지게 될까”라고 한탄했다.

    한국대학생포럼 박성은 회장은 “이번 행사에 800t 규모의 모래가 깔린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비가 갑자기 내리게 되면 모래가 한강으로 쓸려내려가는 문제도 있을테고, 많은 인파가 콩나물시루처럼 잠수교에 모여 있다가 대피하는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등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대학생포럼 이종현 언론국장도 “잠수교의 높이가 불과 6.5m밖에 되지 않아 갑작스러운 폭우 발생시에 그에 맞는 비상탈출과 구조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며 “가족들과 연인 등 휴가철을 맞이해 추억을 남기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고 찾은 행사에서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면 그것이 과연 휴가일까”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의 우려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모래가 빗물에 쓸려가지 않도록 한쪽 끝으로 밀어내는 차량을 동원하고 시설물을 철수하고 시민들의 대피를 도울 안전요원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집중호우 예보가 발령되면 경찰서에서도 출동하고 사설업체에서 고용한 안전요원이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구조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세한 대책은 확인할 수 없었다.

    문서로 정리된 안전·구조계획을 확인하고 싶다는 기자의 요청에 서울시 관계자는 “세부적이거나 자세하게 짜여있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런 내용이 방송, 신문, 인터넷에 보도가 된다고 해서 실제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행사에 자발적 의사로 참석한 사람들에 한에서 잠수교 행동요령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면서 “현장에서 직접 알려주면 와 닿겠지만 방송에 나왔더라고 관심 있게 볼 사람이 없을 것”라고 말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석연치 않은 해명, 소규모 시민단체가 어떻게?

    ‘잠수교 바캉스’는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논란에도 휩싸였다.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박원순 시장의 전시행정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서울시가 지난달 30일 해명을 내놨지만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다.

    먼저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포퓰리즘 행사 논란에 대해서 “이런 이벤트를 예전부터 개최하고 싶었지만 예산 문제로 계획이 늦춰지게 됐다”면서 “민간업체 서울산책이 자부담으로 이 행사를 진행한다고 제안을 먼저 해 협력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잠수교 바캉스’는 서울시가 예전부터 구상해 온 행사로 지방선거를 겨냥해 갑작스럽게 기획한 ‘선거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성진 한강몽땅 총감독은 “(저는) 내년 지방선거가 언제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며 “문화행사를 너무 정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윤 감독은 “강북과 강남을 보행로를 통해 지나갈 수 있는 다리는 유일하게 잠수교 하나 뿐”이라면서 “잠수교는 보행공간도 가장 넓은 다리로 걷기 캠페인을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서울산책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했다.

    윤성진 총감독의 말대로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것은 시민단체인 (사)서울산책이다. 이 단체의 조경민 대표는 박원순 시장의 측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산책 측은 인공해변 조성과 관련해 자부담 3,000~4,000만원, 티켓팅(매표) 1억, 기업협찬 2~3억원으로 자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주찬식 서울시의원은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만약 내년에 지방선거가 없었다면 이례적으로 주변 교통을 3일 통제하고 국민들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집중호우가 내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5억 규모의 잠수교 바캉스 행사를 개최하겠느냐”면서 “서울시가 급조한 게 아니라 예전부터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다는 말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이례적인 이벤트가 개최된 것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콘셉트의 행사인만큼 홍보 효과가 뛰어나 박원순 시장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중도 살필 수 있는 대목이다. 한강몽땅 축제가 처음 개최된 2013년 이후로 다리 밑에 해변을 조성하는 행사는 올해가 처음이다.

    임종화 경기대 객원교수는 “(잠수교 바캉스가) 여러 사람들에게 졸속 이벤트, 포퓰리즘 정책 등으로 비춰지는 것은 행정경험이 없는 시민단체가 이런 대규모 행사를 맡았기 때문”이라며 “서울산책이 박원순과의 친분으로 협력사로 선정된 건지 그 내막을 알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시민단체들은 대중들에게 검증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서 겉치레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의 영향으로 (사)서울산책이 행사 주관사로 선정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한강몽땅 축제 총감독과 기획실장, 자문위원단이 10번 이상의 미팅을 거쳐 각 프로그램별 사업이 진행된다”면서 “서울시가 이들의 제안을 받고 최종 결정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의 기획성과 사업규모, 공익성 등을 고려해 폐쇄적이지 않고 최대한 독립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 측이 밝힌 의사결정 방식 역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서울산책의 기획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인 ‘잠수교 바캉스 사업계획서’를 확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서울시 측은 거부의 뜻을 밝혔다. 서울시가 시민들의 휴가를 위해 공익적인 목적으로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섰지만 서울시민들은 행사가 열린다는 ‘결과’만 알고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윤성진 총감독은 “사업계획서는 영업 비밀에 속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며 “다음 주쯤에 더 세부적인 내용이 보도자료로 배포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가 위에서 밝힌 ‘독립적’이라는 표현도 명백한 의미에서는 ‘상호보완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서울시가 ‘잠수교 바캉스’ 외 한강몽땅 축제 80개 프로그램을 검토하는 총감독(임기 1년)과 기획실장(1년), 자문위원단(2년)을 위촉하고, 서울시가 총감독의 추천을 받고 협력사를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주찬식 시의원은 “서울산책 조경민 대표가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이미 언론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라면서 “협력사를 선정하는 과정 절차도 결국엔 서울시가 위촉한 자문단들이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시 시장의 입맛대로 인사가 결정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주찬식 시의원은 또 “서울산책이 설립된 지 금년으로 3년차인데 어떤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 있어서 협력사로 채택이 됐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면서 “차라리 입찰을 통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남정욱 숭실대 교수는 “사업은 공모를 통해서 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라며 “특히 서울산책은 서울시 시장과의 특혜 의혹이 제기됐던 업체인 만큼 신중한 절차를 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정욱 교수는 “서울산책이 여러 캠페인 등 행사를 열어본 경험이 있다고 해도 다리 밑에 해변을 조성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 않나”라며 “다른 경쟁력 있는 이벤트 기획사가 더 없었는 찾아보는 노력을 해봤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편, 시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의 배경 아래 잠수교 교량 통제가 가능하지 않았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 7~8월이 휴가철이라 서울시내 교통량이 평소에 비해 적고, 잠수교 바로 위에 우회도로인 반포대교가 확보돼 있기 때문에 경찰청하고 교량 통제에 대해 협의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의 입김이 아니라 잠수교의 지리적 특성상 이례적으로 3일 동안 교통통제가 가능했다는 설명이었다.